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밝히는 여자가 행복하다

송담(松潭) 2007. 12. 7. 11:39
 

 

밝히는 여자가 행복하다



유난히 간지럼을 잘 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상대가 내게 간지럼을 태우려 한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몸을 움츠리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옆구리에 손가락만 쿡 찔렀을 뿐인데도 자지러진다. 몸이 간지럼을 탈 준비, 웃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섹스도 비슷하다. 오르가슴을 쉽게 느끼는 사람, 빨리 흥분에 도달하는 사람은 섹스를 하기 전부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몸이 일찍 달아오른다. 몸이 흥분할 준비, 즐길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만난 선배언니는 20대 중반에 결혼해 벌써 결혼 십년차에 이르렀다. 아이 둘을 키우며 남편과의 사이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런 그녀가 고백하기를 자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했단다. 그저 좋다, 혹은 나쁘지 않다 정도의 느낌만 가져봤을 뿐, 남들이 흔히 말하는 별이 보이네, 숨이 꼴딱 넘어가네, 정신이 아득해지네, 따위는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편이 첫 남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비교가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아니, 남편 이전에 만났던 애인들과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다들 평균 정도의 크기와 지구력을 가졌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언니가 심각한 불감증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혹시 동성애적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와 함께 꽤나 열심히 추론을 해 나가던 나는 뜻밖의 단서 하나를 발견했다.


선배언니의 또 다른 고백이 이어진 덕분이었다. 언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편(그 전의 애인들도 포함해서)에게 먼저 섹스를 하자고 요구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매번 남편이 하자는 신호를 보내와야 섹스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욕구가 없었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남편에게 먼저 신호를 보낼 용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밝힌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았고 처음부터 남편에 의해 마지못해 섹스에 임하는 모습만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섹스를 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캐릭터라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캐릭터를 크게 나누면 대략 수동적인 여자와 적극적인 여자로 나누어진다. 처음부터 수동적인 여자의 캐릭터를 맡게 되면 그것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바꾸려고 시도를 하면 ‘당신 왜 이래? 당신 뭐 잘못 먹었어? 당신 바람났어?’ 등의 굴욕적인 질문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한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섹스에는 별로 관심 없는 여자, 밝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여자라는 캐럭터가 부과된 뒤로 십년을 죽 그 캐릭터만 유지해 왔었다. 문제는 이러한 캐릭터가 섹스의 완성도 혹은 만족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불감증이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내 문제이듯이, 언니가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남편의 문제가 아니라 언니 안에 있었다.


내가 간지럼을 탈 준비가 되어 있으면 상대방의 손이 아무리 무뎌도 자지러지기 마련이다. 내가 적극적으로 흥분할 준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그 누구와 섹스를 하더라도 오르가슴은 떼 논 당상에 가깝다. 그리고 적극성이라는 것은 상대가 오랜 공을 들여 나를 흥분시켜 놓아야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발휘되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먼저 하자고 제안하고 덤비는 여자들은 대부분 누구보다 오르가슴을 쟁취하는 것에 능한 이들일 것이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여전히 섹스에 있어서는 수동적인 여자가 더 많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달으며 나는 선배언니에게 누누이 강조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싶어? 그럼 오늘은 언니가 먼저 들이대 봐.”


박소현 /연애칼럼니스트

(2007.12.7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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