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막장 드라마는 어떻게 고전이 되었나

송담(松潭) 2018. 10. 15. 17:19

 

막장 드라마는 어떻게 고전이 되었나

 

 

그리스로마신화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연극을 설명 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고전 작품 목록으로 고대 그리스 연극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리스 비극이다. 주로 기원전 4세기 전후 고대 그리스 무대에 올랐던 연극을 말한다. 기원전 4세기 전후는 셰익스피어가 풍자했던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와 더불어 인류 역사에서 연극이 한 시대의 문화적 중추로 찬란한 꽃을 피운 시기였다. 두 시기의 작품들은 현대 연극계에서 재해석을 거듭해 무대에 오르는 모태로 기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를 포함한 여러 예술 장르에서 형식과 내용에 적잖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수년 전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킨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는 고대 그리스 비극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대왕>의 내러티브와 주제를 차용해 변주한 전형적 패러디물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스 연극의 어떤 매력이 2500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끊임없는 관심을 자아내는 것일까.

 

    * 내러티브(narrative)이야기·사건전말·경험담 흥미 있게 정리하여 이야기하는 .(독자 임의 제공 설명자료)

 

 비극은 인간이 타고난 원초적 숙명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조명을 받는 작품은 대부분 비극이다. 왜 희극이 아니라 비극인가.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원조적인 측면에서 볼 때 비극이 인류 탄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을 보자. 어머니의 모태로부터 고통을 겪으며 분리와 단절을 통해 새 생명이 나온다. 아이가 처음 세상에 나오는 순간 웃고 있는 경우는 없다. 따뜻한 자궁이라는 공간에서 강제적으로 밀려나와 낯선 시공간을 만나고, 알 수 없는 공포와 불안으로 울부짖으며 태어난다. 모태로부터 분리되는 고통이 유아기에 있어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라면, 이후 정체성의 형성과 더불어 인간은 종국에 맞이할 죽음이라는 근원적 공포를 갖고 삶을 살게 된다.

 

 삶의 종착점이 죽음이라는 아이러니는 부조리 계열의 예술을 비롯한 현대예술에 주된 관심사로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 비극의 전략으로서 카타르시스 이론을 언급했다. 여기서 카타르시스는 극 중 등장인물이 겪는 관계와 상황에서 야기된 공포와 연민의 감정 배설을 통해 일상의 뿌리 깊은 고통과 두려움을 대리 해소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인간 존재의 유한성에 기반한 원초적 설명이 다소 피상적으로 느껴진다면, 그리스 비극이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내러티브 형식의 표현 예술이라는 설명이 보다 설득력 있게 들릴지 모른다. 그리스 비극의 내용은 대부분 기원전 8세기 무렵에 쓰인 신화와 영웅 설화를 근거로 한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 <일리아드>가 대표적인 예다. 혹자는 산해경과 같은 중국 신화나 인도의 3대 고대 서사 중 하나인 <마하바라타> 같은 작품에 뿌리를 둔 동양의 연극 전통이 그리스 비극보다 더 길지 않은가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연극은 공연의 주체인 배우와 객체인 관람자가 분리되지 않고 상호 일체감을 이루며 진행되는 형식이었고, 이런 제의적 전통을 오랜 세월 유지해왔다. 푸닥거리 하는 무당과 두 손 모아 빌며 이를 지켜보는 사람 모두가 굿이라는 하나의 제의 속에 어우러진 모습이 구체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그리스 연극은 신화적 소재를 정형화된 무대 공간에 객관적인 공연물로 대상화시킴으로써 작품과 관객, 공연자와 관람자 사이에 심미적 거리를 형성한다. , 제의적인 틀을 벗어나 공연하는 자와 바라보는 자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며, 관객이 객관적으로 무대 위에서 벌지는 사건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 비극은 비록 완전히 독립적인 공연 예술의 위상을 확보하지 못했을지언정, 인류 최초의 제의로부터 분리해 일종의 정형화된 내러티브 표현 예술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비극적 성찰을 통한 인생 상담

 

 비극은 인생의 근원적 질문 도대체 왜?’에 답하기 위한 인류의 몸부림을 담고 있다. 인간의 근원적 고통인 생로병사의 이유를 묻고 답했던 초기 인류의 물음에서부터 과학기술 문명의 진보가 극에 달한 현대인들이 느끼는 존재론적 소외에 대한 물음에 이르기까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직면한 위기와 한계의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본능적 궁금증을 갖고 있다.

 

 인간의 근원적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물음과 고뇌가 당면한 삶의 난제를 당장 해결해줄 수는 없다. 그러나 라는 물음을 집요하게 거듭해 나가는 과정 가운데 사람들은 행동과 선택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하고 나아야 할 방향을 성찰하게 된다.

 

 반복해서 연애에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와 상대방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문제에 대해 ''라고 물으며 그 까닭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삶의 난제 앞에서 반성과 성찰 없이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거듭된 실패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내 앞에 놓인 삶의 위기를 넘어서는 방법에 진지하고 비극적인 성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쉬운 방법으로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웃어넘김이 있다. 고된 삶에 지친 사람들이 유치하기 그지없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거나 허황한 액션이나 판타지로 가득 찬 영화를 보며잠시 고통을 내려놓고 쉼을 얻는 방식이다.

 

 하지만 비극은 고통을 직면하고 정면으로 돌파하려 한다. 회피하기보다 고통과 직면해 기꺼이 진땀 나는 씨름을 경주한다. 그 시도가 처절한 실패로 귀결될지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비극적 영웅의 실패는 보는 이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값진 생의 교훈으로, 또는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상대적으로 가볍게 만드는 위로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리스 비극의 위대함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가 직면한 존재론적 한계를 뛰어넘어 보려는 그 진지한시도와 몸부림에 있다.

 

 너무 인간적인 신들의 비극적 결함

 

 그리스 신화 및 비극의 세계는 완전무결한 신의 모습이 아니다. 철저하게 결핍된 존재로서 인간화된 신의 세계를 다룬다. 탐욕과 이기심, 욕망에 휩쓸려 좌충우돌하는 그리스 신의 모습은 영웅적 면모를 지닌 신화적 인간에 비해 오히려 불완전해 보인다. 파국의 원인을 이루는 비극적 결함 Tragic Flaw’에 있어 인간 영웅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리스 비극에서는 형제나 부부 사이는 물론 부자지간에도 유혈 낭자한 칼부림을 벌인다. 또 입에 담기 어려 근친상간과 살해의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진다. 도저히 의식적인 영역에서라도 상상하기 어려운 행위가 신과 인간의 이름으로 버젓이 자행된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 비극의 신과 영웅들은 인간이 자신의 목소리, 곧 의식의 영역을 통해 차마 드러낼 수 없는 생의 어두움과 비루함. 곧 무의식적 충동과 욕망을 반영하는 존재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의 정신분석학은 물론 각종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해석 할 때 그리스 신화가 여전히 유용한 통찰력의 원천이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인간의 의식은 물론 무의식의 세계를 비추는 거울로서 고대 그리스 연극은 인간의 존재적 조건이 궁극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잔혹한 진실성을 상실하지 않는다.

 

 박준용 / 배우 겸 연극 평론가

 ‘퇴근길 인문학 수업(백상경제연구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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