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좋은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송담(松潭) 2018. 12. 16. 08:06

 

좋은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독일의 정치가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서 매우지만 현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경험에서 배운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값진 경험을 토대로 벤치마킹할 수 있는 책은 보물이다.

 

 “모방 속에 창조가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 두 문장의 의미를 합하면 모방과 창조는 백지 한 장 차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창조성을 언급할 때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하는 것처럼 창조를 특별하게 여기기도 하지만 창조는 모방 속에서도 나온다.

 

 좋은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입체파의 창시자라고 꼽는 파블로 피카소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에 더해 세기의 천재 아인슈타인조차 창의성의 비밀은 그 출처를 숨기는 것이라고 했다. 스티븐 잡스 또한 창의적인 사람은 약간의 죄책감을 갖고 있노라고 고백했으니 세상에 완벽하게 새로운 산물은 없다. 무엇인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자신의 생각이 더해져 창조물이 나오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었거나 동기부여가 된 책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문제 상황의 답이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답을 찾을 때는 정답이 하나만 있지는 않다. 개인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책을 읽는 묘미이고 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책에도 정답은 없다. 정답은 없지만 많은 길로 안내해준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그건 개인의 몫이다. 걸어가는 노력도, 성취도 누가 대신해줄 수 없다. 에디슨의 모방이 빛을 발한 건 그가 흘린 땀방울과 노력한 시간의 결과물이지 단순한 모방의 산물이 아니다. 책은 밤하늘의 길을 인도해주는 북극성이고 걸어가야 하는 것은 나그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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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음을 통한 교육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 유대인들이다. 그들의 교육방법은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배운 것에 대해 토론하는 방식이다. “어떻게 생각하니?”, “왜 그렇게 생각하니?”와 같이 끊임없이 질문을 주고받는 방식인데 하브루타 교육법이라고 한다.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며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상상력과 창의력 기르는 교육이다. 물음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사물과 세상의 본질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세계 인구의 0.2%밖에 되지 않는 유대인들이 노벨상의 23%를 받았다. 그들은 미국 전체 인구의 2% 정도인 600여만 명의 인구로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업종과 직종의 최상위에서 미국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대인의 교육방법은 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천 년 전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일신을 숭상하던 그들에게 로마는 개종과 황제 숭배를 종용했다. 경전이 불타고 정신적 구심체가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문화, 민족 그리고 경전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고자 힘썼다. 랍비들은 탈무드와 구약성서를 연구하고 유대인의 문화·역사·경전을 가르쳤다. 묻고 생각하고 답하는 수업을 통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상속하였다. 그들이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살면서도 숱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하브루타교육에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베니스의 상인은 르네상스시대 유럽에서 가장 번영했던 도시 베니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베니스 상인 안토니오는 그의 절친이자 방탕한 생활을 하는 바사니오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안토니오의 악몽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면서부터 시작된다. 평소 안토니오를 눈엣가시로 생각한 샤일록은 잔인한 조건의 계약을 만든다. 만약 약속기일까지 돈을 갚지 못할 때는 1 파운드의 살을 베어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돈을 못 갚게 된 안토니오에게 법정 판사는 1파운드의 살을 베는 대신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지혜로운 판결을 한다.

 

 유대인은 예나 지금이나 막대한 돈을 쥐고 사회와 국가를 뒤흔든다. 그들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편견은 아직도 여전한데, 그 밑바탕에는 시기와 질투가 깔려 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도 유대인에 대한 미움에서 시작되었다. 히틀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을 경제동물이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그들의 긴 역사를 들여다보면 나라 잃은 환경이, 타 민족의 소외가 그들을 돈에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국가에 종속되어 일할 수도 없고 땅도 살수 없도록 만든 법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장사였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어디에 정착하든 디아스포라라는 자신들만의 정착촌을 만들고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유대인식 하부르타 교육을 시켰다. 이는 생각을 멈추지 않게 하고 자신만의 답을 구하게 만든다. 또한 실험을 통해 그 답의 근거를 제시해 논리력까지 키운다. 이 같은 기질로 유대인들은 경기가 좋든 나쁘든, 지도자가 누구든 간에 최고의 장사꾼들이 될 수 있었다.

 

 물음표는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사고의 확장을 넘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다. 마침표 독서는 책과 작가의 노예로 만들뿐이다. 맹목적으로 읽지 말고 의심과 호기심을 갖고 뇌를 활성화시키는 물음표 독서를 하자.

 

 

몸에 새긴 기억은 오래 지속된다

 

 

 독서의 방법 중 온몸으로 읽는 것은 최상의 방법이다. 신체기관을 이용하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이해력과 기억력이 증가한다. 필사는 온몸으로 읽는 방법이다. 베껴 쓴다는 의미의 필사는 글을 옮겨 쓰는 동안 눈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하며, 가슴으로 느끼고 손을 움직여 온몸에 새기는 행위다. 그렇기에 필사는 책을 잘 읽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필사는 책 속 인물을 복제하여 자신의 내면에 들이는 작업이다. 자신이 닮고자 하는 인물의 태도나 생각을 자신의 태도와 생각으로 만들 수 있고 그의 능력까지도 물려받을 수 있는 기회다. 깊은 사색으로 사고를 확장하고 작가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공들여 읽고 인내하며 쓴 시간과 고통을 감수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인내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주고 문제의 답을 준다. 음악의 신동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분명 천재였다. 하지만 타고난 게 아니라 노력의 결과였다. 그의 곡들이 오직 영감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당대의 음악 대가들을 연구하고 수없이 악보를 필사하고 나서 얻은 결과물이었다. 모차르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내가 쉽게 작곡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실수라네. 단언컨대 친구여, 나만큼 작곡에 많은 시간과 생각을 바치는 사람은 없을 걸세. 유명한 작곡가의 음악치고 내가 수십 번에 걸쳐 꼼꼼하게 연구하지 않은 작품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야.

 

 모차르트의 손가락은 이미 20대에 굳어 기형이 되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악보를 필사하고 치열하게 연구했는지 말해준다.

 

 글 쓰는 작가들은 필사를 즐긴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신경숙은 스스로 필사를 통해 실력을 키웠음을 솔직하게 말한다. 그들은 좋은 책이나 작가의 글을 장인이 한 땀 한 땀 가방을 꿰매듯이 따라 적었다고 한다.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대신하여 체험하고 영혼의 힘으로 작가의 능력을 빨아들인 것이다. 작가 지망생들 또한 필사라는 관문을 통해 글 쓰는 능력을 향상 시킨다.

 

 필사는 생산적인 독서법이다. 책 읽기가 생각을 확장하는 것이라면 필사는 생각을 정리하고 숙성시키는 것이다. 삶이 고단한 사람과 글쓰기 실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글쓰기 능력을 키워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필사는 자신을 성찰하게 한다. 행간에 담긴 뜻을 찾아내고 본질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수록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되는 것이다. 원하는 것, 바라는 능력을 그대로 물려받는 행위가 필사이다. 온몸으로 읽어 보자.

 

 

숙독과 다독

 

 

 숙독은 천천히 읽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고 깊게 읽는 방법이다. 숙독의 방향 또한 두 갈래가 있다. 하나는 사색과 통찰을 통해 얻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음으로써 모든 내용을 통달하는 방법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 훑어 읽는 통독을 다섯 번 하면 정독이 되고 열 번 하면 숙독이 된다. 이해가 부족하면 두 배를 더 읽으면 된다.

 

 독서의 유형으로는 T형 독서가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다방면의 책을 읽다가 필요나 관심에 따라 한 우물을 깊게 파는 형식이다. T형 글자가 중복되고 굵어질수록 통찰력이 높아지고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입문서나 실용서를 가볍게 읽는 통독이 가로획에 해당되고 깊은 사색을 필요로 하는 숙독은 세로획의 깊이다. 통독하는 사람이 제너럴리스트라면 숙독하는 사람은 스페셜리스트가 된다. 남들보다 좀 더 많이 생각하고 깊게 생각하는 숙독은 자신을 책 전문가로 만드는 방법이다.

 

 숙독은 천천히 글을 음미하며 읽는 방법이기도 하다.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면 행복감을 느끼듯이 음미하며 읽는 숙독에는 즐거움이 있다. 본질을 알아가는 기쁨과 진리를 발견하는 쾌감이 가득한 독서다. 독서의 진정한 맛이 여기에 있다. 독서광들이 골방에 처박혀 두문불출하고 책을 읽는 이유이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양질 전환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 양이 축적되고 쌓여야 질적 전환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물을 끓일 때 99도까진 아무런 변화가 없다. 하지만 100도가 되면 물은 수증기로 변한다. 액체가 기체로 되는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99도에서 평온했던 물이 1도가 높은 100도에서 형태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99도까지의 가열된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다독 또한 마찬가지다. 한두 권 읽은 책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체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을 변화시키는 인생의 전환점 같은 책을 만난다. 소위 내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이 되는 것이다. 그 한 권의 책이 99도의 물을 1도 더 올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힘은 그동안 읽어왔던 수많은 책의 힘이다. 봄의 화려한 벚꽃은 따스한 햇빛과 비의 결과이기보다는 춥고 긴 겨울을 이겨낸 인고의 시간에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읽은 책의 양이 적으면 질적인 변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정독과 숙독을 통해 얻은 지식과 깨달음은 사고력을 확장시키고 통찰력을 충분히 길러준다. 하지만 창의적이고 통섭적인 인간이 되어 세상을 바꾸기에 2%의 부족함이 있다. 새롭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생각이 만나 창의와 통섭이 강화되고, 이를 실천할 분야가 필요하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다독이다. 혼돈의 우주 속에서 빅뱅이 일어나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빅뱅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다독이다. 책에서 습득한 지식, 정보, 교양, 철학이 큰 폭발을 일으키는 데 그것이 바로 다독의 본질이다. 빅뱅 같은 힘을 얻기 위해서 많은 책을 읽는다. 현학을 뽐내기 위함이 아닌 자신과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여기에 방법이나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땀과 노력을 들인 인고의 시간만이 있을 분이다. 이런 빅뱅을 경험한사람은 빅뱅 후 잔잔한 우주와 같다. 맘이 평온하고 얼굴에는 광채가 난다. 영혼의 평안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는 읽은 책의 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은 시간과 깨달음의 양에서 온다.

 

 

 

 

 

 중국의 극동 지방에는 모소대나무가 있다. 높이가 30m 정도까지 자라는 대나무다. 씨를 뿌리고 물과 거름을 주고 여러 해 동안 정성을 다해 키우지만 한 해가 다 지나도 싹이 나지 않는다. 두 해가 지나도 전혀 변화가 없어 죽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3년째가 되면 3cm 정도의 조그만 죽순이 삐죽 고개를 내민다. 4년이 흘렀지만 그 모습 그대로다. 기다림에 지쳐서 포기할까도 싶을 5년 차가 되었을 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 하루에 50cm까지도 자란다. 30m 높이의 성장까지 필요한 시간은 단 6주에 불과하다. 씨앗을 뿌리고 완전 성장을 하는 데 5년이 걸리지만 지극히 짧은 시간 내에 모든 성장을 마치는 것이다.

 

 뿌리 독서는 독서나무가 튼튼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든든한 받침대 역할을 한다. 모소대나무가 6주 동안 30m의 대나무로 폭풍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4년 동안의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는 엄청난 생명 활동이 있었다. 30m의 대나무를 성장시키고 지탱할 만큼의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나무 높이의 수십 배, 아니 수백 배 이상으로 대나무의 뿌리가 성장한 것이다.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죽거나 성장이 멈춘 것이 아니다. 뿌리는 땅속 깊이 파고들어 내일의 성장을 준비한다. 물이 있는 곳까지 뿌리를 뻗기 위해서 돌과 바위를 뚫기도 하고 온몸으로 끌어안기도 한다. 영양분을 더 많이 섭취하기 위해 수많은 잔털을 비옥한 땅으로 뻗친다. 준비가 철저하게 되면 엄청난 변화에도 끄떡없이 대나무로 성장한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독서 성장을 피부로 느끼기 위해서는 뿌리독서가 잘 뒷받침돼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책에서 삶을 변화시킬 만한 힘을 얻지 못하고 책을 외면하는 이유는 뿌리 내림 없이 가느다란 줄기에 열매만 풍성하기를 바라는 조급함 때문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지었으니 무슨 도움을 얻을 수 있겠는가. 뿌리독서는 건물의 기초이자 독서나무의 힘을 바닥에서 떠받치는 원동력이다.

 

 

 황민규 / ‘독서가 필요한 순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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