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의 붓칼
김삼웅 선생이 생애 처음으로 소설책을 펴냈다. 바로 <네 칼이 센가, 내 칼이 센가>이다. 선생은 평전작가이며 독립기념관장을 지냈다. 소설 한 편 쓰는 것은 오래된 소망이었다. 소설 주인공은 단재 신채호이다. 어떤 허구도 경계하며 이미 <신채호 평전>을 출간했지만 다시 상상의 날개를 펼쳐서 단재에게 날아갔다. 김삼웅은 단재를 늦게 알아서 죄송하고, 그래도 알게 되어 행복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신채호는 지식인과 언론인의 전범이고, 학자의 전형이었다. 양명학과 노장사상까지 사설(邪說)이라 내치며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던 유생들이 막상 나라가 망하자 일제의 은사금을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섰다. 저명한 선비들이 공맹의 가르침을 일제에 바치고 일신의 영화를 챙겼다. 무려 700명이 넘었다. 하지만 단재는 엄동에 홀로 푸른 송백이었다. 김삼웅은 신채호의 삶을 이렇게 정리했다. “전근대의 철문을 연 계몽주의자, 치열한 항일구국 언론인, 담대한 애국문사, 주체적 민족주의자, 전위적인 독립운동가, 근대사학의 개척자, 국제주의 아나키스트.”
신채호는 중국에서 망국노(亡國奴)로 살아야 했지만 얼어 죽어도 곁불은 쬐지 않았다. 독립운동 단체의 항일 선언문은 신채호가 도맡아 작성했다. 또한 항일투쟁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잡지들을 창간했다. 그중에 ‘하늘 북’을 뜻하는 ‘천고(天鼓)’의 창간사는 모두에게 천둥이었다. “천고여, 천고여,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이 땅에 가득 찬) 더러움과 비린내를 씻어다오. 혼이 되고 귀신이 되어 적의 운명이 다하도록 저주해다오. 천고여, 칼이 되고 총이 되어 왜적의 기운을 쓸어버려다오.”
가난과 병마에 시달렸지만 붓만 잡으면 온몸에 힘이 솟았다. 감옥에 갇혔어도 한 치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옥중에서 오랜 벗 홍명희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형에게 한마디 말을 올리려니 이 붓이 뜁니다. 그러나 억지로 참습니다. 참자니 가슴이 아픕니다마는 말하려니 뼈가 저립니다. 그래서 아픈 가슴을 움키어 쥐고 운명이 정한 길로 갑니다.” 훼절하면 살 수 있었음에도 죽음 속으로 들어갔다.
“선생은 칼을 들고 왔다. 날이 번쩍이는 청룡도가 아니라 날 선 붓칼(筆刀)이었다. 천년 풍상에도 조금도 녹슬지 않고 백년 궁핍에도 날카로운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칼이었다. 꺾이지도 휘어지지도 않았다. 도저한 붓은 사필(史筆)이 되고, 준열한 사론(史論)은 민족사학 또는 근대사학의 지표가 되었다.”(<네 칼이 센가, 내 칼이 센가>)
김삼웅은 단재의 붓칼을 얻고 싶었다. 그래서 아첨과 곡언으로 돈과 감투를 얻는 학기(學妓)와 관기(官妓)들을 찌르고 싶었다. 해방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친일매국노의 후신들이 득세했다. 이승만 정권에서는 ‘이승만 국부론’, 박정희 때는 ‘유신찬양론’, 전두환 때는 ‘광주폭도론’, 이명박 때는 ‘4대강 예찬론’, 박근혜 때는 ‘100개의 형광등론’, 윤석열에 이르러서는 ‘자유예찬론’을 떠받들며 권력에 기생했다. 특히 미망에 빠진 권력중독자 윤석열 주변에는 뉴라이트 등 형이하학적 잡배들이 우글거렸다. 윤석열은 이승만의 아집, 박정희의 독선, 전두환의 폭력성, 이명박의 교활성, 박근혜의 무지의 유전자가 박힌 희대의 괴물이었다. ‘장님 무사’ 윤석열의 칼춤에 박수를 치고 추임새를 넣는 무리를 붓칼로 내려치고 싶었다.
김삼웅은 엄혹한 시절 신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요즘 잘 걷지 못한다. 한 달 전쯤 선생을 뵈었다. 지팡이를 짚고 나타난 선생은 수척했지만 눈만은 맑았다. “다리는 불편해도 정신은 온전합니다.” 사관의 자신감이 도도했다. 선생의 집은 수만 권의 책과 사료들로 벽과 방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수집한 책과 사료는 역사의 증인이고 증언들이다. 스스로를 글감옥에 가두고 50여권의 평전을 썼다. 그렇게 근현대사 인물들을 재탄생시켰다. 고독한 작업이다. 멀리서 보면 성스러울 정도이다.
팔순이 넘었어도 쉴 수가 없다. 인생을 관조하기에는 현실이 척박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열정이 남아있다. 그는 노자의 ‘천도론’에서 역사의 존엄을 확인한다. ‘하늘의 그물은 촘촘하지 못하지만 결코 놓치지 않는다(天網恢恢 疎而不失)’는 가르침이다. 김삼웅은 시퍼렇게 살아있다. 역사와 민심을 우습게 여기는 자들을 글로 다스리는 필주(筆誅)를 계속하고 있다. 붓칼로 친일매국노와 독재자들, 그리고 반민주 세력들을 처단하고 있다. 어느덧 신채호를 닮았다.
김택근 / 시인
(2025.2.26 경향신문)
말과 풍경
< 1 > 말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고,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했다. 그 사람의 언어가 곧 그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유명한 경구들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는 대선을 앞둔 2016년 7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막말을 일삼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겨냥해 “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격 있게 가자”고 했다. 좋은 정치가 좋은 사회를 만들고, 좋은 정치는 좋은 언어로 발현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정제혁 / 논설위원(2025.3.5 경향신문)
< 2 >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고 잔잔하게 되뇌는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범상한 풍경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노랫말이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법정에서 이 노래가 언급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최종 변론에 나선 장순욱 변호사는 대통령이 헌법을 파괴하는 순간에 헌법 수호를 말함으로써 아름다운 헌법의 말, 헌법의 풍경을 오염시켰음을 지적하며 차분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우리도 하루빨리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첫 단추는, 오염된 헌법의 말들을 원래의 숭고한 의미로 돌려놓는 일이라고. 법 지식을 무기 삼아 사심 가득한 궤변을 늘어놓는 법비(法匪)들과는 차원이 다른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변론의 언어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2025.3.5 경향신문)
‘아무 일도 없었다’라고 비상계엄에 실패한 윤석열 대통령이 말했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달그림자’라는 이야기도 들고나왔다. 부처님도 울고 갈 무념무상의 주장이다. 내란의 이유를 ‘대국민 호소’라고도 한다. 국민은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충격을 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무 일도 없었다니, 세계적인 망신은 물론 경제위기, 민주주의 후퇴, 국민 간 극단적인 대립은 어떻게 해소해갈지 두려운 지경이 아닌가.
통치자와 그를 옹위했던 세력들은 서울대, 검찰, 국회의원, 경찰 수뇌부, 국군 장성 등 소위 최고위 엘리트들이다. 이들이 과연 내 주위의 평범한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사람들인가 묻고 싶다. 암기력 좋은 머리와 권모술수, 집단이기주의의 권력 지향자들에게 학식은 독약이 아니었을까. 세상을 살다 보면 유식한 권위주의자의 말보다 저잣거리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삶의 진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김지연 / 사진작가(2025.3.7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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