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애틋함에 대하여

송담(松潭) 2009. 10. 29. 14:40

 

애틋함에 대하여

 

 

(...생략...)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은 다 아는 말인데, 예를 들어 길이나 집도 작은 것은 애틋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모든 오솔길은 그것 자체가 이미 애틋함의 표상인데, 그것은 고독, 내면, 고요함 쪽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며, 요새 벌써 한없는 이복(耳福)을 누리게 하는 소리들의 원천인 귀뚜라미며 베짱이 등 작은 생명들과 함께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솔길은 그리하여 꿈꾸는 공간이다.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몽상에 잠길 뿐만 아니라, 그걸 바라보기만 해도 오솔길은 벌써 한없는 몽상을 촉발하기 때문이다. 오솔길은 그것 자체가 몽상의 육화(肉化)라고 할 수 있다.

 

작은 집 또한 오솔길과 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 바라보기만 해도 그것은 애틋한 느낌에 잠기게 하는데, 그것이 만일 건축자재나 형태에서 나무랄 데 없고 또 오래된 것이며 그래서 그게 서 있는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추억과 역사가 스며 있는데 어느날 없어진다면 그 애틋함은 참으로 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경우를 겪은 적이 있는데, 내가 학교에 있었던 2003년 겨울, 학교에서 제일 작은 석조건물이며 60년쯤 된, 그 앞에는 역시 작은 잔디밭 뜰에 밤나무며 홍단풍나무들이 있었던 그 아늑한 건물을 헐어버리고 큰 건물을 짓겠다고 해서 뜻을 같이하는 교수들과 함께 학교 당국과 싸웠던 것. 그때 학교 당국과 교수들에게 보낸 두 편의 짧은 글이 있는데 그중 한 대목을 적어볼까 한다.

 

"학교의 옛 건물과 주변 공간은 한 학교에 그 고유한 가치와 위험을 부여하는 기억의 감각적 실체로서, 그것들은 그 학교의 뿌리이며 따라서 생명입니다. 학교의 옛 건물들은 그 고풍스러움을 통해 시간의 깊이와 학교살이의 연속성을 느끼게 함으로써 마음의 고향이 되며, 우리의 청년시절을 전설로 만듭니다. 그러니까 옛 건물들은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이 가난한 인생들과 시간들을 신화로 만들면서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옛 건물을 바라보고 그 앞으로 오가며 그걸 느낍니다."

 

그 건물은 문과대학 바로 옆에 있어서 2층 내 방 창으로 20여년 동안 바라보고, 숲을 산책하기 위해 그 옆으로 수없이 지나다닌 공간이니 아마 남다른 감회를 가졌던 듯한데, 실은 그걸 없앤다고 했을 때(그건 지금 없어졌다) 내가 분노와 함께 강한 애틋한 감정에 휩싸였던 것은, 한 프랑스 철학자가 정확히 짚어준 대로 내가 거기서 '몽상적으로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몽상적인 거주'는 실제로 거주하는 것보다 더 뿌리깊은 삶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떻든 애틋함이라는 감정에는 그것이 그리움이든 추억이든 슬픔이든 또는 정다움이든 대상을 향해서 움직이는 간곡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마음은 시를 비롯한 예술창조의 중요하고도 자연스런 조건이기도 할 것이다. 더군다나 애틋함이야말로 무상(無償)의 감정이라 할 때, 그것은 시의 이상과 일치하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답게 있는 것보다 거대하게 있는 것이 더 쉬운 법'(니체)이라는 말은 인류사회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지만, 특히 시인(예술가)이 아름답게 있기보다 거대하게 있으려 한다면,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거대한 것에 기대고 그 기댐으로 해서 자기가 거대하다고 느껴 가령 기고만장한다면 그는 이미 시인이 아니며 앞으로도 결코 시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현종 / 시인 (2009.10.29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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