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것들은 반복적으로 회귀한다
1900년에 출간된 <꿈의 해석>은 이렇게 해서 발견된 무의식 이론이 처음으로 방대하면서도 체계적인 담론으로 다듬어진 책이다. 정신분석학이라는 담론의 형태가 분명하게 갖추어지게 된 것이다.
정신분석학은 “억압된 것의 회귀”를 다룬다. 신체적 상해가 아니라 심리적 억압이 쌓일 경우 그 억압된 것들은 반복적으로 회귀한다. 억압들이 쌓이는 장소는 곧 무의식이다.
이 장소는 물리적 장소처럼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다. 우리는 억압들이 어디에 쌓이는지 아직 모른다. 유물론적으로 생각한다면 분명 뇌 또는 신체의 어디엔가 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정신분석학이 하려는 일은 억압이 쌓이는 물리적 “메커니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억압된 것의 회귀”가 인간존재에 대해, 나아가 삶 전반에 대해 가지는 “의미”를 해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억압이 뇌라든가 어떤 장소에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가 단순한 생각일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회의 복잡한 구조를 비롯해 보다 추상적인 존재들에 깃들어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신분석학은 억압들은 “무의식”에 쌓이며, 끝없이 반복적으로 회귀한다고 즉 현실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정신분석학의 이런 통찰은 자연스럽게 꿈에 주목하게 만든다. 무의식과 의식(적 현실)의 관계는 바로 잠의 세계와 깨어있음의 세계의 관계에 대응하기에 말이다. 꿈의 세계와 현실세계의 관계는 그대로 무의식과 의식의 관계에 상응한다. 그러나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억압들은 무의식에서 현실로 나타난다. 반면 꿈과 현실의 관계는 반대 방향이다. 현실의 어떤 것들이 꿈에 나타나기에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꿈속의 것들이 현실로 나타난다고 말하기도 한다.(믿거나 말거나) 여기에서 핵심적인 것은 꿈과 현실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이다. 꿈은 현실과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라는 생각에 맞서 프로이트는 꿈과 현실의 연속성, 그러나 매우 복잡한 연속성을 설명하려 한다.
프로이트는 꿈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해석될 수 있는 무엇이라는 자신감을 표현한다. 그는 유명한 “이르마의 꿈”에 대한 솔직한 서술을 통해서 꿈이란 “은폐된 소원의 성취”라는 결론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신경증적 불안은 성생활에서 비롯
프로이트는 “꿈왜곡”을 다룬다. 만일 꿈이 은폐된 소원 성취를 의미한다면 꿈들은 이것을 왜 그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보여주는가? 프로이트는 외현적인 꿈내용과 잠재적인 꿈사고를 구분하면서 이 물음에 답한다. 프로이트의 이런 논의는 그의 이론을 정면으로 논박하는 것으로 보이는 꿈들 즉 소원-꿈이 아니라 반(反)소원-꿈을 다루는 대목에서 절정에 달한다. 이런 꿈들은 오히려 “꿈이란 (억압되고 억제된) 소원의 (위장된) 성취”라는 그의 생각을 더 강화시켜 주는 예들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프로이트는 여기에서 꿈의 불안을 신경증의 불안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하다. 프로이트는 신경증적 불안이 성생활에서 비롯된다는 것, 일탈한 리비도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제시한다.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나는 깨어나서 꿈을 기억하는 날이 1년이 2~3일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꿈이란 이런 사람들과는 거의 관계없는 세계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꿈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는 프로이트의 책이 더 흥미진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정우/철학아케데미 공동대표
-한겨레 고전 다시읽기/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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