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잠을 자는 연꽃, 수련

송담(松潭) 2016. 8. 2. 16:59

 

 

잠을 자는 연꽃, 수련

 

 

 

 

빗속에 잠들고 있는 수련.

 

 

 

 덥습니다. 무지하게 덥습니다. 그야말로 찜통더위입니다. 여름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으니 더운 것은 마땅합니다.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하여 그런 것이려니 하며 받아들이려 해보는데 몸과 마음이 몹시 버겁습니다. 무엇을 참는 것에는 이골이 난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더위에는 손발 다 들었습니다. 까짓것 낮의 폭염이야 그렇다 치겠습니다. 그러나 뜨겁고 습한 기운이 밤이 되어도 도무지 식을 줄 모르고 후텁지근하니 기절할 노릇입니다. 한낮의 열기가 식기에는 여름밤이 너무 짧습니다. 그렇더라도 잠은 조금 자야 하겠기에 씻고 나오지만, 나오면 곧바로 씻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니 할 말을 잃습니다. 아예 물속에 들어앉아 얼굴만 내밀고 살아가는 수생식물이 참으로 부러운 순간입니다.

 

 수생식물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연꽃과 수련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근길을 조금 먼 길로 잡습니다. 아담한 저수지에 이릅니다. 땡볕보다 더 눈부시게 피어난 순백의 수련 앞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하고 왔더니 무엇보다 눈이 밝아졌습니다. 일주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열대야 때문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해 멍해진 머리도 무척 맑아졌습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수련의 는 물일 것이고 은 연꽃을 의미할 거라고 확인도 없이 그냥 그렇게 내 마음대로 생각했습니다. 보았다고 하더라도 다 본 것이 아닐 것이며 들었다 하더라도 다 들은 것이 아닐 터인데, 심지어 보지도 듣지도 않았으면서 제멋대로 생각한 것이었지요. 수련은 한자로 睡蓮이라고 씁니다. 풀어 쓰면 잠을 자는 연꽃이라는 뜻이 됩니다.

 

 여름날 물에서 피어나 물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연꽃과 수련은 둘 다 수련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지만 속()이 다를 만큼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수련의 편평한 잎은 대부분 수면과 맞닿아 있지만 토란의 잎을 언뜻 닮은 연꽃의 잎은 물 위로 한참을 올라옵니다. 꽃도 마찬가지여서 수련의 꽃은 배처럼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을 줍니다. 수련의 꽃이 더러 물 위로 올라와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서식지의 수심 변동에 의한 것이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높이가 대개 한 뼘을 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연꽃은 잎의 높이와 거의 비슷하거나 높은 위치에 꽃이 달리기 때문에 물 위로 적어도 서너 뼘은 훌쩍 올라오게 됩니다. 줄기도 차이가 있습니다. 수련의 줄기에는 가시가 없으나 연꽃의 줄기에는 가시가 있습니다. 연꽃의 줄기에 돋은 가시는 가시연꽃의 가시처럼 찔려서 아플 정도는 아니며, 그저 까칠까칠한 느낌을 줄 정도입니다.

 

 연꽃은 붉은색의 꽃을 피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하얀색의 꽃을 피우는 품종도 있어 백련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합니다. 수련의 꽃은 연꽃보다 훨씬 다채롭습니다. 하얀색을 비롯해 보라색, 붉은색이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색깔을 띠는 여러 가지 품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연꽃과 수련의 가장 특징적인 차이점으로는 수련만이 보이는 독특한 수면(睡眠) 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연꽃과 수련 모두 이른 아침 꽃을 피우기 시작해 저녁 무렵이면 꽃을 오므립니다. 그런데 수련은 꽃을 활짝 펼치고 있어야 할 한낮에도 날이 많이 흐리면 펼친 꽃을 닫아 버리고 잠에 빠져듭니다. 물론 햇살이 살아나면 꽃은 다시 피어나고요.

 

 아침은 땡볕 줄기차게 쏟아지는 맑은 날이었는데 점심 무렵이 되자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시원한 소나기 한 줄기라도 주려나 봅니다. 한껏 무거워진 하늘이 결국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합니다. 굵은 빗줄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출근길에 환한 얼굴로 인사했던 수련도 비를 맞고 있을 터이니 점심은 조금 미루고 수련이 잠을 청하는 모습을 만나보기로 합니다.

 

 하늘이 어두워진 지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어서 수련은 아직 꽃잎을 활짝 열고 비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수련은 물에서 살고 또한 물에서 꽃을 피우기에 비와 잘 어우러집니다. 땅에서 피어나는 꽃들은 비를 맞으면 꽃잎이 상하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애처로워 보이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수련의 꽃은 빗속에서 오히려 더 우아해집니다. 하지만 먹구름 가득한 빗속에서 수련이 자신의 우아함을 하염없이 드러내주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아직 한낮이지만 하늘은 시간을 앞당긴 듯 이른 어두움을 품고 있습니다. 결국 수련은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꽃잎을 아주 천천히 접으며 낮잠에 빠져듭니다.

 

 수련은 물 바닥이 펄인 곳에서 살아갑니다. 들어가 걸으면 발이 푹푹 묻혀 걸음을 옮기기도 힘겨운 시궁창에 뿌리를 내려 살아가며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아름다운 꽃에 어찌 향기는 없는가 할 수 있습니다. 향기는 분명 있습니다. 수련이 뿜어내는 향기는 악취가 진동할 여름날의 시궁을 진정시키는 데 모두 사용했을 뿐입니다.

 

 세상이 너무 혼탁하고 그도 지나 악취가 난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도 함께 따라 나옵니다. 하지만 수련을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합니다. 맑지 않은 것은 물론 썩은 물도 바꾸어 놓으니 말입니다. 하여, 이래저래 어수선한 요즈음은 수련을 닮아 조용히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더욱 그립고 기다려집니다.

 

 김성호 | 서남대 의대 교수

 (2016.8.2 경향신문)

 

 

 

동자꽃

 

 


 

 

 그럴 때가 간혹 있다. 도심에서 묵은 일주일치의 찌든 냄새를 풍기며 산에 오르면 그런 나를 따돌리느라 그런지 주위는 고즈넉하고 저 멀리에서만 꿈결인 듯 매미소리가 실려올 때가. 지난주 횡성 운무산에 오를 때가 바로 그러한 경우였다. 아침부터 소나기가 한바탕 내렸다. 매미소리는 아주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돌연한 침묵만이 골짜기 입구를 감싸고 있었다.

 

 이열치열의 효과는 컸다. 저만 시원한 이기적인 칸막이 냉장실을 떠나 후끈한 땡볕 속으로 몸을 실으니 마음이 먼저 가뿐해진다. 얼른 숲 그늘로 들어서니 그간 불어난 물소리가 귀를 씻어준다. 호젓한 오솔길 입구에서 아래를 보니 한창 물이 오른 녹색의 잎들 사이로 꽃 하나가 피어 있다. 갈 길이 멀어 슬쩍 외면하고 운무산의 꼭대기로 걸음을 재촉했다. 투박한 바위가 포진한 정상 부근은 만만한 산행이 아니었다. 그 아슬아슬한 틈 사이에서 솔나리, 병아리난초 등의 꽃들을 만났다.

 

 내려오는 길. 오전에 잠깐 보았을 때의 그 자세를 유지한 채 오래된 질문처럼 서 있는 꽃이 있다. 올라갈 때 본 그 꽃, 동자꽃이었다. 이 꽃에는 아주 슬픈 전설이 있다. 깊은 산중 암자에 노스님과 동자가 살았다. 어느 겨울 스님이 탁발하러 마을에 내려온 사이 폭설이 내렸다. 어쩔 수 없어 서로가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눈이 녹은 뒤 암자로 가니 스님을 기다리며 암자 입구에 서 있는 채로 동자는 얼어죽어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동자를 묻어주니 그 자리에서 식물이 돋아났다. 못다 핀 아이의 얼굴처럼 주황색의 꽃도 피어났다. 이를 본 사람들이 동자꽃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는 슬픈 이야기.

 

 지금은 꽃들도 잠깐 쉬어가는 시기이다. 가을꽃에 대비해서 숲도 한 호흡을 가다듬는 중이다. 이즈음에 저라도 없다면 이 숲이 얼마나 적막할까. 기다림에 이골이 난 것처럼 곧은 자태와 맑은 표정으로 서 있는 꽃, 동자꽃. 높이도 보통 성인의 허리춤에 닿을락 말락, 꼭 동자의 키만큼이다. 좀전에 한바탕 내린 빗방울에 얼굴을 씻었나. 꽃 턱 아래로 동그랗게 맺히는 물방울 속에 무슨 답이 들어 있을 것만 같은 동자꽃.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2016.8.2 경향신문)



 

 

 

 

 

 


'아름다운 詩,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낭만에 대하여  (0) 2017.01.17
무지개다리  (0) 2016.12.19
알맞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0) 2016.06.18
신록예찬  (0) 2016.04.20
눈부처  (0) 2016.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