미술 . 문화예술

김환기의 ‘점화’ 작품 가격에 대한 단상

송담(松潭) 2018. 6. 15. 13:48

 

김환기의 점화작품 가격에 대한 단상

 

  한국미술품 최고가인 85억원에 낙찰된 김환기 작품 ‘3-II-72 #220’

 

 지난달 27일 홍콩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25회 서울옥션홍콩세일에서 김환기의 붉은색 전면 점화 작품(1972)853000만원에 낙찰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낙찰수수료를 포함하면 100억원인 셈이다. 한국 작가의 작품가격으로는 최고가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하다가 댓글을 몇 개 읽어보게 되었는데 대부분 공통된 의견을 노정하고 있었다. 물론 일반인들의 공통된 단상들이었다.

 

첫째, 현대미술은 너무 난해하며 추상미술이란 것 역시 도저히 모르겠다. 둘째, 이런 그림은 나도 그릴 수 있겠다. 셋째, 그림 한 점에 이토록 비싼 금액을 주고 사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결국 미술품 소유는 돈 있는 자들만이 한다. 넷째, 미술품의 가격산정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모르겠다. 다섯째, 분명 투기가 목적이거나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추려서 적고 보니까 부정적인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생각해보니 일반인들이 현대미술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의견은 사뭇 적대적이다.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현대미술 작품이 85억원에 팔린다는 사실이 일반 서민들에게는 모종의 결락감과 위화감까지 크게 부풀려주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술품이란 결국 경제적 여유가 있는 자들이 소유하고 향유하는 것은 사실이다. 부자들에게 미술품의 소유야말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것을 내 것으로 한다는 매력이 있으며 이는 대량생산되는 물건의 구입과는 분명 다른 차원의 수집일 것이다

 

 그 댓글을 읽다가 일반인들이 당연히 지닐 만한,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부정적 견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우선 김환기의 이번 작업이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아 그만큼의 가격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이성적이랄까, 객관적인 접근 내지 평가는 거의 부재했다. 그보다는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것이 현대미술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라고 본다.

 

 현대미술을 무조건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최소한 이에 대한 이해 내지는 공부가 요구되는데 그것을 너무 무시하고 있다는 아쉬움은 있다. 현대미술은 전통시대에 이해되었던 미술을 넘어서려는 비판적인 기획 아래 추진된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추상미술이다. 추상미술은 눈에 보이는 외부세계만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려는 것 말고 다른 것도 미술이 될 수 있음을 사유해보는 일이다. 동시에 미술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조건을 반성해본다.

 

 그러니까 김환기의 점화를 보면 캔버스 천에 묽은 물감을 스며들게 칠하고 점을 찍었다. 색을 지닌 물감과 납작한 천이라는 그림을 이루는 조건만을 가지고 그림을 만들어 보이고 있으며 동시에 그 천 사이로 물감을 스며들게 하니 천은 더욱 평평한 느낌을 준다. 그림이 이루어지는 화면은 납작한 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서구의 원근법이 허구임을 보여주는 일이자 동시에 서구의 추상화를 마치 수묵화와 같은 방식으로 실현해내고 있다는 독자성에서 빛을 발한다. 또한 작은 점을 무수히 찍어나가는 자신의 몸짓이 거대한 화면을 채워나가면서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한 작가의 신체, 몸짓이 여전히 중요함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그리고 작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우연적이고 비자발적인 물감의 번짐을 허용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서양의 추상화와는 또 다른 김환기만의 독자성이다.

 

 이런 생각을 그와 같은 방법론으로 실현한다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는 없다. 그것은 현대미술의 논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그것을 넘어서서 자기만의 개별적인 추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실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바로 이러한 미술사적 성취, 가치가 미술시장에서 한 작품의 가격을 결정한다. 김환기는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의 추상회화의 막다른 지점을 목도했고 이후 작가의 개성, 몸짓들을 완벽히 지워나가는 미니멀리즘과 팝아트의 파고 속에서 여전히 추상회화가 거듭날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한 이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문화적 전통에서 연유한 수묵화와 신체적 호흡을 되살려 흥미로운 추상회화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이번에 낙찰된 그림인 점화 시리즈다. 물론 그 가격이 얼마여야 하느냐는 딱히 정해질 수는 없다. 그것은 그 작품을 원하는 이들에 의해서, 그 가치를 이해하는 이들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영택 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2018.6.14)

 

김환기의 점화

 

 백석 시인(1912~?)과 김환기 화백(1913~1973)은 한국적인 서정주의를 서구의 모더니즘에 제대로 접목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품을 읽고 보는 대중에게는 전통이라는 익숙함을, 전문가에게는 모더니티의 신선함을 선사한 것이다. 예컨대 서른 살도 안돼 조선의 대표 서정시인이 된 백석의 시가 실린 잡지는 책방에 나오기 무섭게 불티나게 팔렸다. 김환기 화백도 마찬가지다. ‘20세기 대표 화가순위를 따질 때마다 백남준·이응노 등과 더불어 늘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작품가격도 독보적이다. 한때 1위였던 박수근 화백(‘빨래터’·452000만원)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1~5위를 휩쓸었다

 

 엊그제 홍콩에서 열린 경매에서 노란색 전면점화(全面點畵)‘12-V-70 #172’는 역대 최고가인 622626만원에 낙찰됐다. 1~5위 작품의 합산 낙찰 총액만 215억원에 이른다. 그냥 무수한 점투성이인 작품들이 무슨 전통성이 있고, 무슨 대중성이 있다는 걸까. 화면 전체를 점으로 채운 김 화백의 전면점화 기법은 네덜란드의 추상화가 피에트 몬드리안과 비슷하다. 그러나 김 화백의 점은 서예와 문인화의 은은한 번짐 효과와 같은 동양전통의 수묵 기법과 맥이 닿아 있다.

 

 김 화백은 백자 항아리를 보면 촉감이 동한다. 사람이 어떻게 흙에 체온을 넣었을까하고 전통문화에 애정을 가득 담고 있었다. ‘전통의 환기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만하다. 예술엔 노래가 담겨야 한다는 지론처럼 점 하나하나에 음악을 새겼다는 평가도 있다. 1970년 절친인 김광섭 시인의 시에서 제목을 붙인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김 화백의 대표작이다. 뉴욕 하늘의 별과 마천루의 야경이 쏟아내는 빛의 울림과 메아리를 보고 들으며 서울의 가족, 친구를 떠올렸던 애절한 노래라 할 수 있다

 김 화백은 전면점화의 제작 과정을 그리스 신화 속 여인인 페넬로페의 운명에 비유했다. 낮에 짠 베를 밤이면 풀기를 반복하면서 전쟁에 나선 남편 오디세우스를 기다렸던 페넬로페처럼 하나하나 점을 찍어갔다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작업이다. 마치 종신형 죄수같았다니 그 가없는 창작열을 어떤 장삼이사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이기환 / 논설위원

(2016.11.29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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