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이론
- 지능은 몸에서 시작된다 -
- 똑똑해 지려면 머리만 굴리지 말고 몸도 굴려라 -
지난해 말 일본에서는 기억력 테스트에서 침팬지가 대학생을 이기는 일이 벌어졌다. 컴퓨터 화면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1에서 9까지의 숫자들을 기억했다가 순서대로 숫자의 배경이 된 화면을 누르는 테스트였다. 침팬지는 순식간에 숫자가 사라져도 정확하게 순서를 기억했지만 대학생들은 조금만 속도가 빨라져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과연 침팬지는 사람보다 숫자를 더 잘 기억하는 것일까.
◆ 지능은 1차적으로 몸의 움직임 바탕으로 발달
실험을 주관한 교토대 연구팀은 침팬지가 사람보다 '사진 기억력'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복잡한 장면이나 무늬를 사진처럼 기억하는 능력이다. 연구팀은 "사람의 경우 이런 사진 기억력이 어릴 때는 존재하다가 자라면서 점점 퇴화된다"며 "인간이 침팬지에 비해 모든 방면에서 인지 능력이 뛰어나다는 통념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성균관대 심리학과 이정모 교수는 "인간의 지능은 동물의 지능에서 진화해 왔으며, 지능이 뇌뿐 아니라 몸과 환경이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보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심리학계에서는 지능이 뇌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움직임이나 환경 자극에 연결돼 있다는 이른바 '체화(體化)된 인지(embodied cognition)'이론이 새롭게 힘을 얻고 있다. 즉 지능은 1차적으로 몸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발달했고, 이후 진화 과정에서 추상적 개념과 언어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손 동작과 시각 자극의 연결을 필요로 하는 낮은 단계의 지능에서 침팬지가 인간보다 더 우수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 산수 문제 풀 땐 손을 써야
그렇다면 사람도 동물처럼 머리와 몸을 함께 쓰면 지능이 더 높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최근 '체화된 인지'이론의 효과를 입증하는 실험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미 시카고대 심리학과 수잔 골딩-미도(Goldin-Meadow) 교수는 지난해 11월 어린이들이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시험을 볼 때 수학문제를 더 잘 푼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실험심리학저널'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문제를 풀 때 손을 자유롭게 움직인 학생들은 그러지 못한 학생들보다 정답률이 1.5배였다.
지난해 8월에는 문제를 풀 때 눈동자를 움직이는 경우에 정답률이 높아진다는 또 다른 연구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체화된 인지'의 효과는 움직이며 대사를 하는 연극배우들에서 잘 설명된다. 미 엘머스트대의 헬가 노이스(Noice) 교수는 연극배우이자 감독인 남편과 함께 배우들이 장문의 대사를 외우는 과정을 분석했다. 2006년 노이스 부부는 배우들이 손짓을 하고 몸을 움직일 때 대사를 더 잘 외운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왜 그런 대사를 하는지, 어떤 동작을 할 때 대사를 해야 하는지를 파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아동·노인 학습에 도움
노이스 교수팀은 이후 노인들을 대상으로도 비슷한 실험을 실시했다. 노인들을 세 그룹으로 나눈 뒤 한 그룹은 4주간 연극 강좌, 다른 그룹은 미술 강좌를 듣게 했다. 세 번째 그룹은 아무 강좌도 듣지 않았다. 그 결과 연극 강좌를 들은 노인들은 다른 두 그룹에 비해 단어 기억력이나 문제 풀이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몸을 쓰면서 말하는 과정에서 인지 능력이 높아진 것이다.
어린이 교육에도 '체화된 인지'이론이 도입되고 있다. 이미 100년 전 교육학자 몬테소리(Montessori)는 어린이는 몸을 많이 움직이고 다양한 물체를 조작하는 역동적인 환경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몬테소리학교에서는 사포로 만들어진 글자를 손으로 만지며 알파벳을 배우고, 나무 토막을 가지고 산수를 익힌다. 문법은 문장대로 행동하면서 체득한다.
이 분야의 극단적인 이론가들은 덧셈, 뺄셈의 개념도 두 발로 걸으면서 거리를 재는 데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만약 사람이 두 발로 서지 않았다면 수학 개념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이 같은 이론이 "과학에 흔히 나타나는 일시적인 유행일 뿐"이라고 반박하는 학자들도 많다.
이영완 기자/2008.2.5 조선일보
최근 행동이 지능에 영향을 미친다는 심리학 이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에 따르면 문제를 풀거나 문장을 외울 때 눈동자나 손 등 몸을 함께 움직이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 사진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와 뇌 해부도를 합성한 그림. 사람은 뇌뿐 아니라 몸으로도 생각을 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美위스콘신大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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