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멘털 짐내스틱(mental gymnastic)

송담(松潭) 2007. 10. 27. 23:42
 

 

멘털 짐내스틱(mental gymnastic)



“돈 5달란트를 잃었다고 심각해지는 이들도 정작 자기를 잃어버린데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키르케고르의 한탄이다. “삶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세상의 정의란 무엇인가?” 등등은 ‘철학자 같은’의문이다. 일상에서 ‘철학자 같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다. 이 표현에는 바쁜 세상에서 뜬구름 잡는 한가한 소리나 한다는 힐난이 담겨 있다. 무한경쟁의 시대, 자기계발을 하기도 바쁜데 “삶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물음인가?


 가난했던 스크루지는 성공하여 엄청난 돈을 모았다. 하지만 재산이 쌓일수록 그는 외롭고 까칠한 사람이 되어갔다. 인기 절정의 연예인이 우울증에 빠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심지어 자살까지 한다. 싱크탱크인 신경제학재단에 다르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국민소득 2,944달러의 섬나라 바누아투공화국이다. 우리나라는 102위, 미국은 150위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자. 우리는 무엇을 위해 ‘무한경쟁’을 하는가? 그렇다면 과연 부자가 되고 명성을 쌓으면 반드시 행복해 지는가?


 돈에 한 맺힌 사람은 결코 돈으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마약중독자에게 아무리 마약을 많이 주어도 마약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돈과 인정도 마찬가지다. 성적 탓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은 꼴찌가 아니라 대부분 상위권 아이들이다. 왜 그럴까?


 돈과 명에는 결국 내 것이 아니다. 언제고 잃을 수 있다. 재벌이나 구멍가게 주인이나 망할 가능성에는 공평하다. 하지만 그 규모가 다르다. 재벌은 쓰러지면 크게 망하지만 구멍가게는 실패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조금 잃는다. 재벌의 경우 잃는 게 크니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낙선의 충격이 반장 선거 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 큰 것처럼 말이다. 돈과 명예는 쌓일수록 사람을 더 전전긍긍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진정 행복하고 싶다면 ‘나’부터 튼튼하게 가꿔야 한다. 돈과 명예는 원래 내 것이 아니기에 언제고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한 나’는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한다. 자아가 크고 당당한 사람은 세파에 흔들리지 않으며 늘 힘차고 밝다. 사람들은 그의 매력에 끌리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자아가 건강한 사람은 재산과 명성을 위해 아득바득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과 명예가 그를 따라오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스스로 돈을 위해서 일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의 말은 진실이다.


 그렇다면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재산인 ‘나’부터 가꿔야 하지 않을까? 튼튼한 자아야말로 핵심 경쟁력이다. 어떻게 나를 튼튼하게 기를 수 있을까? 키르케고르는 “절망은 구원으로 가는 첫 관문”이라고 말한다. 자기 몸의 이상을 느껴야 병원에 가는 법이다. 아픔과 고통을 절실히 느끼는 데서 치료는 시작된다.


 “내 삶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의문은 내 영혼의 문제를 진단하는 의사의 문진(問診)이다. ‘쓸데없는 나약한 소리’라는 거부감이 밀려들지 모른다. 그래도 묻고 또 물어라. 솔직하게 드러내고 대답을 찾을수록 내 자아는 점점 더 건강하고 강해질 것이다.


 운동은 처음 시작할 때가 가장 어렵다. 철학은 ‘멘털 짐내스틱(mental gymnastic)’ 말 그대로 ‘정신의 운동’이다. 처음하면 어색할지 모른다. 어떻게 할지 감도 안 올뿐더러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속적인 운동이 건강한 몸을 반들듯 꾸준한 철학 연습은 건전하고 단단한 자아를 만든다. 진정한 행복 쌓기는 그런 자아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안광복 / ‘철학의 진리나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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