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복원?
유물이나 오래된 작품을 앞에 두고 누군가 작업을 하고 있다면 당연히 복원가라고 생각할 것이다. 복원이란 기본적으로 처음 제작된 당시의 것들을 유지하고 되살리는 활동이다, 그가 유지하고 되살리려는 것은 재료이거나 이미지 혹은 그것에 담긴 의미나 기억일 수도 있다. 전소되었던 숭례문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목재 구조물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숭례문을 재건하면서 석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새로운 재료를 사용했다. 하지만 재건립된 숭례문은 사료를 바탕으로 유물이 가진 의미와 기억을 충실히 살려내려는 의지와 노력의 산물이기에 재건된 동시에 복원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와 작업은 보존복원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과거의 재질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사료 등을 합리적으로 다루고 해석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한 이후에 시작된 것이다. 19세기 이전 유물에 대한 기록을 보면, 거리낌없이 유물을 다시 만들기나 유물에 덧칠을 하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천정화가 불경스럽다며 벗은 남녀의 주요 부위를 나뭇잎 등으로 덧칠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최근 이런 나뭇잎을 포함한 덧칠, 그을음 등을 모두 제거하는 복원이 진행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미켈란젤로의 작업 일부까지 지워버렸다는 비판이 몇몇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됐다.
클리닝을 통해 작품이 손상되거나 달라졌다는 비판을 받은 또 다른 유명한 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파올로 우첼로가 그린 <산 로마노 전투Battle of San Romano>다. 마술사를 공부할 때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특징인 원근법을 보여주는 대표작인 그림 중 하나로 소개되는 그림이다. <산 로마노 전투>는 크게 두개의 에디션이 있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소장품이다. 너무 심하게 클리닝되어 색이 바래 보이고, 특히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이 소장한 에디션과 비교해 보면 말의 세부 명암이 사라져 평평해 보임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유명한 사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천재들이 그렇듯 다빈치 또한 새로운 시도를 좋아했다. 건조된 프레스코 위에 유화를 올렸는데 당시로서는 쓰지 않던 기법이었다. 그 결과 그림이 완성되고 20년 후 표면 색층이 들떠있음이 처음 기록되었고 1572년에는 그림의 절반 이상이 손상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722년 기록에서는 표면의 많은 부분이 사라져 하얀 석회벽이 드러나 있었다고 하는데 1726년 벨로티Bellotti라는 화가가 대대적인 복구에 착수했다. 많은 미술 이론가들은 당시 벨로티의 작업은 복원이 아니라 대부분 새로 그린 것임을 알고 있다.
벨로티의 작업을 포함한 총 여덟 번의 복구 공사 중 제일 유명한 것이 가장 최근의 작업이다. 피닌 브람빌라 바르실론Pinin Brambilla Barcilon이라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복원가가 주도한 이 복원은 20년에 걸친 작업 끝에 2000년에 마무리됐다. 그 결과 비로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오리지널 <최후의 만찬>을 보게 되었다고 모두 기뻐했다. 하지만 이미 대부분이, 아니 어쩌면 <최후의 만찬> 자체가 벨로티가 다시 그린 것이니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른 척하지 않으면 달리 다빈치의 걸작을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에도 벨로티의 손길 정도는 점잖게 볼 만큼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사례들이 있다. 중국 차오양 옌지 사원에는 270년 된 청나라 프레스코 기법의 벽화가 있는데 복원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사업 이후 벽화가 크게 바뀐 것이 2013년 중국의 한 블로거에 의해 알려졌다. 그는 웹에 이미지와 함께 ‘무식한’,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글을 올렸고, 그것이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관련 보도가 잇따르고 비난 여론이 일자 주지승은 이런 사업을 허가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으나 복원 업체라는 곳을 통해 복원 사업이 진행된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들은 작업을 통해 퇴색된 원작 위에 이전과는 너무도 다른 느낌의, 만화 같은 도교 속 이미지들을 그려놓았다. 이런 황당무계한 사업에 소요된 비용은 자그마치 약 4백만 위안 우리 돈으로 7억 원 이상 이라고 한다.
하이난시 유물관리국의 리장양이라는 고고학자는 논평을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단지 복원이라고 부른 것뿐이다”라며 벽화에 가한 일은 결코 복원이 아님을 주장했다. 그는 중국 “대부분의 유물이 잘못 복원되고 있거나 당국이 유물에 너무 심하게 손을 대고 있다”면서 “대부분의 중국인이 오래되고 낡은 유물을 즐길 줄 모르고 번듯한 새것이나 높고 거대한 것만을 좋아한다.”며 중국인의 문화의식 자체가 문제라고 평가했다.
이 소동은 옌지 사원의 관리 팀장과 차오양시 문화재 담당관 두 사람이 면직된 것으로 마무리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이 벽화는 다시 예전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기존 벽화 위에 정확히 어던 방법으로 새로 그렸는지, 혹은 지금 상태가 어떠한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찾을 수 없으나 짐작하건대 새로 벽화를 그리기 위해 이전 유물의 물감층을 대부분 제거했거나 예전 물감
이 남아 있더라도 새로 그린 물감층을 원래 유물의 물감층으로부터 분리해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유명한 사건은 2012년 스페인 보르하Borja 지역 사원에 있던 19세기 프레스코화 복원이다.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라는 작품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Elias Garcia Martinez라는 화가가 그리스도 얼굴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 지역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표면층이 들뜨고 떨어지고 갈라지는 등 일반적으로 프레스코화에서 진행되는 손상이 심해졌다. 그러자 세실리아 기메네즈Cecilia Gimenez라는 80대 노부인이 스스로 복원을 하겠다고 작업에 들어갔다. 떨어져 없어진 부분을 새로 그려넣는 것으로 시작된 그녀의 작업은 점점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작업이 끝났을 때 그곳에 우리가 알고 있던 그리스도의 모습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괴기스럽다 못해 유머러스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그림은 '원숭이 예수'라는 제목으로 빠르게 인터넷으로 퍼져나가 세계적으로 방송까지 타게 되었다. 나 또한 처음 이 이미지를 접했을 때 배를 잡고 한참을 웃었던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자격 없는 사람이 복원이란 미명하에 유물을 파괴한 사건으로 보도되었으나 이후 달라진 그림은 이 작은 마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 유명한 그림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 것이다. 결국 보르하 지방자치단체는 2016년 벽화 관련 센터까지 건립했다. 몰려드는 관광객과 상품 개발 등으로 작은 마을의 경제가 살아나자 자칫 범죄자 신분이 될 뻔했던 할머니는 일약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리스도가 스스로 몸을 던져 일으킨 기적일까?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잘못된 복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유물은 오직 사람의 손길을 통해서만 생명을 연장하며 살아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유물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변화부터 사고라고 불릴 만큼 큰 변화까지 여러 가지 변화를 겪게 되기도 한다. 유물은 그렇게 자신이 살아낸 시간을 몸에 새겨가고 있다. 유물이 품은 수백 년의 세월 앞에서 지금의 우리가 주장하는 여러 기준들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김겸 / ‘시간을 복원하는 남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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