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요즘 왜 이렇게 권태로울까요?

송담(松潭) 2018. 11. 18. 22:50

 

요즘 왜 이렇게 권태로울까요?

 

 

무도회가 끝나고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라몬 카사스 이 카르보(1866~1932, 스페인)작

'무도회가 끝나고' 

 

 

아무렇게나 소파에 몸을 던져 불편하게 꺾인 허리, 초점을 한껏 풀어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시선까지, 당신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습니다. 책을 손에 들고 있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네요. 재미있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작은 짜증이 일고 동시에 알 수 없는 슬픔도 고이는 권태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나요?

 

 의아합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무도회가 끝나고입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불금을 화려하게 보내고 온 셈인데, 당신 얼굴에선 재충전된 행복감이 보이지 않아요. 그건 다른 명화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무도회가 끝나고’, ‘춤이 끝나고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명화 속 인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기력했어요.

 

 궁금합니다. 무도회는 재미있고 신나고 화려하고 설레는 순간을 상징하는데, 왜 즐기고 돌아와서는 저렇게 깊은 권태에 빠져버린 걸까요?

 

 첫 마음의 감격은 시간과 함께 사라진다. 눈에서 불꽃이 튀던 뜨거운 연애는 시간이 지나면 지리멸렬한 아침 드라마처럼 바뀌기 일쑤고, 기적처럼 얻게 된 감사한 일자리가 그저 밥벌이의 공간으로 무덤덤해지는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새록새록 솟아나는 새 마음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했지만 현실의 나는 시큰둥함과 슬픔이 뒤섞인 감정에 자주 빠졌다. 그때마다 매서운 회초리 같은 이 문장이 귓가에 맴돌았다.

 “초심을 잃지 말라.”

 

 그런데 이 충고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었다. 초심만 좋은 것이고, 초심에서 발전해 모양과 형태와 결이 달라진 마음을 그저 그런 걸로 오해하게 만든다는 것. 열정과 뜨거운 감정의 응어리로 꽉 찼던 첫 마음이 숙련, 편안함, 안정감 등으로 색깔을 바꿔갈 때, 그 변화에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처음의 감격만을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것. 그렇게 필연적으로 권태에 빠지게 한다는 것.

 

 무도회를 마치고 돌아온 여성들이 보여줬던 권태의 이유도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몸문화연구소에서 쓴 <권태> 속 한 구절을 보자.

 

 “우리는 그냥 일상이 아니라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이며 다이내믹한 일상이 되어야 한다고 무심결에 가정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그와 같이 다이내믹하게 전개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되었다거나 손해 보는 삶을 산다는 억울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만큼 쉽게 권태에 노출되는 것이다.”

 

 일상도무도회처럼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이며 다이내믹해야 한다고 믿고 기대하는 마음이 권태감을 동반한다는 말이다.

 

 산업이 발전해 문명이 풍요로워지기 전에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기쁨과 쾌락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땐 수명도 짧았고 노동시간도 현대인과 비교해 말할 수 없이 길었기 때문에 다이내믹한 삶에 대한 기대감 자체가 적었다. 건강이나 부, 행복 역시 개인이 노력해서 성취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 건 신의 뜻이고 선물이었다.

 

 유구한 변덕 끝에 난 이 자리에 도착했다. 이제는 단조로움이 인생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만 누구나 언제나 아플 수 있는데 왜 나라고 예외여야 해?” 하고 반문한다. 이제는 매일매일 흥미진진하게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는다. ‘어떤 날은 좋았다가 어떤 날은 나쁘기도 하겠지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나이 먹는 게 좋다고 느낄 때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요즘은 다르다 초심의 함정, 첫 마음의 망상에서 벗어나니 홀가분하고 자유롭다. 화려한 이벤트나 감각적인 자극이 없어도 즐겁고 행복할 수 있음을 안다. 지금 내가 속한 순간을 자꾸만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하며 깎아내리면 계속하는 힘을 내기가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사랑이든 일이든 마찬가지다. 끈기의 최대 적은 권태다 권태를 만드는 건 과도한 기대다. 매 순간이 무도회 이길 바라는 건 과도한 기대다.

 

 

return from the ball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앙리 제르벡스(1852~1929, 프랑스)작

'Return from the ball'

(무도회에서 돌아와)

 

 

 최혜진 / ‘명화가 내게 묻다중에서

 

 * 불금 :  불타는 금요일의 준말로, 토요일인 다음 날은 출근 부담이 없기 때문에 금요일 밤 친구·동료 등과 신나는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만끽하는 자유의 대명사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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