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 8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선한 인연, 참 좋은 관계.’ 이것은 제가 생각하는 집사람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29세에 결혼하여 43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제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결혼이었고 집사람의 성격이 너무 온순해서 집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시 아주 불리한 선택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고생 없이 귀하게 자란 집사람이 저와 결혼하여 30년 직장생활로 1인 3역을 했고, 홀로되신 시어머니를 21년 동안 모셨으며, 외출도 외식도 친구도 잘 만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직 가족만을 위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때문에 퇴직 후 제 삶은 방만하고 무책임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산책길에서 문득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

‘진보의 경제성장’은 어떻게 가능한가

‘진보의 경제성장’은 어떻게 가능한가   한국과 미국의 잠재성장률이 역전됐다. 경제성장률은 경제 규모가 커지면 둔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4%였다. 미국은 1.9%였다. 2023년 처음으로 역전됐다. 미국은 2.1%, 한국은 2.0%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같은 수치다. 사람들은 성장률이 낮아질수록 성장의 가치를 더 주목하게 된다. 성장은 고용과 직결되고, 고용은 소득과 직결된다. 자본주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성장률이 낮아지면 ‘내부 분배 투쟁’이 격화한다. 사회 갈등도 심해진다. 경제성장 그 자체가 중요한 이유다. 진보 쪽 일부에서는 ‘진보적’ 경제성장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다. 넓게 보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 실험도 같은 맥락이었다. 예컨대, 문재인 ..

체념의 힘

체념의 힘   의사이자 문화인류학자인 김관욱은 최근작 에서 인간의 몸이 발명해낸 질환으로 체념증후군(resignation syndrome)을 소개한다. 이 증상은 몸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에 대해서는 극복하려 하기보다 고통을 감수하려는 현상을 말한다. 증상 중 하나가 수면인데, 무려 5년 동안 잠을 자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 깨어날까. 죽지 않고 영원히 잠든다면? 아니, 수면이 유일한 자기 보호 조치라면 깨어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한 무리의 소녀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흔들고 꼬집는 등 어떤 힘을 가해도 움직임이 없다. 찬 얼음을 몸에 대도 소용이 없고 그 어떤 통증에도 심장 박동 수가 올라가지 않는다. 꾀를 쓴다고 해도 자율신경계의 반응까지 통제하는 ..

상처의 치유 2024.10.24

마음을 담은 집

마음을 담은 집  집이 없어도 지구는 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는 집을 통해 이 지구상에서의 존재 의미가 더 커질 수도 있다. 그걸 존재의 가치라고 부를 일이다. 지구는 여전히 무심하게 돌 것이다. 우리는 그 순환에 맞취 살고 있다. 어떤 여행이든 순례든 그 뒤에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가장 긴 순례, 지구 위에서 생명체로서의 순례를 마치면 우리는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흙으로 돌아간다. 지구는 돌고 우리는 돌아가야 한다. 그게 생명체에게 지정된 숙명이다. 사람이 집을 짓는 이유는 돌아갈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집'이 담는 것은 밥 먹고 잠자는 일상일 수도 있다. 그러니 ‘좋은 집’은 그곳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담는 공간이다. 그 마음은 보이지도 않는데 가끔 이리저리 변하기도..

전원일기 2024.10.22

이기주 / ‘그리다가, 뭉클’중에서

이기주 / ‘그리다가, 뭉클’중에서   빛을 그린다. 보이지 않는 빛을 그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림자를 그리는 것이다. 밝은 것을 그릴 때는 주변을 아주 어둡게 그리면 된다. 지금 어둠이 그려지는 시간을 살고 있다면 동시에 눈부시게 밝은 빛이 그려지고 있는 중이다. 그림 그리다가 뜬금 위로가 차올라 울컥해진다.  내려놓음   한바탕 난리 끝에 지칠 대로 지쳤다.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곳이 필요했다. 극내향형에 걸맞게 아주 조용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남해가 딱 그랬다. 구불구불 느리게 움직이는 해안선을 따라 길을 가다 보면 여기저기 보이는 풍경이 소박하고 정겨웠다. 꾸며 대는 것 없이 원래 그렇게 생긴 것들과 먼 세월부터 시간이 만든 흔적들이 그냥 그대로 조용했다. 빨간 지붕 집을 중심에 둔 한적한 ..

최근 읽은 책 2024.10.20

100세 시대, ‘생애주기’를 창안하라!

100세 시대, ‘생애주기’를 창안하라!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고(志于學), 서른에 자립하고(而立), 마흔에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不惑). 오십에는 천명을 알고(知天命), 육십에는 귀가 순해지며(耳順), 칠십이 되면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從心所欲不踰矩). 주지하듯, 공자가 구현한 생애주기다. 그런가 하면, 이런 생애주기도 있다. 학습기(스승을 찾아 베다의 진리를 배우는 시기), 가주기(결혼과 직업을 통해 사회적 다르마(의무)를 실행하는 시기), 임서기(숲으로 가서 명상과 성찰에 들어가는 시기), 유랑기(천하를 유행하며 해탈을 향해 나아가는 시기). 이것은 아슈라마, 곧 인도의 힌두교가 제시하는 생애주기다. 공자와 힌두교 모두 BC 5세기 전후에 등장한 영적 비전이다. 동의보감..

명칼럼, 정의 2024.10.14

아들을 위한 기도

사랑하는 아들   어느 날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니맑고 똑똑하고 참신하게 보였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눈에 비친 자식의 형상입니다.누구든 자식은 귀하고 사랑스러울 것입니다. (2023.10.25) 숲길에서의 기도(祈禱)  뒷산 임도(林道)에 있는 숲길을 자주 걷습니다. 왕복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몇 군데서 잠시 멈춰 생각에 잠기거나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장소가 있습니다.먼저 40분쯤 걷다가 높이 솟은 튼튼한 나무에 손바닥을 대고 심호흡을 하면서 기(氣)를 받습니다. 두 팔로 안아도 닿지 않을 나무를 보며 나무가 얼마나 강하고 튼튼한지를 느낍니다. 옛날엔 이런 나무에는 ‘정령(精靈)’이 산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다음은 숲길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장소입니다. 약간 구부러진 가벼운 내리막길은 무척이나 평화롭게 보..

여행, 기쁨 너머의 의무

여행, 기쁨 너머의 의무   매년 겪는 일이지만 7, 8월이 되면 우리가 사는 조용한 바닷가 휴양지도 잠시 홍역을 치른다. 피서객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해수욕장은 물론, 호텔을 비롯한 민간 숙박시설과 레스토랑을 꽉 채운다. 한편으로는 조그마한 마을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음과 쓰레기로 주민을 고생시킨다. 쓰레기 분리 배출을 하게 되어 있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고 아무 곳에나 쓰레기를 내던지고 사라져 환경미화원을 온종일 바쁘게 한다. 이들 가운데 제일 많은 영국인이 유별나게 웃통을 벗거나 비키니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해서 주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가톨릭 신앙이 뿌리 깊게 내려 보수적인 정서가 여전한 포르투갈에서 매년 이에 대한 경고가 있고, 이 지역에 이주해 온 영국인들이 부끄러운..

여행, 걷기 2024.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