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칼럼, 정의

한국 사회에 내전은 없다

송담(松潭) 2025. 3. 14. 05:24

한국 사회에 내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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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술 취한 운전자가 광란의 질주를 했지만 한국 민주주의는 아직 중앙의 가드레일이 무너진 것은 아니어서 절망할 때가 아니다. 그러나 법 기술자를 앞세워 힘으로 밀어붙이자 법관마저 흔들리고 그 뒤를 검찰이 순순히 따라간 것은 충격이었다. 검찰의 배후에는 아직 용산에 살아 있는 내란의 잔존 세력이 사법 카르텔을 동원해 내란의 연장을 도모한다는 합리적 의심도 배제할 수 없다. 더 나아가 풀려난 내란의 우두머리가 무슨 극단적 선택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내전의 위험 구간에 진입했느냐에 대해 나는 “아직은 아니다”라고 말하고자 한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30%대 이상의 두꺼운 중도층이 있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다. 이들이 존재함으로써 거대 양당의 파벌주의가 서로 충돌할 때 그 충격을 완화하는 완충 구역이 아직 충분히 존재한다. 더군다나 중도층의 대다수가 계엄에 반대하며 윤석열 탄핵에 찬성하는 태도를 분명히 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에 회복의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

 

두 번째로 한국에는 종족적·인종적 갈등에 기댄 종족주의형의 정체성 정치가 출현하지 않았다. 반북·반중 혐오 정서가 위험해 보이기는 하지만 인종주의적 폭력으로 나아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중국인 관광객이나 노동자들이 안전에 대한 우려 없이 거리를 활보한다.

 

세 번째는, 여전히 물리적 폭력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국회에 백골단이 등장하는가 하면 서부지법에서 폭동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한국에는 공권력을 위협할 민병대나 자경단과 같은 무장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

 

네 번째로 정부의 공공서비스와 행정의 질이 여전히 우수하다는 점이다. 올겨울의 정치적 격동에도 불구하고 정부 기능에는 큰 손상이 없었다. 오히려 구속된 윤석열의 부재 때문에 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에 대한 감사보고서가 공개되고, 대왕고래 석유와 가스 탐사가 중단되었으며, 의대 정원 증원이 동결되는 등 행정이 속속 정상화됐다. 윤석열이 없으니 행정이 더 투명해졌고 잘 돌아가더라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시민공동체를 보유한 선진국이자 문명국이라는 점이다. 영화 <서울의 봄>이 회자되고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노벨상을 수상한, 문명이 폭발한 바로 그해에 군대를 동원한 내란은 어차피 실패할 운명이었다. 그러니 한국은 윤석열을 탄핵하고 내란 잔존 세력을 청산하고 나면 더 견고한 민주사회로 나아갈 잠재력이 풍부하다. 민주주의 규칙과 시민의 일상은 여전히 견고하다. 의심을 통해 폭동의 위험을 예방할 필요는 있겠으나 두려움은 극복해야 한다. 아직 한국은 내전에 진입하지 않았다.

 

 

김종대 / 전 정의당 의원

(2025.3.14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