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개인이 국가에 우선한다

송담(松潭) 2007. 3. 29. 21:11
 

 

개인이 국가에 우선한다



플라톤은 전체주의를 이렇게 말한다.

“부분은 전체를 위해 존재하지만, 전체는 부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너는 모든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너를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부분을 개인으로, 전체를 국가로 바꿔보자. 그렇다면 ‘개인은 국가를 위해 존재하지만, 국가는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가 될 것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이런 이념은 어릴 때 강제로 외운 국민교육헌장에도 나와 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사실이고, 태어나 보니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역사적 사명을 띠고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은 분명 아니다. 국민교육헌장은 국민을 국가의 일부분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당시 내가 자주 듣던 이야기는 각자 위치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자는 것이었고, 이 논리를 합리화하고자 국가유기체설이라는 비유를 동원했다. 즉 몸이 있는데 총알이 팔을 관통하여 썩어 들어간다고 하자. 팔을 절단하지 않으면 생명에 지장이 있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 이런 질문에 답은 정해져 있었다. 팔을 절단하여 목숨을 구해야 한다가 답이다.


 이런 국가유기체설은 전체주의를 대변한다. 몸은 전체이고 정의란 “집단체의 건강, 통합, 안정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기에 광주 항쟁에서 많은 시민들이 스러져간 것이다.

스탈린은 숙청이란 명목으로 천만 명을 처형했으며, 인구의 1/3을 없애버린 크메르의 킬링 필드도 전체주의가 낳은 비극적 결과였다.  집단체의 건강과 통합, 그리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안정, 이 모든 것이 전체주의의 토사물이었다.


국가유기체설이 옳지 않은 이유는 몸을 생명체로 인식하면서 몸의 일부분인 팔과 다리는 독자적인 생명으로 인정하지 않은 데 있다. 곧 국가는 생명이 있지만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은 독자적인 생명이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국가가 아닌 시민이다.

따라서 시민 본위의 이념을 세워야 한다.


 스토아 철학자들도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세 가지로 국가와 부모, 성격을 꼽았다. 하지만 국가가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환경이긴 해도 개인보다 우선하는 근본적 존재일 수는 없다. 개인이 없는 국가는 불가능하지만 국가 없는 개인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저 유명한 케네디의 취임 연설문 “국가가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잘못됐다.

국가는 개인을 위해 어떻게 서비스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고, 개인은 자신의 행복 추구를 위해 국가가 정한 법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개인의 행복 추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임무다.


 박정희 독재 정권과 싸우면서 우리는 민주화를 쟁취했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독재 정권의 속성인 전체주의와 파시즘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악마와 싸우면서 악마를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안에 자리 잡은 파시즘을 반성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우선하는 곳이다. 이런 국가를 건설하는 데 민족과 통일은 부차개념이다. 민족을 위해, 통일을 위해, 개인의 권리와 행복이 우선권을 양보할 수는 없다. 통일을 한다면 이 땅에 사는 개인의 행복 증진을 위한 통일이어야 하며, 우리가 민족이란 이름으로 무엇을 해야 한다면 그것도 개인의 자유 확대와 권리 증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개인이 국가에 우선한다.


탁석산/ ‘철학 읽어주는 남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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