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송담(松潭) 2021. 6. 15. 15:14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우리 라코타 족은 날마다 태양에게 인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얼굴이 드러나 있든 구름에 가려져 있든 태양은 세상 만물에 빛을 가져다 주는 감사한 존재였다. 일찍 일어나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 인디안들의 습관이자 전통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침묵으로 서서 태양을 맞이했다. 무릎을 꿇거나, 기도를 하거나, 손을 올려 합장하지도 않았다. 다만 모두의 가슴속에서 태양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야영장을 옮길 때를 제외하고는 부족 전체가 모여 아침 의식을 거행하지도 않았다.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태양을 맞이하는 경건한 시간을 가질 뿐이었다. 홀로 있을 때도 라코타 족 사람들은 그 경건한 침묵의 순간을 결코 잊지 않았다.

 

 

생애 전체를 통틀어 라코타 족은 태양이 건강과 모든 생명체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햇빛은 언제나 환영을 받았다. 봄에는 다정한 햇살을 받아 새로운 싹이 움트고, 여름에는 그 열기가 피부를 치료해 주고 들소 고기를 말려 주고 음식을 저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겨울이 되면 라코타 족 사람들은 강에서 수영할 때처럼 옷을 다 벗고 햇빛으로 몸을 씻었다. 생명을 주는 이 빛들이 없다면 세상 만물은 죽음을 맞이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라코타 족 인디언들은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위대한 정령의 빛을 전하는 존재로 태양을 맞이했다.

 

태양을 향해 서서 라코타 족 사람들은 순수한 아침 공기를 가슴 가득 들이마시곤 했다. 맨발로 대지를 딛고 서서 의식적으로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태양에 덥혀지기 전에 공기는 훨씬 더 신선하고 상쾌했다. 아침은 몸의 에너지와 신경을 일깨우는 유일한 시간이며, 신선한 아침 공기는 감각을 깨우는 유일한 자극제였다. 그 어떤 약초, 물, 풍성한 음식도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침 공기는 식욕을 돋우고 몸 속의 피를 건강하게 순환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었다.

 

라코타 족 인디언들은 공기만이 아니라 바람 역시 좋아했다. 바람은 다정한 힘, 위대한 정령의 메시지를 전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라코타 족의 세계에서는 어떤 것도 쓸모없거나 무의미한 것이 없었다. 거대한 돌개바람도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바쁘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그 바람이 좋은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 누이동생 중 하나는 이름이 왐니옴니, 곧 돌개바람이었다. 이따금 돌개바람이 불어 들소 웅덩이에서 흙먼지를 잔뜩 끌어당겨 하늘을 온통 까맣게 뒤덮곤 했다. 하지만 라코타족 사람들은 그것을 바람이 대기를 청소하는 과정이라고 말했으며, 며칠이 지나면 하늘이 전보다 더 맑고 투명해졌다.

 

 

 

우리 라코타 족 인디언은 대지를 사랑했으며, 대지 위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 애착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더 깊어지곤 했다. 늙은 사람들은 말 그대로 흙을 사랑했다. 그들은 땅 위에 앉거나 땅에 기대곤 했다. 어머니의 힘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느낌으로.

 

대지에 맨살이 닿는 것은 좋은 일이다. 늙은 라코타족 사람들은 모카신을 벗고 맨발로 신성한 땅 위를 걷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는 천막을 흙 위에 세웠으며, 제단 역시 흙으로 만들었다. 하늘을 나는 새들도 대지 위에 내려와 날개를 쉬듯이, 대지는 모든 산 것들의 최종적인 휴식처다. 흙은 부드럽고, 힘이 있으며, 정화의 힘과 치료의 힘을 갖고 있다.

 

늙은 인디언들은 의자에 앉기를 거부했다. 흙 위에 그대로 앉았다. 의자에 앉으면 생명을 주는 대지의 힘으로부터 그만큼 멀어지기 때문이었다. 땅 위에 앉거나 눕는 일이 인디언에게는 더 깊이 생각하고, 더 깊이 느끼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신비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으며, 자기 주위의 다른 생명들에게 더 가까운 혈족임을 느낄 수 있었다.

 

위대한 정령 와칸 탕카가 이 세상의 모든 산 것들에게 생명의 힘을 불어넣었다. 평원에 핀 꽃. 그곳에 불어가는 바람, 바위와 나무와 새, 들짐승, 이 모두가 똑같은 생명의 힘을 나눠 갖고 있다. 그리고 똑같은 힘이 최초의 인간에게도 숨을 불어넣었다. 우리는 그것을 위대한 신비라 불렀다.

 

류시화 /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