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상식. 심리

여성 관련

송담(松潭) 2006. 7. 27. 13:38
 

여성상과 새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은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을 제쳐놓고 나서면 집안일이 잘 안 된다는 말이다. 나아가 여성의 행실과 지위를 한계지우는 말이기도 했다. 살림하며 내조를 제대로 하는 게 미덕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으나 이젠 여성이 사회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게 더 자연스런 시대가 됐다.


이런 여성상의 변화를 새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적극적인 여성상을 반영하는 새말이 ‘줌마렐라’다. ‘줌마렐라’는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고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들이며 사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기혼 여성을 이른다. 요즘 ‘줌마렐라’의 사회생활에 필요한 도우미 상품과 가사 보조 상품들이 인기라고 한다.


여성상의 변화는 드라마 등장인물에도 반영된다. ‘삼순이 신드롬’을 일으켰던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 ‘삼순이’의 캐릭터는 ‘순대렐라’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이후 겉보기엔 순박하지만 실은 대찬 여성을 ‘순대렐라’라고 부르게 됐다. 기존에 자주 등장하던 ‘신데렐라형’ 인물과는 달리 독립적이면서도 평범하고 순박한 ‘삼순이’는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줌마렐라’, ‘순대렐라’ 등에 보이는 ‘-렐라’는 ‘신데렐라’에서 따온 것이다. 신데렐라는 고달픈 인생을 바꿔 줄 왕자가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의존적 여성상을 대변하는 말이었으나 요즘 새말에 붙는 ‘-렐라’는 단지 앞에 붙은 말의 특성을 가지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뜻한다.

김한샘/국립국어원 연구사

 


남자 덕’ 보는 여자? 독립적인 여자?

 

 

오랜만에 만난 동갑내기 친구는 웬일인지 어깨가 축 쳐지고 코도 쑥 빠져 있다. “나보고 평생 남자 덕 볼 생각하지 말란다. 너무 독립적인 팔자라나?” 평소에도 남자 덕 볼 생각을 하는 친구는 아니지만, 작정하고 찾아간 역술인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실망이 되긴 했나보다.


그래도 요즘 역술인들은 “팔자 센 여자”라는 말 대신 “독립적인 여자”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니 기 센 여자를 대놓고 구박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도 되려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우리 같은 맹꽁이들이 무슨 남자 덕을 바라냐? 독립적인 팔자라면 그렇게 살면 되겠네”라고 말을 받았지만 나 또한 그 친구가 느끼는 ‘온전히 독립적임’에 대한 두려움이 낯설지는 않다. ‘독립적인 여자’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진다는 의미겠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 남자 덕 볼 생각을 하지 않는 여자가 된다는 것은, 데이트할 때 더치페이 한답시고 안 그래도 얇디 얇은 지갑을 열어제낀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남자 덕’이란 이 사회에서 남자가 갖고 있는 권력과 재력과 네트워크 전부다. 그것은 남편이나 아버지, 남자 친구라는 존재의 실질적 힘을 넘어서, 남자의 자원을 빌어 원하는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자 믿음인 것이다. 지금 당장 남자에게 빌붙어 사는 것은 아니더라도 언제든 삶이 힘들 때 부빌 언덕이 되어줄 것 같은 ‘남자 덕’은 그래서 외면하기 힘든 유혹일 수밖에 없다.


오롯이 혼자서 세파를 견디어 본 사람이라면, 남의 덕에 내 한 몸 업혀가는 삶에 대한 환상을 노예근성이라고 감히 이야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자에게 결혼은 곧 계급이자 자원이 되는 세상에서, 남자 덕을 보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자원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니까. 내가 아는 한, 남자 덕 볼 생각을 하지 않는 여자들 대부분은 아버지도 남자임을 너무 빨리 알아버려 가족의 지원을 일찌감치 거부해온 버릇 때문에 이제는 아버지 덕을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처지들이다.


이혼의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야 남자 덕은커녕 숟가락 하나까지 챙겨가는 남자의 치사함이 더러워 손해를 감수한 탓에 집도 절도 없는 경우가 많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통장의 잔고는 바닥나고 내 한몸 뉘일 곳을 여전히 걱정해야 하는 상황, 남자 덕 보지 않는 여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미래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나를 포함해 이런 여자들을 불쌍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온전히 혼자 됨의 자유를 위해 고군분투할 줄 아는 여자들이라면, 남자 덕을 슬쩍 부러워하다가도 남자 덕 보려고 치러야 할 수많은 고통에 화들짝 정신 차릴 줄도 알 것이다. 다만 ‘남자 덕’을 안 보고 살아가는 인생길에서 너무 많은 행복을 세상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는 있겠다. 혹시 세상이 바뀌어 이런 여자들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남자들이 ‘덕’을 좀 발휘할 날이 올까?

정박미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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