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이면 안 될까요?
영롱하게 빛나는 크리스탈 향수병, 부드럽고 섬세한 파우더 퍼프, 오일과 향유로 풍족하게 채워진 화장대가 있습니다. 퍼프로 톡톡 뺨을 두드리면 공기 중에 작은 분가루가 퍼져 나가면서 얼굴에 빛이 더해집니다. 크리스탈 병에서 새어 나온 향기 입자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드는 비밀스러운 곳에서 당신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명화에 자주 등장하는 치장하는 여자들과 뭔가 다릅니다. 정성껏 자신의 몸을 쓰다듬지도 빠져들 것처럼 거울을 들여다보지도 나른하고 매혹적인 표정으로 화장을 즐기지도 않습니다.
시선은 파우더 퍼프에 머물고 있지만 생각은 마치 저기 먼 어딘가를 헤매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한숨을 내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당신의 드레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꽉 조여맨 허리선, 갑자기 당신이 느끼고 있을 갑갑함이 전해져옵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여자에게 화장은 예의.”
“어엿한 성인 여성이 맨 얼굴로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건 민폐.”
“화장은 여자의 전투복이다.”
“화장한 여자가 더 프로페셔널해 보인다.”
“자신을 가꾸는 건 여자의 본능.”
화장에 관한 대부분의 말이 ‘민낯녀’인 나를 움찔하게 만들었지만 그중에서도 여자의 본능이란 말에선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럼 나는 본능을 거스르는 사람이란 말인가. 여자라면 모두 치장하는 게 재미있어서 까르르 넘어가기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왜 이런 말이 나왔는지 짐작은 된다. 화장술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구하고, 인류 문명 모든 시기에 유행하는 화장법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예뻐지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것도 비단 현대 사회 만의 현상이 아니다.
결핵 환자처럼 창백한 피부를 선호했던 낭만주의 시대에는 여성들이 아파보이기 위해 끼니를 굶고 식초를 마시고 레몬을 먹으며 위를 해치는 등 미친 듯이 자학 행위를 했다고 한다. 눈가에 기미가 있는 게 당시 유행이라 일부러 밤늦게까지 책을 읽으며 기미 만들기에 매진했다고도 한다. 여성 들이 납과 수은이 들어간 파운데이션사용을 그만둔 건 20세기 초반의 일이고 요즘 시대엔 얼굴뼈를 깎는 위험천만한 수술도 별일 아니라는 듯 행해진다.
이유는 명확하다. 어딜 가든 예쁜 여자가 더욱 대접받기 때문이다. 요즘은 남자도 외모지상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아직까지 치장은 대부분 여자의 일로 여겨진다. 이 사회에서 미모는 강력한 스펙이고 자산이다. 아침에 시간을 투자해서 자신감을 보강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가꾸고 있다는 산뜻한 느낌 때문에 화장한다는 말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외모에 과하게 신경 쓰면 머리에 든 것 없는 속물로 오해받는다. 치장을 하면서도 내가 너무 과한 건가. 검열하게 만드는 은근한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촌스럽고 천박해보이지 않으려면 한 듯 안 한 듯 투명하게 꾸며야 한다. 화장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지만 투명 메이크업이 쉽게 되는 게 아니다. 그 경지에 이르려면 더 많은 화장품과 숙련된 테크닉이 필요하다. 옷도 마찬가지다 신경 안 쓴 듯 보이면서 잘 입는 게 제일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의아함을 느끼는 순간은 또 있다. 출근시간에 쫓겨 지하철에서 다급하게 화장하는 여자를 추하다고 욕하는 사람을 볼 때,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자가 욕을 먹는 이유가 옆 사람에게 화장품이 튀어서, 밀폐된 공간에 냄새가 퍼지니까, 같은 실질적 이유라면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냥 꼴보기 싫다는 마음이 더 강할 것이다.
사실 화장하는 과정을 가만히 보면 명화 속 귀부인처럼 우아함을 뽐낼 수 있는 행위는 거의 없다. 메이크업베이스는 슬며시 배어나온 땀과 섞여 번들거리고 헤어드라이어로 머리 손질이라도 하려면 온 얼굴에 머리카락이 달라붙는다. 퍼프도 다소 경박스럽게 팡팡 두들겨야 투명 메이크업에 가까워지고, 마스카라를 마르려면 눈을 희번뜩 치켜떠야만 한다. 우리 인체 구조상 예쁘게 눈을 뜨고 마스카라를 바를 순 없다.
지하철에서 그 모든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이면 여러 사람의 환상이 깨지니까 혼자만의 공간에서 화장을 하고 나와 결과만 보여주어야 하는 걸까.
세계에서 제일 바쁘고 잠이 부족한 나라에서 얼마나 더 부지런을 떨란 말인지 사회 생활하는 여자의 ‘쌩얼’은 민폐라고 하더니 어떻게든 예의를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을 손가락질하는 심보는 또 뭔지.
내가 못마땅하게 여기는 건 ‘예뻐지고 싶은 건 여자의 본능’이라는 두루뭉술한 말 안에 숨은 모순된 명령이다, 민낯은 민폐니까 화장은 헤야한다. 하지만 티를 내서는 안 된다. 안 보이는 곳에서 테크닉을 연마해 우아하고 은은하게 해내야 한다. 옴짝달싹 못 하게 옥죄는 이 이중 명령 안에서 여자들이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는 건 너무 당연하다.
보통 명화 속에서 화장하는 여자는 관능적이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나른하고 몽환적인 눈길로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미모에 도취된 표정을 짓는다. 현대의 화장품 광고에서 여자 연예인들이 자주 보여주는 표정이기도 하다. 관람자가 자신의 욕망을 대입시켜 꿈꾸도록 환상을 자극하는 이미지들, 한마디로 가슴 뛰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15초짜리 화사한 광고 영상만 계속 보면서 살 순 없다. 정신 건강은 둘째 치고 그 천편일률적인 방식이 지루하고 재미없어서다. 때로는 화장하는 게 염병하게 귀찮고 누굴 위한 짓인지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해주는 블랙 코미디를 보면서 깔깔 웃고 싶은 사람도 있으니까.
벨기에 화가 조지 그로에게트 Georges Croegaert는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지만 한 번쯤 궁금해 했던 비밀스러운 순간을 보란 듯이 그려냈다. 그의 작품 속에서 치장의 의무를 가진 여자는 울상 짓고, 빨간 옷을 입은 추기경은 은접시와 호화로운 장식품에 둘러싸여 산해진미를 맛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예쁜 여성 초상화나 근엄한 성직자 초상화와 비교하면 그의 작품이 짓궂은 농담이나 위악적인 험담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믿는다. 이 그림을 보면서 통쾌해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나 혼자는 아닐 거라고.
최혜진 / '명화가 내게 묻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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