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기어이 포기할 수 없는
소설가 김형경의《사람풍경》에서 정신분석학을 ‘사랑 앞에서 좌절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문’이라 일컫는 대목을 읽었다. 사랑만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생의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곱씹을수록 부인할 수 없는 말이다. ‘제대로’사랑을 받을 수만 있다면, ‘제대로’사랑을 줄 수만 있다면, 마음을 다치거나 그 아물지 않는 상처 때문에 오오래 앓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로 헤어질 리 없는 사랑이라든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완벽한 사랑을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뜻은 아니다. 사랑은 영원하지만 사랑의 대상은 변할 수 있다.(어쩌면 변할 수밖에 없다.) 다만 ‘제대로’사랑을 주고받는다면 ‘제대로’이별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제대로’경험한 사랑과 이별에서 얻은 힘으로 기꺼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리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내면화 혹은 내재화(internalization)이며, 그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만이 사랑을 줄 줄도 안다는 이치가 비롯된다. ‘제대로’로 사랑을 받아야만 믿는다. 사랑을 믿어야만 사람을 믿고, 세상을 살 가치가 있는 곳으로 믿는다. 결국 사랑이 삶의 처음이자 끝인 셈이다.
오늘도 세상에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넘친다. 모든 유행가는 사랑의 환희와 열망과 슬픔과 비탄에 대해 노래하고, 모든 드라마는 사랑 때문에 빚어지는 온갖 희극과 비극을 연기한다. 하지만 그렇게 범람하고 소비되는 사랑은 바닷물을 들이키는 것처럼 갈증을 해소하기는커녕 새로운 갈증을 부추긴다. 넘치는 사랑 타령 속에서 사랑에 대한 냉소와 비하, 불신과 경시가 싹튼다.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머리로는 열심히 계산을 한다. 내가 준만큼 돌려받지 못할까 봐, 실패할까 봐, 상처입을까 봐...... 숱한 이유들에 사로잡혀 아예 시작하거나 시작할 마음조차 내지 못한다. 사랑 따위는 사치이고 감정의 낭비라고 콧방귀를 뀌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고 마음의 문에 빗장을 단단히 치기도 한다.
두렵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의 속편인《겨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붉은 여왕처럼, 그녀는 상처가 나면 자기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치기도 전에 비명부터 지른다. 그런 두려움이 사랑 앞에 사람들을 비겁하게 만들고 도망치게 만들고 끝내 실패하게 만든다. 사랑의 가장 큰 실패는 대차대조표에 마이너스 손실을 기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사랑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이 곧 이해라면, 타인을 사랑하는 일도 결국은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한국 영화 《새드무비》의 일곱 난쟁이 중 일곱 번째로 분한 김무진의 대사는 과연 사랑에 어떤 이해 혹은 용기가 필요한가를 일깨운다.
일곱 난쟁이가 왜 백설 공주랑 한 놈도 연결이 안 됐는지 알아? 고백을 못했거든. 일곱 놈 다 난쟁이란 사실이 부끄러워서. 사실 백설 공주는 키 작은 남자를 좋아했는데...... 왕자도 말에서 내리니까 엄청 숏다리였대. 이건 비밀인데, 사실 갠 우리 막내였어. 어릴 때 입양된 여덟째.
못난 왕비가 왜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는지 아니? 거울에 속았기 때문이야.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땐 거울로 보는 게 아냐, 마음으로 보는 거지.
사랑은 설렘이나 끌림과 같은 순간적인 감정부터 이해와 관용과 구원의 철학까지 깊고 넓은 범주를 지닌 인간의 독특한 본능이다. 또한 사랑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무엇이다.
산송장, 인간 살덩이에 불과한 죄수로 지옥이나 다름없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경험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노라면, 과연 인간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딱딱한 빵 한 조각으로 간신히 허기를 달래고 맨발에 잘 맞지도 않는 신발을 꿰어 신은 채 강제노동 현장으로 향하며 빅터 프랭클이 생각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시인이 노래하고 수많은 사상가가 궁극적인 예지라고 단언했던 진리, 그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열망할 수 있는 지고의 목표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비틀거리며 걸어가던 그 앞에서 한 사람이 미끄러져 쓰러지자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차곡차곡 그 위로 엎어져 쌓인다. 그러자 감시병이 재빨리 달려와 가지고 있던 채찍을 휘두른다. 허공으로 힘껏 날아올랐다 떨어지는 채찍의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비명...... 그 지옥에서도 빅터 프랭클은 공상 속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그녀의 대답에 귀를 기울인다. 욕설과 채찍질이 난무하는 작업장에서 얼어붙은 땅을 곡괭이로 파며 두뇌까지 추위에 마비된 상태에서도 그 영혼은 여전히 사랑하는 이의 영상에 매달린다. 문득 그녀는 이미 죽어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실제로 그의 아내는 수용소에서 학살당했다), 죽음조차도 굳건한 사랑을 훼손할 수 없으리라고 믿는다. 인간의 구원은 사랑으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리라는 위대한 신비를 깨닫는 그는 지옥에도 삶을 축복한다.
나를 그대의 가슴에 새겨주소서, 그러면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해지리다!
그는 사랑을 열망하였기에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죽음과 같이,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으로 살아남았다. 그에게 죽음의 반대말은 삶이 아니라, 기어이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김별아 / ‘이 또한 지나가리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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