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니체의 초인(超人)

송담(松潭) 2007. 8. 16. 04:02
 

 

니체의 초인(超人)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강자를 제압하는 것을 넘어 모든 사람에게 노예와 같은 예속 상태를 강요한다. 종교든 무엇이든 어디엔가 의지해야 하는 인간은 주체성을 상실한 것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주체성을 내놓으라고 명령하는 것은 살인이나 다름없는 행위다. 그런 거짓된 가르침을 도덕과 교리로 포장하는 것은 진의를 숨기고 남을 속이기 위한 위선이다.


 위선에서 비롯되는 동정은 미덕이 아니라 싸워 이겨나가야 할 악덕이다.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은 동정과 연민을 오히려 치욕스럽게 여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남의 동정을 바라고 스스로 노예가 되고자 한다.

이런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주체성과 진정한 자유를 회복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인간을 니체는 초인(超人)이라 부른다. 영어 번역에는 우리에게 더 익숙한 슈퍼맨인데, 영화 속의 슈퍼맨과는 다르다. 이육사의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조금 비슷하지만 니체의 초인은 조국의 광복을 꿈꾸며 광야에 우뚝 선 지사(志士)풍이 아니라 현실의 역사로 보면 효웅(梟雄)에 더 가까운 이미지다. “사소한 군중의 고통 때문에 슬퍼하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무자비한 행위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는 인물, 니체가 말하는 예는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2세나 나폴레옹 같은 인물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8세기에 마키아벨리가 꿈꾸는 군주와 같다.


 헤겔은 역사가 발전하고 진보한다고 철석같이 믿었지만 니체가 보는 역사는 거대한 순환운동을 계속할 뿐이다. 발전과 진보에는 방향이 있고, 방향이 있으면 처음과 끝이 있다. 그러나 역사는 발전하지 않고 순환하기 때문에 방향도 없고 처음과 끝도 없이 영원히 반복된다. 니체는 이런 관점을 ‘영원회귀’라고 부르는데, 모든 종교를 부정했으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는 다른 의미다. 윤회는 개인의 삶이 한 차례로 끝나지 않고 해탈에 이를 때까지 거듭 태어난다는 뜻이지만, 영원회귀는 우선 대상이 역사 전체이고 다른 삶이 아니라 똑같은 삶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신화와 같은 요소 때문에 진지하게 받아드리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러나 니체가 영원회귀 개념을 내세운 이유는 그 자체의 의미 보다는 역사에 특정한 방향과 목적이 없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영원회귀를 받아드리면 역사를 주도하거나 변혁하려는 야망은 무의미해진다. 이것은 분명히 허무주의다. 그러나 니체는 역사의 종말론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역설적으로 삶의 긍정을 부르짖었다. 진정한 초인은 역사 속에 실재한 영웅보다도 그 허무주의 자체를 자신의 의지가 선택한 현실로 인정하고, 덧없는 삶이 무한히 되풀이 되더라도 그 비극적 운명마저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을 가리킨다. 그가 만년에 이르러 광기에 시달린 이유는 그런 초인의 꿈이 헛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남경태 /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철학’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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