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선택한 사랑
5월이 되자 사랑마당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났다. 그렇게 여러 가지 꽃나무가 있는 줄은 몰랐다. 향기 짙은 흰 라일락을 비롯해서 보랏빛 아이리스, 불꽃같은 영산홍, 간드러지게 요염한 유도화, 홍등가의 등불같은 석류꽃, 숨가쁜 치자꽃, 그런 것들이 불온한 열정, 화냥기처럼 걷잡을 수 없이 분출했다. 그런 꽃들이 분출시킨 참을 수 없는 힘은 남아돌아 주춧돌과 문짝까지 흔들어대는 듯 오래된 조선 기와집이 표류하는 배처럼 출렁였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싶을 만큼 아슬아슬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휴전이 되고 집에서 결혼을 재촉했다. 나는 선을 보고 조건도 보고 마땅한 남자를 만나 약혼을 하고 청첩장을 찍었다. 마치 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것처럼 나에게 그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 남자에게는 청첩장을 건네면서 그 사실을 처음으로 알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나서 별안간 격렬하게 흐느껴 울었다. ....
나도 울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 우는 건 아니다.
..... 그동안 우리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나에게 그가 영원히 아름다운 청년인 것처럼 그에게 나도 영원히 구슬같은 처녀일 것이다. 우리는 그때 플라토닉의 맹목적 신도였다. 우리가 신봉한 플라토닉은 실은 임신의 공포일 따름인 것을.
.........
세종로에 있는 것 못지않게 곱게 물든 그 동네 은행나무가 표표히 잎을 떨구고 있었다. 아늑함이 그리웠다. 부드러움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커피 집 문을 밀고 들어갔다. 창가에 앉았다. 안에서 본 은행잎 지는 거리는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화면처럼 동화적이었다. 그 거리를 오가는 젊은이들의 발랄하고 거침없는 몸짓 때문일 것이다. 그 애들과 나와의 거리가 연령 차가 아니라 엽전과 양놈이라는 종족의 차이만큼이나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 남자의 그닥 밝지 않은 소식을 간간이 들을 때마다 나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때 왜 그랬을까. 되짚어 곰곰 생각도 해보고 너무 맺고 끊는 듯한 내 성깔이 남의 일처럼 정 떨어지기도 했었다.
얼마 전 TV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다가 오랫동안 궁금했던 것의 해답을 얻는 것처럼 느꼈는데, 그것도 거기 정말 정답이 있어서라기보다 줄창 답을 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서 보여준 건 새들이 짝을 구하는 방법이었는데, 주로 수컷이 노래로 몸짓으로 깃털로 암컷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저 그렇고, 가장 흥미 있었던 것은 자기가 지어놓은 집으로 암컷의 환심을 사려는 새였다. 그런 새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수컷은 청정한 잎이 달린 단단한 가지를 물어다가 견고하고 네모난 집을 짓고, 드나들 수 있는 홍예문도 내고, 빨갛고 노란 꽃가지를 물어다가 실내 장식까지 하는 것이었다. 암놈은 요기조기 집 구경을 하고 나서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잡기만 하면 짝짓기가 이루어진다.
그래, 그때 난 새대가리였구나.
그게 내가 벼락치듯 깨닫는 정답이었다. 나는 작아도 좋으니 하자 없이 탄탄하고 안전한 집에서 알콩달콩 새끼 까고 살고 싶었다. 그의 집도 우리 집도 사방이 비새고 금 가 조만간 무너져 내릴 집이었다. 도저히 새끼를 깔 수 없는 만신창이의 집.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새끼를 위해 그런 집은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앉은 자리가 불편하기 시작했다. 여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경양식도 같이 파는 찻집은 자리가 꽉 차 주로 쌍쌍인 젊은이들이 내가 앉은 테이블의 빈자리를 잠시 넘보다가 가버리곤 했다. 주인의 시선이 따가울 수밖에 없었다. 연탄 갈비집도 영업을 시작했을 시간이다. 그 가게 앞을 카바이드와 연탄불 냄새를 그리워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늙은이가 눈에 선하다. 그는 누구일까. 애무할 거라곤 추억밖에 없는 저 처량한 늙은이는.
나는 마지못해 자리를 떴다. 쌍쌍이 붙어 앉아 서로를 진하게 애무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늙은이 하나가 들어가든 나가든 아랑곳없으련만 나는 마치 그들이 그 옛날의 내 외설스러운 순결주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뒤꼭지가 머쓱했다. 온 세상이 저 애들 놀아나라고 깔아놓은 멍석인데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나는 젊은이들한테 삐지려는 마음을 겨우 이렇게 다독거렸다.
박완서 / ‘친절한 복희씨’중 (그 남자네 집)에서
* 위 글의 제목 ‘이별이 선택한 사랑’은 독자가 임의로 정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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