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길 떠나는 가족

송담(松潭) 2019. 1. 13. 23:06

 

길 떠나는 가족

 

 

 

 

 책상을 정리하다 우연히 그림엽서 한 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림에 길 떠나는 가족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지요. 그림에는 듬직한 휜 소가 끄는 긴 달구지에 아이들과 아내가 타고 있고, 손수 소를 이끌며 신명 나게 길을 떠나는 가장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 그림엽서는 두 해 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렸던 전시회 이중섭, 백 년의 신화에서 사온 것입니다.

 

 2016년은 이중섭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고, 동시에 그가 타계한 지 6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모처럼 이중섭의 작품들을 방대하게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덕수궁에서 열렸지요. 불운과 고난이 가득했던 그의 삶과 시대를 조명하는 자료들을 공개했더군요. 이중섭의 그림을 만나러 간 그 가을날의 오후도 전시장은 인산인해였습니다. 내심 기대했던 것처럼 여유롭게 감상할 수는 없었지만 그림을 보고나니 마음은 온통 먹먹함으로 차올랐고, 그 여운은 이후로도 오래 이어졌습니다. 또 많은 사람이 그의 그림을 기억하고 좋아하는 것이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던 예술가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중섭은 참으로 사랑했던 어머니를 원산에 두고 월남해야 했습니다. 전쟁의 끝이 군사분계선으로 결정되면서 결국 어머니를 다시는 뵙지 못했지요. 그는 동란 중에 제주도에서 피난살이를 했습니다. 피난을 떠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했지만 이중섭은 특히 더 가난했습니다. 부두에서 막노동 생활을 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렸지만 그래도 생활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몹시 사랑했던 일본인 아내 마사코(한국 이름은 남덕)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야 했지요.

 

 운명의 장난처럼 이중섭은 아내와 아이들도 어머니처럼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헤어진 상황에서 그의 큰아들인 이태현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첫째 아들은 일본으로 떠날 때 이미 병약한 몸이었지요. 그리워하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아들이 저승에서는 즐겁고 행복하게 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벌거벗은 아이들>이란 그림을 그립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벌거벗은 이 그림을 전시할 수는 없었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이중섭은 모든 굴레로부터 아이들이 벗어나기를 바랐던 듯합니다.

 

 이중섭이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면 가족에 대한 그의 깊고 진실한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행복한 가족의 재회라는 소박한 꿈이 허락되지 않은 고단한 예술가의 생애를 알기에 읽을수록 마음은 더욱 무거워집니다. 제주도에는 이중섭이 한때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던 이중섭 거주지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근처에는 이중섭미술관도 있는데, 그가 제주도 피난 시기에 자신의 방에 적어두었다는 자작시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의 조카가 기억해두었다가 훗날 발표한 것이지요. 이중섭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에 자신의 자아를 투영 한소의 말이란 시입니다.

 

 

 높고 뚜렷하고 / 참된 숨결 /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 두북 두북 쌓이고 / 철철 넘치소서 // 삶은 외롭고 / 서글프고 그리운 것 // 아름답도다 여기에 / 맑게 두 눈 열고 // 가슴 환히 /헤치다.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움으로 가득 찬 삶이었습니다. 병원을 전전하다 불과 마흔의 나이에 무연고자 신세로 숨을 거둔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이중섭은 지켜보는 이 없이 1956년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죽은 뒤 며칠이 지난 뒤에야 발견되었을 정도로 방치되었다고 하네요. 참으로 쓸쓸한 죽음입니다. 하지만 그의 예술은 지금도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예전부터 많은 사람이 그를 한국의 반 고흐라고 불렀습니다. 두 사람은 가난과 고독으로 점철된 헐벗은 삶 속에서도 끝내 예술혼을 버리지 않았던 고결한 정신을 가진 화가였지요. 그들은 죽음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졌고요. 생각해보면 둘은 이렇게 닮은 듯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새삼 한 사람의 생애는 육신의 소멸과 더불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정신과 더불어 현재 이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에 오늘도 위로를 받습니다.

 

 최대환 /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