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기(영becomming, 프devnir, 독werden)
‘되기’란 간단히 말하면,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되기는 동물이 되는 것이고, 어린이-되기는 어린이가 되는 것이며, 여성-되기는 여성이 되는 것이다. 무슨 마법사도 아니고, 멀쩡한 사람이 어떻게 동물이 되고, 어린이가 되고, 여성이 되냐고? 될 수 있다.
동물-되기란 동물로 변한다는 뜻이 아니라, 동물의 신체적 감흥을 획득하는 것이다. 에를 들면, 헤비메탈 그룹의 목소리는 때때로 늑대의 울음소리처럼 들릴 때가 있다. 그 순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늑대의 감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늑대-되기. 또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이 전력으로 질주할 때, 그 순간 그들은 야생마-되기 혹은 치타-되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어린이-되기나 여성-되기도 그런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플라톤 이래 서양 형이상학의 흐름은 모든 것(존재자)의 원천이자 근거가 되는 본질적이고 불변적인 실체에 대한 탐구였다. 이에 반해 들뢰즈/가타리는 ‘존재’가 아닌 ‘생성’을, 불변적이고 고정적인 실체가 아닌 유동적인 변화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다. 되기란 바로 이러한 생성과 변화를 함축하고 있는 개념이다.
들뢰즈/가타리의 사유에서는 뿌리가 아닌 리좀1)이 선호되고, 정착이 아닌 유목2)이 강조되며, 관성이나 중력에서 벗어나는 클리나멘3)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입장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1) 리좀(rhizome)
들뢰즈/가타리 철학의 주요 개념. 간단히 말해 ‘덩이줄기’를 뜻한다. 뿌리와 다른 것은 곁뿌리나 잔뿌리들이 모이는 어떤 중심이 없다는 것. 중심이 없으니, 일정한 방향이나 도달해야할 목적지 또한 있을 수 없다. 감자나 산더덕의 줄기를 떠올려 보라. 산지사방으로 뻗어나가 도대체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종잡을 수 없지 않는가. 아무리 캐내어도 어딘가 잔뿌리가 남아 또 어디론가 뻗어가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우발성과 역동성이야말로 리좀의 특이성이다.
2) 유목민(nomad)/유목적 능력
유목이란 동물을 기를 때 우리 없이 방목을 하면서 목초지를 찾아 끊임없이 옮겨 다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노마드는 유목을 삶의 조건으로 삼는 사람 혹은 집단을 말한다.
이들은 한 곳에 머물지 않으며 항상 새로운 삶의 조건들을 찾아 움직이기 때문에,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정착민과 대비된다. 그렇다고 유목을 단순한 이동이나 유랑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유목민에게 중요한 것은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창안하는 것이다.
어디서든 들러붙어 능동적으로 삶을 구성하되, 그 대상이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것, 어떤 것과도 접속할 수 있고 언제든 다른 존재로 변이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유목적 능력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목적 삶을 위해 굳이 초원이나 사막을 찾아갈 필요는 없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이 선 자리를 초원으로, 사막으로 만드는 것이다. 도시에서 유목하기, 앉아서 유목하기가 결코 반어가 아닌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3)클리나멘(clinamen)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주어진 관성적 운동에서 벗어나려는 성분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 가령 중력에 의해 낙하하는 것은 아무리 빨리 떨어진다 해도 속도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만 중력에 끌려 내려갈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유한 속도는 그 중력을 이기는 힘, 중력을 벗어나는 힘에 의해 정의된다. 중력이나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거기서 벗어나는 성분을 ‘클리나멘’이라고 한다.
들뢰즈/가타리는 ‘탈주’가 단순한 도망이나 도주, 혹은 파괴나 해체 등의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관성, 타성, 중력 등에서 벗어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힘이라는 의미에서 클리나멘을 통해 탈주의 개념을 정의한다.
포획/포획장치
포획이란 정치경제학적으로는 초과이윤을 착취하는 방식이고, 포획장치는 그것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제도적 메커니즘을 뜻한다. 하지만 이렇게 정의하면 용어보다 해설이 한술 더 뜨는 설상가상의 상활에 직면하게 된다.
그냥 간단하게 말하면, 개인들의 잠재력을 특정한 방식으로 착취하여 이용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입사제도 같은 것이 대표적인 포획장치에 해당한다.
홈패인 공간/매끄러운 공간
홈패인 공간은 자동차길이나 수로처럼 홈이 파여져 있는 공간이다. 이런 공간에선 오직 주어진 방향으로만 가야한다. 옆으로 ‘셀’ 수가 없다는 뜻이다.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학교교육이나 공무원체제가 거기에 해당된다. 구성원들로 하여금 단일한 방식으로만 행동하게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맹목적으로 앞을 향해 질주하거나 아니면 낙오하거나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것이 홈패인 공간의 속성이다.
그에 반해, 매끄러운 공간은 초원이나 사막처럼 홈이 없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어서 사방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다.
아이스 링크장이나 알래스카의 설원을 연상하면 된다.
고미숙 / ‘열하일기,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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