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story

사랑은 언제나 벼락처럼 왔다가

송담(松潭) 2011. 11. 30. 17:30

 

 

사랑은 언제나 벼락처럼 왔다가

정전처럼 끊겨지고

 

 

 

 바디우(1937~ , 프랑스 철학자)사랑 예찬에서 오늘날 연애에서 만남의 우연성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을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그가 공격하는 타깃은 인터넷 알선 사이트를 통한 만남입니다. “위험 없는 사랑을 당신에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외모, 성격, 직업, 수입, 생일, 취미, 심지어 별자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조합해서 고객에게 딱 맞는 이상형을 알선해주는 사이트를 통한 만남은 잘못된 사랑의 시작이라는 것이지요.

 

 이러한 만남은 사랑으로 촘촘히 짜여진, 타자에게서 비롯된 시련이나 심오하고 진실된 온갖 경험을 회피하려는 것이고 사랑의 중요성을 처음부터 완전히 박탈한다는 겁니다. ‘사랑에 빠지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쾌락주의적 사고로는 사랑이라는 집의 문턱조차 밟을 수 없다는 것이 바디우의 생각이지요. 게다가 우스꽝스러운 것은 이런 사람들이 원하는 위험 없는 사랑이란 마치 전사자 없는 전쟁처럼 터무니없이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디우는 사랑의 만남도 필히 위험과 모험을 동반하는 우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만일 언젠가 연애 때문에 상처받은 경험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면, 바디우의 말이 무모하고 무책임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요.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 아픔이 출렁거려 / 늘 말을 잃어갔다(‘찔레부분)라는 문정희 시인의 시구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녹녹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랑은 언제나 / 벼락처럼 왔다가 / 정전처럼 끊겨지고 / 갑자기 배고픔으로 / 찾아오는 이별(‘여자들과 사내들부분)이라고 노래한 최승자 시인의 시구처럼 이별이 정전처럼 느닷없이 찾아오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최승자 시인의 시에서처럼 죽을 것 같은 아픔을 견디면서도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 여자도 있고, 기형도 시인의 시에서와 같이 장님처럼 더듬거리면서 어렵게, 어렵게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는 남자도 있지요.

 

 

봄이 오고 너는 같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쟁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가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 최승자,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부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는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는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집> 전문

 

 

 어때요? 어떻게 대처하든 이별이란 한마디로 고통의 아수라장이죠? 이 점에서 보면, 사랑에는 우연에서 시작하는 위험과 모험이 필히 동반되어야 한다는 바디우의 주장은 나이도 드신 분이 정말로 뭘 모르고 하신 말씀같습니다. 한데 과연 그럴까요?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바디우가 사랑으로 촘촘히 짜여진, 타자에게서 비롯된 시련이나 심오하고 진실된 온갖 경험을 사랑의 중요한 요소로 삼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랑의 경험이 도대체 사랑에서 왜 그리 중요할까요? 처음에는 춘향이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전율과 환희, 감미로움과 애틋함으로 시작하지만, 이내 최승자,문정희, 기형도 시인의 시처럼 슬픔과 고통의 축제로 변한다면,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할까요? 차라리 그렇게 과도한 육체적, 심리적, 경제적 소모 없이 위험 없는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무한경쟁 사회라는 새로운 정글을 사는 지혜가 아닐까요?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이 사랑에 빠지지 않고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인터넷 사이트를 번번이 드나드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들이 실로 안일하고도 어리석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을 삶의 경험이 삶에서 왜 중요할까라고 바꿔보면 곧바로 진실이 드러나지요. 삶의 경험이 삶에서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삶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 이외에 우리의 삶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요.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경험이 사랑에서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사랑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서 사랑으로 촘촘히 짜여진, 타자에게서 비롯된 시련이나 심오하고 진실된 온갖 경험을 제외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용규 /‘철학카페에서 시읽기중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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