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 10

인구소멸 위기 지자체 생존 위한 ‘신안 예술섬 프로젝트’ 첫 결실

인구소멸 위기 지자체 생존 위한‘신안 예술섬 프로젝트’ 첫 결실  “신안 다도해는 아름답고 경이롭습니다. 신안 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죠. 우리가 지구를 존중하는 방식을 잃어버린 시점에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영감을 받고 배우면서 더 좋은 ‘내’가 된 것 같습니다.” 빛과 물, 빙하 등 자연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온 작품으로 이름난 세계적인 설치미술작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이 전남 신안군 도초도의 천혜의 자연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인다. ‘숨결의 지구’(Breathing Earth Sphere)이란 작품명처럼 도초도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도초수국정원 언덕에 지름 10m의 구형 공간을 만들었다. 밖에서 보면 봉긋 솟은 봉분처럼 보이는 작품 내부에 들어가기 위해선 캄캄한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박용래와 강아지풀

박용래와 강아지풀    강아지풀은 흔하디흔한 풀이다. 화려한 꽃이 피는 식물도 아니다. 그저 길가나 풀숲 귀퉁이에 자라 눈여겨보는 이도 없다. 사는 곳이 어디건 주인 행세도 하지 않는다. 긴 수염이 달린 좁쌀 같은 열매가 강아지 꼬리를 닮아 한자로는 구미초(狗尾草)라 한다. 아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강아지풀을 시인 박용래는 ‘가장 사랑하는 한마디의 말’이라 했다. 고개 숙인 강아지풀의 턱밑을 간질이며 강아지 어르듯 ‘오요요 내 강아지’ 하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강아지풀을 집에서 기르는 털북숭이 강아지로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 그의 만물 사랑은 넓고도 깊어 동식물 구분이 없었다. 그는 강아지풀을 보고 “빛을 바라며 어둠 속에서 우는 어린이 같은 존재”라고 했지만, 나는 시인을 떠올렸다. 아주 ..

지역에서 연결될 권리

지역에서 연결될 권리  수년 전부터 ‘동네지식인’을 자처했지만, 요즘 정작 동네를 비우는 경우가 잦다. 동네 술벗들로부터 “동네를 너무 자주 비우는 것 아니냐”며 힐난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15년 전쯤 자발적 백수가 된 이래 직장인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잘 지켜온 것에 만족해하는 편이다. 올해 유독 자주 찾은 지역은 전남이었다. 전남문화재단 자율기획형 사업 책임심의위원을 맡아 해남, 담양, 곡성, 고흥 등지를 찾았다. 시인보다는 ‘전사’이고자 했던 김남주 시인(1945~1994) 30주기를 맞아 김남주기념사업회가 극단 토박이와 손잡고 상연한 시극 관극차 해남을 처음 방문했다. 곡성 한국실험예술정신이라는 단체가 옥과면 신흥마을에서 국내외 예술가들과 함께 옛 신흥상회를 ..

기민과 탄핵

기민과 탄핵   2016년부터 시작된 ‘촛불시위’에 연인원 1700만명이 참여했다. 이듬해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촛불’은 전국 각지에서 장기간 대규모로 이루어진 자발적 힘이었다. 당시 ‘여론 주도층’은 이 집회의 동력과 원인에 대해 많은 토론과 분석을 시도했다. 구한말 만민공동회가 역사적 기원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1980년대 ‘변혁 이론’ 중 하나였던 제헌의회 그룹(CA)의 이론적 전제는, 일반 대중은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있으므로 해방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직업 혁명가의 지도가 필수적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이 가장 경계한 것은 대중 추수(追隨)주의였다. ‘촛불’은 이들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역사다. 8년 전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귀가하지 않고 콘서트를 즐..

명칼럼, 정의 2024.11.20

낯선 독일어 노래에 피아노 한 대···가을에 듣는 리트의 매력

낯선 독일어 노래에 피아노 한 대···가을에 듣는 리트의 매력   서울국제음악제 공연을 위해 내한한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왼쪽)와 피아니스트 랄프 고토니. 백승찬 기자  독일 가곡을 뜻하는 리트(Lied)는 시와 음악이 어울린 음악 형식이다. 피아노 한 대만으로 반주한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발표된 지 200년이 다 된 현재까지 사랑받는 리트다. 다만 낯선 독일어 가사, 소박한 피아노 반주에 감상의 벽을 느낄 수도 있다. 이언 보스트리지는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테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와 철학을 전공한 뒤 27세에 뒤늦게 성악가의 길을 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리트 해석의 권위자이기도 하다. 여러 장의 ‘겨울 나그네’ 음반을 냈고, 책 를 펴내기도 했다. 보스트리지가 서울국제..

클래식, 음악 2024.11.15

유박(柳璞)과 화품(花品)

유박(柳璞)과 화품(花品)  어느 시대나 덕후는 있게 마련이다. 좋아하는 것에 꽂혀 모든 걸 쏟아붓는 열정은 옛날이라고 다를 리 없다. 조선 후기 꽃에 꽂힌 덕후가 있었으니, 황해도 배천의 금곡 출신 유박이다. 몰락한 가문 출신이라 벼슬의 꿈을 버리고 서해 바닷가에 백화암이라는 정원을 짓고 평생을 살았다. 돈만 생기면 꽃에 몰빵하며 외국산 꽃도 마다하지 않았다. 채제공과 유득공 등 당대 문인들도 앞다투어 그의 화벽(花癖)에 관한 글을 남겼다. 당시에는 꽃의 모습과 생리, 운치와 상징성 등을 기준으로 꽃을 품평하는 것이 유행했다. 꽃에 관한 유박의 생각은 직접 집필한 (번역본은 정민 등이 옮김, 휴머니스트)에 실렸다. 맨 앞부분에는 꽃에 등수를 매겨 품평한 ‘화목구등품제’가 등장한다. 또한 22종의 꽃에 ..

허튼소리

허튼소리 농사철이 끝나고 나면 농부들은 골병든 몸을 돌보느라 정형외과로 한의원으로 다니느라 바쁘다. 모두 지구 가열화로 농사짓기가 갈수록 어려워 몸과 마음이 몇배로 고달파서 일어난 일이라 한다. 이런 현상을 ‘기후 재난’이라 한다. 기후 재난은 농부들에게 가장 빠르고 험악하게 다가온다. 오늘 낮에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후배가 명예퇴직을 준비하면서 찾아왔다. “선배님, 앞으로 농촌에서 먹고살려면 지켜야 할 10계명 같은 거 없습니까? 생각나는 대로 몇가지만 들려주면 고맙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남은 삶을 아내와 함께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살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제 몸에서 ‘사람 냄새’가 날 것 같습니다.” 후배 말을 듣고 갑자기 거창고등학교 ‘직업 선택 10계명’ 중 몇가지가 떠올랐다. “내가 ..

인생 2024.11.11

할매가 되지 못한 할매

할매가 되지 못한 할매  순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한 남자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다. 잘생기진 않았던 모양이다. 학교가 발칵 뒤집히지 않았던 걸 보니. 처음 보는 남자가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여학생들 앞에서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교문 옆에 서 있었다. 내 운동화가 시야에 들어오자 그는 번쩍 고개를 들고는 환하게 웃었다. 처음 보는 남자의 속절없이 환한 미소가 기이해서 그 장면이 각인되었을 것이다. “못 알아보겄냐? 나는 단박에 알겄는디. 외삼촌을 쏙 빼닮았다이.” 아버지를 외삼촌이라고 부른다면 필시 고모의 아들일 터였다. 내가 아는 고모는 셋, 그 자손들 중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문득 할머니가 말끝마다 옷고름으로 눈물을 찍어내던 죽은 고모가 기억났다. 나는 그 고모를 아주 어려서 딱 한..

인생 2024.11.08

수치만으론 이해 못할 지방소멸

수치만으론 이해 못할 지방소멸  “지방소멸이라는 말 좀 제발 안 썼으면 좋겠다. 사라질 동네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방사능 폐기장에서 키우는 느낌이다.” 지난달 28일 오픈데이터포럼 열린세미나에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이상림 책임연구원이 소개한 지역의 한 젊은 부부의 말이다. ‘지방소멸’은 일본 정치인 마스다 히로야가 2014년에 내놓은 책 에서 처음 쓰였다. 한국에도 유행이 됐다. 각종 ‘지방소멸 지수’가 만들어졌다. 2021년에는 감사원의 보고서를 인용해 “강남, 광진, 관악, 마포만 생존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정작 원조 격인 책에는 ‘소멸지수’라는 말이 없다. 2040년까지 20대 여성 인구가 절반 이상 줄어들 자치단체 896개를 ‘소멸 가능성이 높다’고 했을 뿐이다. ‘소멸’이라는 말이 충..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한국 문학의 기념비적 쾌거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한국 문학의 기념비적 쾌거  한국 작가 최초, 아시아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 한강. ⓒ김병관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200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후 한국인으로선 두번째 받은 노벨상이자, 첫 노벨문학상이다.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사회적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인간의 아픔을 문학 언어로 승화시켜온 작가의 고투가 세계인의 보편적 공감을 끌어낸 성취로 평가된다. 작가 개인의 영광을 넘어 한국 문학 쾌거라고 할만하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수상을 발표하면서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을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