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기다리는 일

송담(松潭) 2018. 3. 14. 05:59

 

기다리는 일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유수의 종합병원이라 그런지 크고 복잡했다. 주차장에 차가 많아서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차에서 내려 해당 건물에 들어서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차가 많다는 것은 사람이 많다는 말도 된다. 아픈 사람들과 아픈 사람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병원 안팎에 있었다. 초조함을 이기기 위해 담배를 피우는 사람과 수술실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푹 수그린 채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진료실 앞에서 호명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접수하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번호표에 적힌 숫자를 통해 이미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병원을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병원에서의 일은 참는 일, 기다리는 일, 묵묵해지는 일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거나 TV를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집중하다가 만에 하나 제 순서를 놓쳐버리기라도 하면 다시 처음부터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와 5분을 면담하기 위해 세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의 진료가 끝나고 나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기다리는 일은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임을 몸소 깨달았다. 기다림이 다음 주로 한 주 유예되었다. 앞으로 기다릴 일은 더 많을 것이다. 기다리기 위해서, 기다림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몸은 더 바빠질 것이다.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지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들도 있을 것이다. 기다림을 위한 앞선 기다림이 있을 것이다

 

 지금껏 무수히 많은 기다림이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연락을 기다리며, 연락이 끊긴 소중한 사람이 잘 지낸다는 소식을 기다리며, 수학여행을 기다리고 체육대회를 기다리며 나는 마냥 설레기도 하고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어떤 기다림은 기약 없어서 허무했고 인내를 시험하는 기다림도 있었다. 만나기 위해서 기다려야 했고 쓰기 위해서 기다려야 했다.

 

 아무리 많이,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기다림은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기다리다라는 단어는 동사지만, 왠지 형용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정한 동작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태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하지만 기다리는 동안, 가슴 속에서 무수히 많은 마음들이 움직였을 것이다. 걱정과 기대가 뒤섞인 감정이 여기서 저기로 나아갔을 것이다. 개중 어떤 감정은 어쩔 수 없이 되돌아왔을 것이다.

 

 조용미 시인의 유적이라는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은사시나무 껍질을 만지며 당신을 생각했죠/ 아그배나무 껍질을 쓰다듬으면서도/ 당신을 그렸죠 기다림도 지치면 노여움이 될까요.” 희망을 잃지 않는 한, 기다림은 여전히 진행 중일 것이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할 것이다. 몸과 마음은 계속해서 법석일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기다리다는 동사가 맞는 것 같다

 

오은/시인

(2018.3.13 경향신문)

 

겨울은 가고

 

 

지난 겨울, 감기에 걸려 오랫동안 불편했다.

 겨울의 초입부터 봄을 기다렸다.

 

 때론, 기다림으로

 아까운 세월을 재촉하는 우(愚)를 범한다.

 

 그때 기다리던 봄이

  벌써 내곁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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