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사랑과 질투의 함수관계

송담(松潭) 2006. 12. 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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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질투의 함수관계



 질투 없는 사랑이 있을까? 사랑 없는 질투가 있을까?

요컨대 사랑=f(질투), 질투=f(사랑)라는 거지요. 이러한 생각들은 질투가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취급되는 오늘날에도 사랑에 빠진 젊은이들 사이에서 떠돌아다닌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질투와 사랑은 분명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종종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 닮았습니다. 너무나 강력하여 한번 시작하면 두 눈이 멀고 이성을 잃어 도저히 막을 수 없다는 특징까지 그렇지요.


 그래서 질투와 사랑은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는 말이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진화심리학이라는 최신 학문에서도 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심리를 장구한 진화과정에서 이해하는 진화심리학자들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질투도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매카니즘이 작동하는 진화의 산물로 파악합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유전자를 보존하고 퍼트리려는 욕망이 사랑과 질투의 본질이라는 거지요. 때문에 질투는 비단 인간만이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는데, 그 흥미로운 예를 ‘정자 경쟁’이라 부르는 수컷들의 행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검정물잠자리의 수컷은 교미하기 전 암컷의 저정낭(貯精囊) 속에서 먼저 다른 수컷으로부터 받아 놓은 정자를 모두 훑어낸 후 자신의 정자를 흘려 넣는다고 합니다. 또한 숫상어의 음경에는 두 개의 관이 달려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바닷물을 끌어올려 다른 수컷의 정자가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암컷의 생식기를 씻어내는 데 쓰인답니다. 새의 일종인 바위종다리 수컷은 교미 전 암컷의 외부생식기를 부리로 여러 차례 쪼아 암컷이 먼저 다른 수컷으로부터 받은 정액을 모두 배설하게 만든다고도 하지요.


 사람도 예외가 아니랍니다. 최근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정자에는 힘차게 헤엄쳐 나갈 수 있는 기다란 꼬리를 가진 것과 헤엄을 치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돌돌 말린 꼬리를 가진 것. 두 가지가 있다고 하지요. 전자는 난자에 이르러 수정을 하는 정자이고, 후자는 여성의 자궁 안에 들어있는 다른 남성의 정자를 감싸 안고 함께 죽는 정자랍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유전자가 정자 경재에서 승리하게 한다는 거지요.


 진화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진화의 메카니즘이 심리작용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겁니다. 비유하자면, 사랑이 난자에 이르러 수정을 담당한 정자의 역할을 한다면, 질투는 다른 남성의 정자를 감싸 안고 죽는 역할을 하는 방어적인 심리적 매카니즘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라는 진화심리학자는 그의 저서 <질투>에서 방어매카니즘으로써 질투의 정당성을 강조합니다.


 간혹 살인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흔히 ‘오셀로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병적 질투는 정신과 치료의 대상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환자는 근거도 없이 자신의 아내가 성적 배신을 저질렀다는 망상에 시달리고 있는 남편들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괴로워하며, 아내에게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거나, 어디에 있는지를 항상 알리게 하고, 모욕적인 욕설이나 폭력을 퍼붓고 심지어는 살해하기까지 합니다.


 버스에 의하면 이러한 환자들을 담당하는 의사들은 극단적인 ‘오셀로 증후군’을 치료할 수 없는 정신질환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별거나 이혼을 권유한다지요. 그런데 이런 처방을 내린 후에 조사를 해보니, 오셀로 증후군 환자들의 아내 가우데 상당수가 남편이 질투심을 느낀 바로 그 상대와 실제로 성관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겁니다. 즉 많은 경우 남편들은 정신질환이라기 보다는 진화과정에서 발달한 질투라는 방어적 매카니즘을 통해 실제 부정행위의 신호를 직감적으로 탐지해낸 것이라는 거지요. 물론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가 탄생한 겁니다. 이 작품에서 오셀로는 아내를 살해하게 한 자신의 질투가 아내에 대한 사랑에서 나왔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생략)......



 버스가 ‘오셀로 증후군’이라 불리는 병적 질투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배우자 간의 ‘매력도 차이’를 들었다는 겁니다. 성적 매력도는 외모, 나이, 능력, 건강 등에 다라 정해지는데, 상대에 비해 성적 매력도가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배후자에게 심한 질투를 느낀다는 거지요. ....(생략)....


시기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해 느끼는 불편한 감정인데 반해, 질투는 자신이 이미 소유한 것을 경쟁자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불편한 감정

.....(생략)......


물론 이러한 질투는 경쟁자에게 상대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질투, 곧 ‘진화심리학적 질투’가 아니라, 사랑하는 상대와 하나가 될 수는 영원히 없다는 데서 오는 질투, 곧 ‘존재론적 질투’이지요. 때문에 오히려 더 근원적이고 보편적입니다. ‘진화심리학적 질투’는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가려는 제3의 경쟁자가 있을 때에만 일어나지요. 하지만 경쟁자가 없는데도 일어나는 존재론적 질투, 즉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상대를 완전하고 철저하게 소유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쓸쓸함과 허전함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갖게 된다는 말이지요.

.....(생략)......


진화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상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성적 욕구는 비례하고, 성적 소유는 더 내면적인 것을 소유하려는 욕구를 갖게 한다고 합니다. 먼저 육체를 소유한 다음에는 마음과 영혼까지 빼앗으려고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집요한 소유욕의 바탕에는 상대가 자기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소유하는 것만이 이러한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논리가 깔려 있다는 거지요.


<오셀로>에서 오셀로가 아내 데스데모의 목을 조를 때에도 이런 불안 이런 집착에 빠진 겁니다. .....(생략)...... 그녀의 육체, 그녀의 영혼, 그녀의 생명까지 다 뺏어버리고 싶은 충동으로 몸이 떨려왔기 때문에 말이지요.

 

그러나 항상 이게 문제지요. 알고 보면 사랑이란 ‘하는 것’이지 ‘갖는 것’이 아니며, 그 대상은 ‘행위의 대상’이지 ‘소유의 대상’이 아닌 겁니다.

.....(생략)......


에리히 프롬은 소유하지 않는 사랑, 함께 향유하는 사랑을 권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유양식’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존재양식’으로서의 사랑이지요. 이런 사랑은 ‘갖는 사랑’이 아니고 ‘하는 사랑’이며,

‘받는 사랑’이 아니고 ‘주는 사랑’이고,

‘이기적 사랑’이 아닌 ‘이타적 사랑’입니다.

마치 뜨거운 물체에서 열이 퍼지듯, 꽃에서 향이 퍼지듯

그렇게 상대를 향해 스스로를 여는 사랑이지요.

.....(생략)......


김용규/‘철학카페에서 문학일기’(웅진지식하우스 펴냄)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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