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수용소 생활과 굶주림

송담(松潭) 2009. 12. 1. 20:33

 

수용소 생활과 굶주림



 수용소에서 슈호프는 끈질긴 생존투쟁을 벌리는데, 그 핵심은 먹는 일이다. 여기서는 그야말로 밥이 하늘이다. 식사는 성스러운 사업이다. 슈호프는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소포를 받을 동료를 대신해서 미리 줄을 서 자리를 맡아주었다. 덕분에 편안하게 소포를 수령한 동료는 감사 표시로 자기의 저녁밥을 그에게 선사했다. 솔제니친은 이 슈호프가 국 두 그릇을 해치우는 장면을 정밀하게 묘사했다.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 나는 마치 가톨릭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는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슈호프는 모자를 벗어 무릎 위에 얹는다. 한쪽 국그릇에 담긴 건더기를 숟가락으로 한 번 휘저어 확인한 다음, 다른 그릇에 담긴 국도 똑같이 확인한다. 웬만큼은 들어있다. 생선도 걸려든다. (....) 슈호프는 먹기 시작한다. 우선, 한쪽 국그릇에 담긴 국물을 쭉 들이킨다. 따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배 속으로 들어가자, 오장육부가 요동을 치며 반긴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 두 그릇에 담겨 있던 국물만을 모두 마신 다음에는 한쪽 그릇에 다른 쪽 건더기를  옮긴다. 그다음, 그릇을 흔들어 정리를 하고 다시 숟가락으로 모조리 긁어낸다. 이제야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인다. 다른 쪽 그릇이 계속 마음에 결렸기 때문이었다.(....) 슈호프는 남은 국물과 함께 양배추 건더기를 먹기 시작한다. 감자는.....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고 게다가 얼어서 상한 것이었지만, 흐물흐물한 것이 달짝지근한 데가 있기도 하다. 생선살은 거의 없고, 앙상한 등뼈만 보인다. 생선 지느러미와 뼈는 꼭꼭 씹어서 국물을 쭉쭉 빨아 먹어야 한다. 뼈다귀 속에 든 국물은 자양분이 아주 많다. (....) 슈호프는 드디어 거나한 저녁식사를 마쳤다. 그러나 빵은 남겨두었다. 국을 두 그릇이나 먹고 빵까지 먹는다는 것은 어쩐지 분에 넘치는 일이다. 빵은 내일 몫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인간의 배는 배은망덕한 것이라서, 이전에 배불렀던 것은 금세 잊어버리고, 내일이면 또 시끄럽게 조를 것이 뻔하니까 말이다.


 이 대목이 마음에 착 안겨온 것은 ‘수용소 생활’과 ‘굶주림’이 낯설지 않은 탓이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들은 대부분 여러 해 수용소 생활을 경험한다. ‘병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용소다. 요즘 신세대 병사들의 까다로운 입맛 때문에 국방부장관이 쏙을 썩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예전 군대는 그렇지 않았다. 논산 훈련소에서부터 강원도 최전방 소총중대에 이르기까지 병사의 삶은 늘 허기와 함께였다. 음식의 맛 따위야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언제나 양이었다. 훈련병 시절은 특히 그랬다. 훈련 양은 엄청나게 많았고 피엑스 출입은 허용되지 않았기에, 언제나 배가 고팠다. 누가 달랄까봐 밤중에 ‘푸세식’변소에 숨어서 단팥빵을 먹은 ‘끔찍한 추억’의 주인공들, 찾아보면 주변에 꽤 많다.


 멀리 야외 교장으로 가서 각개전투나 사격훈련을 할 때는 훈련병끼리 돌아가며 점심 배식을 했다. 숙달되지 않은 훈련병들이라 밥이 남거나 모자라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러니 줄을 설 때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앞이냐 뒤냐? 밥주걱과 국자를 든 훈련병이 어떤 친구인지 잘 아는 경우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였다. 소심한 친구가 주걱을 잡으면 뒤가 유리하다. 밥이 모자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처음에는 밥을 조금씩 푸기 때문이다. 대책 없이 사람 좋은 친구가 주걱을 들었다면 무조건 앞이 유리하다. 뒤에 섰다가는 자칫 밥이 모자라 점심을 굶을 수도 있다.


 계산이 맞아떨어져 육군 정량에 접근하는 푸짐한 식판을 받아 들었을 때의 기쁨을,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오전 훈련 종료가 임박한 시간, 조금 일찍 훈련을 마치고 배식 준비에 들어간 동료 훈련병의 평소 성격이 어땠는지를 기억하려 애쓰고, 어디에 설 것인지 불안감과 설렘 사이에서 선택하고, 푸짐한 식판을 받아 들고서 미어져 나오는 행복감을 주체하지 못해 안면 근육에 힘을 주어 표정 관리를 하는 스무 살 청년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나는 당시 그렇게 행동하는 내 자신에 대해 큰 슬픔을 느꼈다. 명색이 지성인이 되고자 했던 제 잘난 인간이, 불과 넉 달 전에는 정치군인들의 권력 찬탈을 저지하기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하고자 외쳤던 자가, 그래 겨우 밥 한 숟가락 더 먹어보겠다고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니! 기껏 반찬 한 입 더 먹게 되었다고 행복을 느끼다니, 그대 비천한 짐승이여!


유시민 / ‘청춘의 독서’ 중에서

(위 글 제목 ‘수용소 생활과 굶주림’은 독자가 임의로 정하였음)

'아름다운 詩,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찌 세상을 눈부시게 살까  (0) 2009.12.08
無名의 아름다움  (0) 2009.12.03
생명권(biosphere)  (0) 2009.11.04
우주와 생명   (0) 2009.11.03
애틋함에 대하여  (0) 2009.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