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조형물을 힘들게 하는 것들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사자 동상
조각의 재료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으면서 단단하게 형태를 유지해야 하므로 나무 돌, 금속 등이 전통적으로 많이 사용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합성수지는 물론 전통적인 재료라 하더라도 표면에 도색이 되어 있거나 작품의 일부로 상상도 못했던 기발한 재료들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입체 조형물은 일반적으로 평면작품, 회화보다 튼튼한 재료로 만들어져 보존도 덜 까다로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쉽게 야외에 설치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만지거나 해도 다소 관리에 무감각한 면이 있다. 하지만 사실 야외 조형물은 바깥에서 뜨거운 햇볕과 자외선, 산성비, 새똥, 황사나 꽃가루, 사람들의 낙서나 짓궂은 장난을 다 견뎌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니 무엇보다 설치 전 이러한 것들을 잘 견뎌낼 재료와 형태를 생각해야만 한다.
야외 조형물을 괴롭히는 것으로는 우선 태양열을 들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의 복사열은 금속작품을 자동차 보닛처럼 달구기 때문에 표면은 뜨거우면 팽창하고 식으면 줄어든다. 그러므로 프라이팬처럼 달구어진 금속 조형물 표면에 도색하거나 코팅을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 청동의 경우 화학적으로 색을 만들고, 섭씨 90도 정도에도 무르지 않으며 금속의 팽창·수축에 따라 유연한 막을 유지하는 야외조각용 왁스로 코팅해 내구성과 함께 금속 조각의 맛을 살리는 것이 추세다. 요즘은 높은 온도에도 쉽게 변하지 않고 떨어지지도 않으며 유연한 막을 가진 첨단 안료로 도색하는 야외 조형물이 부쩍 늘기도 했다. 하지만 안료층이 주는 느낌은 어떻게 색을 내도 물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렇게 하면 비싼 청동으로 정성스레 만들어놓은 조형물도 결국 플라스틱 조각같은 느낌을 풍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쉬운 도색 대신 여전히 전통적인 표면 처리를 고집하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최근 독립기념관에 있는 박충흠 작가의 <3.1 정신상>을 흰색 페인트로 도색한 일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도색 이후 작가께서는 이럴 거면 뭐하러 비싼 청동으로 만들었겠냐고 안타까워하셨다.
적외선 영역의 뜨거운 복사열과 함께 높은 에너지를 지닌 자외선은 주로 유기물의 결합을 흩뜨려놓거나 끊어 유기물인 안료의 바인더(접착) 성분을 변화시킨다. 변색되거나 갈라지거나 떨어지는 손상은 역시 안료의 유기물 성분이므로 야외에 설치된 조형물의 도색에도 자외선 대책을 꼭 세워야 한다.
다음으로 언급할 것은 산성비다. 산성비는 산성을 띤 빗물을 뜻한다. 산성은 공기 중 수증기인 물을 이루고 있는 수소이온과 수산화이온 중 수소이온이 훨씬 더 많은 상황을 의미한다. 비로 내리는 물방울 내부의 수소이온(H+)과 수산화이온(OH-)이 동일한 숫자로 존재한다면 서로 짝을 지어 수소 둘에 산소 하나의 중성 물(H2O)이 되겠지만, 서로 짝을 이루고도 남아도는 수소이온이 많다면 그 빗방울은 산성을 띤다. 이런 산성 빗방울이 청동 표면 위에 내려앉으면 수소이온은 격렬하게 음이온들과 결합하게 되고 음이온은 양이온을 빼앗을 것이다. 새로운 결합이 생기고 그 결합에 따른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곧 물질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변화의 증상으로 변색이나 얼룩 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불안정해서 변화를 야기하는 산성화된 물, 산성화된 환경은 조형물뿐만 아니라 유기물인 인간의 신체에도 여러 악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환경 문제는 비단 조형물의 보존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걱정해야 할 문제이기도하다.
그리고 새똥의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새똥은 우리가 똥이라고 부르지만 새들은 똥오줌을 동시에 지리므로 엄밀히 말하면 새똥오줌이다. 인산, 암모늄 등 열 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이 포함된 새똥은 청동 조각 위에 내려앉으면 빠르게 조각을 부식시켜 마치 화상 같은 깊은 상처를 남긴다. 야외 금속 조형물을 관리할 때 새똥이 내려앉았다면 물로 빨리 제거해야 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뭐니뭐니 해도 가장 치명적인 손상을 끼치는 주체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조형물을 파괴하는 행위는 반달리즘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거창하게 지칭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야외 조형물에 올라타고 낙서하고, 조형물을 긁기도 하며 때로는 전리품처럼 일부를 잘라 가져가기도 한다. 종교적인 의미의 조형물이라면 마음을 다해 문지르고 코를 갈아가기도 한다. 락카를 뿌려 조형물을 시뻘겋게 만들기도 하고 종교적인 이유로 작품을 쓰러뜨리거나 박살내기도 한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는 거대한 사자 동상이 두 개 서 있는데 항상 사람들이 여기 올라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행으로 잠시 들른 분들은 저기엔 올라타도 괜찮은가보다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가끔 관리자들이 나와 내려오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그들이 사라지면 금세 새로운 등반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조형물을 보고 만지고 올라타는 것은 본능이라고 밖에는 이해할 수 없다. 나조차도 올라타서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이 올라오니 말이다.
야외 조형물을 기획하고 작가에게 맡길 때 재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작가라면 야외에 두어서는 안 되는 재료를 선택하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 뜨거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반복되는 우리나라에서 합성수지, 즉 플라스틱 조형물은 몇 해를 견디지 못하고 변색되고 갈라진다. 대리석은 석회석이 지하 깊은 곳에서 수만 년 이상 뜨거운 지열과 압력을 받고 변성돼 치밀해지고 단단해진 암석이라 석회석보다는 견고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단단하고 오래 쓰는 둥그런 비누(알랑 비누)가 변해가는 것과 같은 형상으로 산성비에 천천히 녹아간다.
반대로 야외에 두어 자연스럽게 부식되도록 하는 적갈색의 철판 조형물은 그 정체가 부식강Cor-ten steel이란 것인데, 선박용으로 개발되어 일단 적갈색의 부식층이 덮이면 그 이상 부식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 부식강은 추상조각의 선구자인 데이비드 스미스 이후 즐겨 사용된다. 그런데 국립현대미술관에 근무하던 당시, 야외에 설치된 이우환의 부식강 작품을 본 관람객으로부터 항의 민원을 몇 번인가 받아 답변한 적도 있다. 작품의 붉은 표면을 보고 녹슨 작품을 관리하지 않는다고 여긴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겸 /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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