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섹스만 하고 싶다?

송담(松潭) 2008. 3. 14. 09:44
 

 

섹스만 하고 싶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해리와 샐리가 처음으로 섹스를 한 날, 해리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섹스가 끝난 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것 때문에 샐리가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샐리의 지론에 의하면 여자를 정말 사랑하는 남자는 아침까지 함께 있어주는 남자이기 때문이다.


P는 연애시절 그 장면을 보고 섹스만 하고 돌아가는 남자는 죄다 나쁜 남자라고 생각했다. 섹스만 하는 관계보다는 같이 잠들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결혼도 서둘렀는지 모른다. 확실히 결혼을 하니 남자가 집에 가냐 안가냐의 문제로 고민할 필요는 없어졌다. 옆에서 팔베개를 해 주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당연히 아침도 같이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 5년차가 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요즘 P의 소원은 섹스가 끝나면 남편이 자기 집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것이다. 하긴 남편에게 따로 자기 집이 어디 있는가. 이 집이 곧 남편의 집이다. 시댁에서 사 주고 남편 명의로 된 엄연한 남편의 집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섹스 후에 이어지는 상황 때문이었다. 지금 P가 꿈꾸는 것은 섹스를 끝낸 남자가 샤워를 하고 상쾌한 샤워코롱 냄새를 풍기며 가벼운 입맞춤을 남긴 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집이 없다면 적어도 자신의 방으로라도 돌아갔으면 좋겠다. 물론 P는 침대 속에서 벗은 상체만 살짝 내놓은 채 남자를 배웅하고는 단잠에 빠져든다.


현실은 정반대였다. 남편은 섹스가 끝나면 바로 잠에 곯아 떨어졌다. 후희 따위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하는 일이 있다면 자신의 몸에서 콘돔을 제거하는 일이다. 덕분에 뒤치다꺼리는 늘 P의 몫이었다. 물티슈로 남편의 몸을 닦아주고 침대 아래 떨어진 콘돔을 줍고 여기저기 내던져진 옷가지를 챙기고 나서 자신의 옷을 입었다. 그리고 기차화통을 삶아 먹은 듯 엄청난 코고는 소리를 참아가며 잠을 청하는 것이다.


아침잠이 없는 아들이 새벽같이 안방으로 뛰어 들어오기 때문에 잠자리의 흔적은 반드시 정리되어야 했다. 따지고 보면 별 것 아닌 일이긴 했지만 5년간 혼자서 뒷정리를 하다 보니 부아가 치밀어 올라 터지기 일보직전이 됐다. P는 남편의 이런 행위가 긴장감이 사라진데서 왔으며, 섹스가 끝난 뒤 이 방에서 잠들고, 이 방에서 아침을 맞아야 한다는 당연성에서 왔다고 생각했다. 아내라는 게 잘못하면 떠날지 모르는 존재가 아니라 늘 옆에 있는 존재라는 것도 문제라 생각했다. 당연한 것들이 몰고 오는 모든 무례함에 화가 났다는 것이 더 알맞은 표현일 것이다.


고민 끝에 P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 섹스를 한 날에는 남편이 아들방에서 자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남편의 반발은 거세었다.

“내 방 놔두고 왜 아들 방에 가서 자야 하냐, 게다가 사정하면 바로 잠에 곯아떨어지는 걸 알지 않느냐, 정 떨어져 자고 싶으면 네가 애 방에 가서 자라.”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섹스가 끝난 뒤 바로 잠에 곯아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뒤치다꺼리도 본인이 하며, 다정한 상황을 나름대로 연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P의 주장도 쉽게 꺾이지는 않았다. 출장 한번 안 가는 남편과 일년 내내 한방에서 자는데,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따로 자 보자. 이런 방법들이 권태기를 슬기롭게 넘기는데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남편은 권태기라는 말에 겁을 먹었는지 ‘당분간만’이라는 단서를 달아 P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날 이후 섹스를 한 날이면 남편은 쏟아지는 잠을 참아가며 베개를 들고 아들 방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P는 애인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버려 약간은 서운하고, 약간은 자유로운 여자의 흉내를 내며 침대를 독차지했다. 외로운 여자 흉내 내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아주 좋았다. 아가씨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 아줌마에겐 고마운 일이 되기도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P는 오랜만에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소현 / 연애칼럼니스트

(2008.3.14 광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