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쾌락을 통해 행복의 나라로

송담(松潭) 2007. 8. 13. 05:37

 

 

쾌락을 통해 행복의 나라로

 

 

 신이 없다니...... 신을 지표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그렇다면 뭘 믿고 뭘 위해 살아야 하나? 해결책은 두 가지밖에 없다. 신에 의존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거나, 아니면 묵묵히 고통을 견디거나 둘 중 하나다. 앞의 방법을 선택한 사람이 에피쿠로스(Epicouros, 기원전341?~270?)다.

 

 신을 대신할 만한 가치의 기준을 찾아라. 에피쿠로스가 생각한 기준은 쾌락이었다. “쾌락은 축복받은 삶의 시작이요 끝이다.” 쾌락이 바로 선이다. 맛있는 음식이 주는 쾌락, 즐거운 노래에서 얻는 쾌락, 아름다운 모습에서 느끼는 쾌락이 없다면 행복은 대체 어디에 있으며 선이란 무엇이겠는가?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반문하면서 식욕에서 모든 선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그 때문에 에피쿠로스는 후대에 쾌락주의자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만약 그가 자기 별명을 알았다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그의 학설이 쾌락주의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취하게 된 것은 그를 곡해한 로마인들의 탓이다. 에피쿠로스의 생애를 봐도 사실 부정적인 쾌락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내내 절제 속에서 소박하게 살았고 아테네의 유명한 정원에 학교를 세워 산책하면서 고상한 대화를 즐겼다. 비록 만년은 우아하게 보내지 못하고 오랜 투병 생활에 시달렸으나 그때도 고매한 학자로서의 풍모와 위엄을 전혀 잃지 않았다.

 

 그가 강조한 쾌락은 육체적 쾌락이 아니었다. 물론 쾌락을 행복의 나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여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적극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능동적 쾌락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 의미의 쾌락, 즉 고통을 피하는 데서 진정한 쾌락을 찾았다. 그가 “고문대 위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 근거는 바로 거기에 있다.

 

 행복의 수학적 공식이 성취/욕망이라면 에피쿠로스는 분자인 성취를 늘리는 게 아니라 분모인 욕망을 줄임으로써 행복의 양을 늘리는 방안을 채택했다. (그래서 그는 육체적 쾌락보다 정신적 쾌락을 더 중시했으며, 가장 지혜롭고 안전한 쾌락을 우정이라고 보았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이 충족된 차분한 상태를 그는 아타락시아(ataraxia), 즉 평정한 상태라고 불렀다. 쾌락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결핍된 것이 다 충족된 정적인 균형 상태였다.

 

 결핍은 곧 욕구다. 욕구가 많다면 그만큼 빈 구멍이 많다는 뜻이므로 완전할 수 없다. 따라서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욕구, 빈 구멍을 채우는 것이다. 여기서 에피쿠로스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헛된 욕구를 구분했다. 위장이 비면 배가 고프고 졸리면 자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생리적 욕구다.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선하고 이상적인 쾌락이다. 그에 비해 세계를 정복하고 싶다거나 사치를 누리고 싶은 것은 헛된 욕구이므로 피해야 한다. 이런 욕구는 충족시킬수록 더 불어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충족시킬 수 없으며, 때로는 욕구의 충족이 오히려 고통을 낳기도 한다.

 

 자연스러운 욕구 중에도 불필요한 것이 있다. 예컨대 성욕 같은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성욕이란 지나치게 강력한 것이기 때문에 가급적 피해야 한다고 보았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성욕의 충족은 강력한 만큼 자칫하면 고통으로 이어지므로 성욕은 궁극적으로 쾌락이라 할 수 없다. “선한 사람은 성교를 하지 않았다.” 실제로 에피쿠로스가 그 말을 몸소 실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에게 성욕은 헛된 욕구에 못지않게 아타락시아를 방해하는 최대의 적이었다.

 

 사실 욕구를 결핍으로 보는 관점은 플라톤도 마찬가지였고, 이후 19세기까지의 서양철학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20세기의 실존철학에서도 욕구는 인간존재의 무근거성을 나타내는 징표다. 그러나 니체는 욕구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으며, 프랑스 현대 철학자 들뢰즈는 ‘욕망하는 생산’이라는 관념을 바탕으로 독특하고 감동적인 혁명론까지 제시한다. 비록 초점은 정반대라고 해도 요구라는 ‘천박한’ 주제를 철학 체계 내로 수용한 에피쿠로스가 아니었다면 욕망의 철학은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남경태 /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철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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