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섬 같은 도시의 ‘섬 손녀’
사진출처 : 섬소녀
고향이 제주도라고 했다. 이른 아침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서면 등 뒤로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봄이면 학교 앞 유채밭이 노랗게 물들던 곳에서 자란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섬을 떠났다고 했다. 섬에서 자란 아이들은 모두 뭍으로 나가는 것을 꿈꿨다. 젊은 시절 물질을 한 할머니는 눈에 닿지 않는 육지만 바라보는 손녀딸에게 거기라고 세상살이가 더 낫겠냐면서도 떠나는 것을 말리지는 않으시더란다.
“제가 할머니 손에 컸거든요. 할머니만 두고 나오는 게 가장 힘들었지요.”
서울 변두리에 방을 얻고, 미용학원에 등록하면서 시작한 그의 서울살이는 녹록지 않았다. 반지하방은 비가 내리면 구석구석 곰팡이가 피었고, 아침 일찍 학원에 갔다가 저녁나절이면 도심의 미용실에서 밤늦도록 보조 일을 한 그의 얼굴에는 난생처음 버짐이 피었다.
“보조일 할 때는 쉬는 날도 없었어요. 독한 약을 맨손으로 만지니까 손바닥이 다 갈라지고, 제때 밥을 먹지 못해서 위장약을 달고 살았어요. 지금도 위가 안 좋아요.”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마치 스포트라이트처럼 자신의 인생을 비춰줄 줄 알았던 그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도시의 불빛이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 알았다고 했다. 도시는 할머니가 헤치고 나갔던 차가운 바다와 다르지 않았다. 바다밭에서 오장육부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면서도 숨을 꾹 참아야 했던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얼마나 서글픈 소리였는지, 그는 이제야 알 것 같다고 했다.
“제가 중·고등학교 때 할머니 말을 되게 안 들었어요. 우리 때는 절대로 염색이나 화장을 하면 안 되었는데 굳이 그걸 했다니까요. 할머니가 안 해도 예쁘다고 했지만, 귓등으로도 안 들었어요.”
그는 옆자리에서 머리를 염색하고 있는 앳된 여학생을 힐긋대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그죠? 애들은 그냥 그대로 정말 예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은 그냥 그대로 예쁘다. 그리고 외로운 섬과 같은 도시에서 혼자 꿋꿋하게 살아가는 그도 정말 예쁘다.
김해원 / 동화작가
(2008.3.7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