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권의 소중함에 대한 자각
생명권(biosphere)이란 개념이 있다. 생명권을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하여 설명하자면, 나무의 중심부 97%는 비활성의 죽은 부분이지만 바깥 부분 3%의 생명활동 작용을 통해서 나무 전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지구 생명계를 살아있는 생물들의 아주 얇은 층으로 덮인 하나의 생명권으로 인식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얇은 나무껍질이 조직을 외부의 손상으로부터 지키고 뿌리에서 흡수한 영양분을 위로 공급하고 잎사귀에서 광합성을 통해 생산한 탄소화합물을 조직으로 보내 나무 전체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자라나게 하듯이, 이 지구행성을 얇은 막으로 둘러싼 생명권이 지구 전체의 온도나 공기의 구성비 등을 조절해서 생명이 번성할 수 있는 적당한 공간으로 유지하고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우리 머리 위의 대기나 발밑의 암석도 살아있는 유기체에 의해 형성되고 변형되었다.
이 층의 권역은 해양으로는 5~6마일 깊이에 달하며, 대기권에서도 비슷한 거리만큼 뻗어 나간다. 따라서 지구 전체의 크기에서 볼 때 생명이 살고 있는 영역은 아주 얇은 막인 셈이다. 지구를 농구공에 비유한다면, 생명권은 농구공에 칠해진 페인트 두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즉 드넓은 우주 안에서 우리 생명이 살아가고 있는 보금자리는 너무도 좁은 권역 안에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명권은 너무도 연약하여 쉽게 손상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생명체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명권 개념은 단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며 지구를 떠나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경험이 있는 우주 비행사들에 의해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생태계의 실체적 모습이기도 하다. 우주 비행사 제임스 어윈은 그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느꼈던 경이로움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지구가 암흑 속에서 보였다. 아름답고 온기를 가진 듯 살아 있는 물체로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나 섬세하고 연약하며 덧없는 듯, 부서지기 쉬워 보였다. 공기가 없는 탓인지 그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 아름다움, 생명감에 눈을 빼앗기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연약함을 느끼게 되었다. 감동했다. 우주의 암흑에서 빛나는 푸른 보석, 그것이 지구였다. 지구의 아름다움은 그곳, 그곳에만 생명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리라. 내가 바로 그곳에서 살아왔다. 저 멀리 지구가 오도카니 존재하고 있다. 다른 곳에는 어디에도 생명이 없다. 자신의 생명과 지구의 생명이 가느다란 한 가닥 실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언제 끊어져 버릴지 모른다. 둘 다 약하디 약한 존재다. 이처럼 무력하고 약한 존재가 우주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의 은총이라는 사실을 아무런 설명 없이도 느낄 수 있었다.”
김기석 /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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