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고무신 / 오영수

송담(松潭) 2018. 2. 22. 17:17

고무신 / 오영수

 

 

 보리밭 이랑에 모이를 줍는 낮닭 울음만이 이따금씩 들려오는 고요한 이 마을에도 올봄 접어들어 안타까운 이별이 있었다.

 

 바다와 시가지 일부가 한꺼번에 내다보이는 지대가 높고 귀환 동포가 누더기처럼 살고 있는 산기슭 마을이었다. 그렇기에 마을 사람들은 철수 내외와 같이 가난뱅이 월급쟁이가 아니면 대개가 그날그날의 날품팔이이다.

 

 밤이면 모여들고 날이 새면 일터로 나가기가 바빴다. 다만 어린 아이들만 이 마을 앞 양지 바른 담 밑에 모여 윤선(동력으로 움직이는 배)이 오고가는 바다를 바라보고, 윤선이 보이지 않는 날은 무료해 지쳐 버린다.

 

 그러나 이 단조한 마음, 무료한 아이들에게도 단 하나의 즐거움은 있었다. 그것은 날마다 찾아오는 젊은 엿장수였다. 내려다보이는 아랫마을을 거쳐 보리밭 사잇길로 이 마을을 향해 올라오는 엿장수는 가위를 째깎거리면서,

 “자아 엿이야, ? 맛 좋고 빛 좋은 울릉도 호박엿-처녀가 먹으면 시집을 가고 총각이 먹으면 장가를 들고.. . ”

 

 언제나 귀 익은 타령이건만 이 마을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새롭고 즐겁고 또 신이 나는 넋두리였다. 엿장수가 마을 앞까지 채 오기도 전에 아이들은 벌써 길목에 쭉 모여 서서 개선장군이나 맞이하듯 기다리고 섰다. 그러면 장수는 더한층 가위 소리를 째깍거리고 길목 돌 위에다 엿판을 턱 내려놓고는 자 어떠냐?' 하는 듯이 맛보기를 주면 아이들은 서로 다퉈 담을 치고 들여다본다. 그러나 막상 엿을 사 먹는 아이는 좀체 보이지 않고, 떨어진 고무신짝이나 가지고 와서 바꿔 먹는 아이가 없지는 않으나 그것도 매일 같이 있을 리는 없다. 아이들은 사 먹지는 못할망정 보기만 해도 좋았다. 그 뽀얗게 밀가루를 쓴 엿가락이 가지런히 누워 있는 엿판을 들여다보고 있을 양이면 저절로 입에 군침이 괴고 마음까지 흐뭇해지는 것이었다. 이 마을의 아이들에게 엿장수의 존재란 커다란 매력이었다. 이 마을의 아이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것이 엿장수였을지도 모른다.

 (...생략...)

 

 남이는 또 말을 계속 했다.

 "지가 빨래를 해 가지고 오니 골목에서 영이와 윤이가 엿을 먹고 있기에 원 엿이냐니까 싱글벙글 웃기만 하고 달아나는데, 이웃 아이들 말이 옆집 순이가 헌고무신 한 짝을 가지고 와서 엿을 바꿔 먹는 것을 보고 윤이가 집으로 들어가서 신 한 짝을 들고 나와 엿장수에게 팽개치다시피하고 엿을 바꿔가지고 갔는데, 조금 뒤에 영이가 또 한 짝을 갖다 주고 엿을 바꿨대요."

 “그래 그 엿장수는 어느 놈인데?”

 “매일 단골로 오는……

 “머리털 덥수룩하고 젊은 총각 놈 말이지? , 이놈의 엿장수 오기만 와 봐라!”

 (...생략...)

 “, 남아 신을 도로 찾아 주든지 아니면 새로 사주든지 할 테니 바가지 너무 닥뜨리지 말고 그릇 조심해라."

 (...생략...)

 영이와 윤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웃옷을 벗기고 베게를 베어 주고 철수도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누웠다. 밖은 물기 먹은 초열흘 달이 희붓한데, 남이는 설거지를 마쳤는지 부엌은 조용하다 어디서 아낙네들의 소리가 먼 듯 가까운 듯 들려오고 밤은 간지럽게 깊어 갔다.

 

 남이가 세숫대야에 걸레랑 헌 양말이랑 담아 옆에 끼고 막 대문을 나서는데 엿장수의 가위 소리가 들려왔다. 엿장수는 마을 중턱 보리밭 사잇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남이는 대문 설주에 몸을 붙이고 엿장수를 기다렸다. 엿장수는 마을 앞에 오자 한층 더 목청을 높혀,

 “자아, 떨어진 고무신이나 백철 부서진 거나 삼베 속곳 떨어진 거나째깍째깍

 (...생략...)

 “내 신 내놓소!”

 (...생략...)

 “가만있소. 도가에 가보고 신이 없으면 갖다 주고말고, 만일 신이 없으면 새 신이라도 사다 줄게요. 염려 마소!”

 하고는 남이의 발을 눈잼(눈짐작)하는데, 이때 난데없이 굵다란 벌 한 마리가 날아 와 남이의 얼굴 주위를 잉잉 날아돈다. 남이는 상을 찌푸리고 한 손을 내저어 벌을 쫓고, 목을 돌리고 하는데, 벌은 갑자기 남이 저고리 앞섶에 붙어 가슴패기로 기어오르고 있다.

 이 것을 조마조마 보고 있던 엿장수는 "요놈의 벌이.” 하고 손바닥으로 벌을 딱 짚어 눌렀다. 옆에서 보기에도 민망스런 순간이었다.

 

 (...생략...)

 

 날씨는 한결같이 좋았다. 산기슭 잔디 언덕에는 쑥 싹을 캐는 소녀들의 색 낡은 분홍치마가 애틋하게 정다워 보이고 개울가에는 냉이랑 독새랑 여뀌랑 미나리랑 싹이 뾰족뾰족 돋아났다.

 엿장수는 한결같이 왔고 와서는 갈 줄을 몰랐다. 어떤 날은 벙글벙글 웃었고, 웃는 날은 애들에게 엿을 나눠 주었으나 벙어리처럼 덤덤히 앉았다가 가는 날은 엿 맛을 못 보았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엿장수가 오면 엿판보다 먼저 엿장수 눈치부터 보는 버릇이 생겼다.

 요즘은 그 텁수룩한 머리에다 기름 칠갑을 해 가지고는 억지로 빗어 넘기고 또 옥색 인조견 조끼도 입었다. 낯익은 동네 아이들이 "엿장수 요새 장가갔는가 베?" 라고 할라치면 엿장수는 수줍게도 씩 웃으며 그 펑퍼짐한 얼굴을 모로(옆으로) 돌리고 했다.

 

 하루는 철수가 저녁을 딴 데서 치르고 늦게 돌아오는데, 어떤 젊은 사내가 대문 틈으로 정신없이 집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철수는 이놈이 바로 좀도둑이거니 하고 손가방으로 궁등짝을 후려치며,

 “웬 놈이냐?”하고 고함을 질렀다. 사나이는 그야말로 뱀이나 밟은 것처럼 기겁을 하고는 철수를 보자 이내 한손을 머리로 올리고 꾸벅꾸벅 절만 했다.

 “뭣을 훔치려고 노리는 거야?"

 "아 아니올시더. , , 저 댁의 강아지가, , 헤헤....”

 “강아지가 어쨌단 거야?"

 ", 저 아니올시더. 헤헤

 연신 허리를 꾸벅거리고는 비슬비슬 달아나 버렸다.

 “그놈 미친놈이군!"했을 뿐, 그 사나이가 엿장수인 줄 철수는 몰랐다.

 

 밤이면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고, 그런 밤이면 마을 사람들은 안팎 문을 꼭 꼭 걸어 닫았다.

어떤 사람은 철수네 집 담 밑에서 도둑놈을 보았다고도 했고 동네 우물가에서도 보았다고들 했다. 그러나 막상 도둑을 맞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건만 마을에서는 도둑 소문이 자자한 채 달도 바뀌고 제비 올 무렵 어느 날 저녁녘에 우연히도 남이 아버지가 찾아왔다.

 

 철수 내외가 남이 아버지를 맨 나중 만나기는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 윤이가 나던 해였다. 그리고 삼년이 지났다. 삼년 동안 남이 아버지는 많이도 변했다. 머리는 검은 털보다도 흰 털이훨씬 많았고, 그 길숨한 얼굴은 유지를 비벼놓은 것처럼 주름이 잡혔다.

 "내가 달리 온 것이 아님 더!"

 하고는 담배를 잰다. 철수 내외는 암만해도 이 영감이 딸을 보러만 온 것이 아니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무슨 일인데요? 새삼스리?"

 그러나 남이 아버지는 안 그런가요? 내가 나이 칠십에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

 그러고는 담배를 소리 내어 쭉쭉 빨고 나서,

 “내가 오늘 온 것은 다름이 아니올시터-저 남이 말임더, 저것을 내 산 동안에 짝을 맞차 놔야 안 되겠는교?" 하고는 또 담배를 빨기 시작한다.

 

(...생략...)

 

 바로 이때다. 골목에서 엿장수 가위 소리가 들려왔다. 남이는 재빨리 윤이를 업고, 영이의 손목을 잡은 채 밖으로 나갔다. 남이 아버지는 벌써 저만치 철수와 하직을 하면서 내려가고, 엿장수는 막 철수네 집 앞에서 대문을 나서는 남이와 눈이 마주쳤다. 엿장수는 얼빠진 사람처럼 남이를 바라보는데 남이의 눈에는 순간 어두운 그림자가 지나갔다.

 

 남이는 윤이를 업은 채 허리를 굽히고, 몸을 돌려 치맛자락을 걷고 빨간 콩주머니에서 십 원짜리 두 장을 꺼내 엿장수를 주었다. 엿장수는 그제서야 눈을 돌려 남이와 돈을 번갈아 보다 말고, 신문지 조각에 엿을 네댓 가락 싸서 아무 말도 없이 돈과 함께 내민다.

 

 남이는 약간 망설이다가 역시 암말도 없이 한 손으로 받아 가지고는 영이를 앞세우고 안으로 들어왔다. 엿장수는 멍하니 대문만 쳐다보고 있다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나서 엿판을 둘러메고는 혼잣말로,

 “꽃놀이를 가면 자천 골짜기지. 그럼 한 걸음 앞서 울음고개로 질러감 되겠지."

 이렇게 중얼대면서 엿장수는 빠른 걸음으로 담 모퉁이를 돌아 울음 고개로 향해 갔다.

 남이는 그 엿장수에게서 받은 엿을 영이에게 둘, 윤이에게 둘 각각 손에 쥐여 주고서도 한 동강이 잘라 입에 넣고는 손수건으로 윤이 눈물 자국과 영이 코밑을 닦아주고서야 보퉁이를 들고 일어섰다. 영이와 윤이는 엿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철수 아내는 보통이 한 개를 들고 따라 나오면서 남이에게 귀엣말로 뭣을 일러주고....

 이래서 남이는 떠나간다. 다만 한 가지 철수 내외에게 수수께끼는 마을 중턱에서 남이를 보내고 서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는데, 남이가 어이한 옥색 고무신을 신고 가는 것이다. 더구나 한 번도 신지 않은 새것을....

 

 철수 내외는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도로 물어본달 수도 없고 해서 그만 두었다.

 

 보리밭 사이 조그만 언덕길로 옥색 고무신을 신은 남이는 갔다. 자천 골짜기로 꽃놀이를 가는 줄만 알았던 남이가 난데없는 영감 하나를 따라가고 있는 광경을 엿장수는 울음 고개 위에서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남이 자신이야 알 리도 없었다.

 

 

 오영수(1914~1979)/ 고무신(1949) 중에서

 -1949년 작품

소설 : 단편소설, 순수소설 

 특징 :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고무신이란 제재로 잘 표현함.

 주제 : 엿장수와 식모의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 

 

고무신>의 본래 제목은 <남이와 엿장수> 였으나, 교과서에 실리면서 <고무신>으로 바뀌었다.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고무신이란 제재를 사용하여 시적으로 표현한 절제의 미가 돋보이는 단편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엿장수는 영이와 윤이에게 친절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남이와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순수한 엿장수와 남이는 따로 만남을 갖게 되고, 남이 역시 엿장수를 향한 마음이 진심이었기에, 철수의 집을 떠나 혼인해야 된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밤새 울어 눈이 붓는다.

 

 남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옥색 고무신이며, 마지막에 역시 엿장수가 새로 사준 옥색 고무신을 남이가 신고 가는 장면을 부각시킨 것은 도시화, 문명화, 기계화로 훼손된 인간 존중의 가치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며, 소박함과 순수함을 중요한 가치로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단편소설 베스트39’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