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낭만에 대하여

송담(松潭) 2017. 1. 17. 16:44

 

 

낭만에 대하여

 

 

 

 

 

 단군 이래 최악의 불경기에다가 최순실 게이트까지 겹쳐 어수선하고 스산한 어느 날, 택시 안에서 영원한 낭만 가객최백호가 부르는 낭만에 대하여를 듣노라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 보렴.”

 문득 대학에 다니던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때는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서 도라지 위스키를 잔으로 팔았다. 말이 위스키지 막소주에다 색소를 첨가했을 것 같은 조악한 술이었으나 그래도 위스키랍시고 훌쩍이면서 인생과 우주를 논하며 개똥철학을 펼쳤다. 그렇게 그 시절엔 낭만이 있었다.

 그런데 20171, 이 땅엔 낭만이 사라졌다. 왜 그럴까? 낭만에 젖을 여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출근 시간에 버스나 전철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라. 모두가 생활에 찌든 표정들이다. 그들의 얼굴엔 팍팍한 삶의 찌꺼기가 묻어 있다.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은 오로지 대학 입시 준비에 골몰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해서 들어간 대학도 그들에게 낭만을 즐길 여유를 주지 않는다. 취업이라는 더 큰 산이 가로 놓여있는 것이다.

 알뜰하게 우리의 건강을 챙겨 주는 의학 전문가들도 우리에게서 낭만을 뺏어 가고 있다.

 ‘하루에 술을 석 잔만 마셔라’, ‘나트륨 섭취를 줄여라’, ‘담배는 백해무익하다등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건강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데 이들이 권고하는 대로 수칙을 지키며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의 권고는 마치 우리에게 중처럼 살라는 말로 들린다. 수도승처럼 엄격한 계율에 따라 살면 수명이 다소 늘어나기는 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중처럼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중처럼 사는 삶에 낭만이 깃들 여지는 없지 않을까.

 이 시대는 사람들에게 낭만을 허용하지 않는다. 복잡한 현대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으로서의 역할만 강요할 뿐이다. 이 기계는 쉬지 않고 돌아가기 때문에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대학교수들은 객관성 없는 연구 업적 때문에 학문 아닌 학문을 하는 체해야 하고, 기업체의 사원들은 가정생활을 희생하면서까지 숨 쉴 틈 없는 업무에 매달려야 하며, 국회의원들은 뻔뻔한 거짓말을 항상 궁리해야만 한다. 그러니 어디에 낭만이 끼어들 수 있겠는가.

 그러나 각박한 현실이 아무리 우리를 옭아매더라도, 아니 그럴수록 숨 돌릴 마음의 여유가 때로는 필요하지 않을까? 최순실도 잠시 잊고 세월호도 잠시 잊고, 무거운 일상의 짐도 잠시 내려놓고 낭만적 환상에 젖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치기 어린 감상이어도 좋다. 또 그 속에서 약간의 일탈을 꿈꾼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 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 보렴.”

 첫사랑의 소녀 또는 소년을 떠올리며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만은 현실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 낭만의 세계에 들 수 있다.

 낭만의 세계는 순수하다. 낭만의 세계에는 편견도 없고 규제도 없고, 억압도 없고 이편저편의 경계도 없다. 갈수록 비정해지는 사막 같이 메마른 세태 속에서 한 움큼 오아시스의 역할을 하는 게 낭만이 아닐까?

그야말로 옛날식사람이라는 핀잔을 들을지 모르지만, 오늘 최백호의 노래가 내 가슴을 때리는 것은 낭만에 대한 타는 목마름 때문일 것이다.

 

송재소 / 성균관대 명예교수

(2017.1.17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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