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맞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소박하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소박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합니다. ‘소박하다’는 것은 꾸밈이 없고 까다롭지 않음을 일컫습니다. 꾸밈이 없으니 거짓이 있을 수 없고, 까다롭지 않으니 무던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소박하게 산다는 것은 거짓 없이 무던하게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하루에도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겉과 속을 이리저리 꾸미기에 바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누가 더 서로에게 까다로울 수 있느냐를 두고 경쟁이라도 하듯 살아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소박하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삶은 내가 나의 참된 주인이 되어 당당하고 떳떳하게 사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더러는 그냥저냥 살아가기도 합니다. 가끔은 내가 아닌 남에 의해 내가 살아질 때마저 있습니다. 이래저래 삶이 버거워 소박하게 살지 못할 때, 소박한 삶에 대한 동경심은 더 꿈틀거리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샘솟으면 하던 일을 잠시라도 멈추고 자연으로 향합니다. 거짓이 없고 무던한 모습의 중심에 자연이 있으며, 그 소박한 삶의 꼴을 고스란히 닮고 싶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라면, 더군다나 알맞게 비가 내려주는 날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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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섬진강으로 향합니다. 우산은 가져오지도 않았지만, 비를 그냥 맞기로 합니다. 강둑에 내려서서 강 가장자리를 따라 거닙니다. 비를 만나 적당히 폭신폭신해진 강가의 흙을 밟는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그러다 뭔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비를 만나 더없이 싱그러운 풀잎 위에 붉은 빛깔의 실잠자리 하나가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비, 흙, 풀잎, 실잠자리 그것만으로도 자연은 이미 소박함의 완성인 듯합니다.
알맞게 비가 오는 날에는 잠시라도 밖으로 나가 자연과 벗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산도 멀고, 들도 멀며, 섬진강은 더 멀리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디라도 흙과 들풀이 가까이 있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혹 실잠자리 하나의 자리가 비어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자연,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마음이 자연에서 멀 뿐입니다. 그래서 소박한 삶이 우리에게 멀리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성호 | 서남대 의대교수
(2016.6.7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