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족

주름보다 깊은 기다림

송담(松潭) 2014. 1. 30. 07:41

 

 

고향의 어머니 야야, 올 설엔 오제?”주름보다 깊은 기다림

 

- 경북 봉화 비나리마을 안승옥·박달례씨 부부의 설맞이 -

 

 

 

 

 

 

할머니의 얼굴은 구깃구깃했다. 이마엔 가로 주름이, 입가엔 세로 주름이 짙고 굵었지만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쇠붙이를 삭이는 세월도 할머니의 미소만은 엉클어놓지 못했다. 사진은 경북 봉화 비나리마을에 사는 박달례 할머니(86). “옛날에 배부르게 먹는 집이 얼마나 있겠노?” 밭고랑에 호미를 꽂을 때마다 자식 놈 잘되라고 빌었다. 할머니는 요즘 설만 기다린다. 안부전화가 오면 슬그머니 묻는다. “올 설엔 올 거제?” 노인의 주름은 그가 걸어온 길이다. 주름에는 달고 쓰고 매운 기억들이 다 들어 있다. 애들 병치레할 때 맘 졸인 기억, 학교 보낼 때 설레었던 추억이 스며 있다. 설엔 그 짙은 주름에서 옛이야기가 하나둘 풀려나올 것이다. “아가, 니 아나? 애비가 학교 갔다가.

 

 첩첩산중에 자리 잡은 경북 봉화 비나리마을. 안승옥(88)·박달례(86)씨 부부는 70년째 함께 살고 있는 마을의 터줏대감이다. 동이 튼 지 오래됐지만 햇살은 청량산에 걸려 마을까지 쉽사리 넘어오지 못했다. 할머니는 낡은 부엌 커다란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물을 데우며 아침을 맞았다. 할머니의 검붉은 이마에는 골 깊은 주름이 계급장처럼 새겨져 있었다. 아궁이에서 나오는 매운 연기 때문에 눈가에 연신 눈물이 맺혔지만 할머니는 밥이 끓을 때까지 부뚜막을 지켰다. 그사이 앞마당에서는 할아버지가 장작을 패고 있었다. 도끼질을 한번 할 때마다 할아버지의 굽은 등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16세에 시집온 할머니는 슬하에 7남매를 두었다. 학교 근처에도 못 가본 것이 한이 맺힌 할머니는 자식들만이라도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다. 하지만 산비탈에 손바닥만 한 밭뙈기를 일구고 있던 처지라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했다. 자식들에게 못내 미안했다. 그래도 부부는 보리밭 매고 서숙밭 일구며 반백년을 허리 한번 펼 새 없이 부지런히 일만 했다. 자식들도 큰 탈 없이 자라주었다. 날 때부터 익혀온 농사일이었지만 가는 세월은 억척스러운 노부부에게도 어쩔 수 없었다. 힘이 부친 노부부는 몇 해 전부터 농사일에서 손을 놓았다. 그래서인지 여든 초반까지만 해도 밥때만 되면 한 그릇씩 거뜬하게 해치우던 밥맛도 요새는 영 나질 않는다.

 

 

 찾는 이 뜸한 산골마을이지만 노부부의 손길이 며칠 전부터 분주해졌다. 할머니는 검게 그을린 무쇠 가마솥을 윤이 나도록 닦고 할아버지는 건넌방 구들장을 지필 장작을 마루 아래에 한가득 쌓아 놓았다. “시집간 큰딸이 어느덧 환갑이 지났으니 이제 살 만큼 살았제. 그냥저냥 사는 일상이 뭔 재미가 있겄어. 그래도 명절 때면 고향집 찾아오는 자식 손주들 얼굴 보는 게 유일한 낙이제. 허허허.” 노루 꼬리만큼 짧은 겨울 해가 지자 하늘 세평의 산골마을이 금세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군불을 지핀 구들장에 몸을 뉘인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지난 추석에는 대구에 사는 셋째가 바빠 못 왔는데 올 설에는 손주들 데리고 올 수 있을랑가.”

 

 

사진·글 정지윤 기자 (2014.1.25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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