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당신은 아는가

송담(松潭) 2021. 6. 8. 05:39

당신은 아는가

 

 

양쪽에서 산줄기를 자르고 그 부분을 평지로 만드는 힘겨운 일을 해낸 것은 바로 조선노무자 1천여 명이었다. 그들은 흙을 파내고, 바위를 깨내고, 그것을 밀차나 등짐으로 죽도록 운반하면서 땀을 흘린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바위에 깔려 죽고, 흙더미에 파묻혀 죽고, 도망가다 잡혀와 맞아 죽고, 과로로 병들어 죽고 해서 그 수가 60명을 넘었다.

 

그들은 총을 든 군인들의 감시 아래 조별로 시멘트를 져나르고, 모래를 져나르고, 자갈을 져나드고, 물을 져나르고, 시멘트와 모래·자갈을 버무리고, 모두가 숨돌릴 겨를 없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새끼야, 빨리빨리 해!"

"야 이새끼야, 잡담 마라!"

 

징용을 끌려올 때 18원에서 20원의 임금이면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라고 다들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첫 달을 살아보고야 그들은 또 속임수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말이 좋아 월급을 주는 것이었지 그렇듯 일방적으로 계산을 해버리고, 따지지도 항의하지도 못하게 하니 그야말로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이고 철저하게 노동을 착취하는 노예부리기 바로 그것이었다.

 

6월의 해가 붉은 노을을 남기고 사라져도 그들의 노동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노무자들의 하루 노동시간은 아침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동안이었던 것이다. 그 시간은 계절에 따라 앞뒤로 조정했을 뿐 하루 12시간 노동은 철칙이었다.

 

땡땡땡땡땡땡….

레일 토막 두들기는 소리가 방정맞다 싶게 빠르게 울리고 있었다.

"아이고 살았다."

"아이고메 죽겼다."

"아이고 할배요.

노무자들이 그 종소리에 반색을 하고 한숨을 토하고 했다. 이제 쉴 수가 있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소리도 십장을 피해 숨죽여 해야 했다. 노무자들은 조별로 막사로 놀아가기 시작했다. 넉 줄로 맞춰선 행군대열이었고, 십장들이 구령을 붙이고 있었다. 완전히 군대식이었다. 인원파악을 쉽게 하고 이탈자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십장이 있는데도 무장 군인들은 실탄이 장전된 총을 들고 여기저기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지시마 열도라고도 하고 쿠릴 제도라고 하는 이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포장 친 자동차에 실려 이 산골로 왔던 것이다. 그리고는 이곳을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이었다. 그저 십장이나 식당여자들이 한마디씩 홀리는 것으로 이곳이 여러 개의 섬들이 잇대어 있는 것 중에서 하나라는 것 정도밖에 몰랐다. 집에 편지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일부러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게 하는 것 같았다.

 

비행장의 활주로공사는 완전히 끝났고, 격납고 내부공사도 완료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활주로와 격납고를 연결하는 짧고 좁은 길들뿐이었다. 그것도 지반다지기는 이미 끝냈고, 콘크리트만 덮으면 되는 것이었다. 계약기간까지는 아직도 20여 일이나 남아 있었다. 콘크리트 작업을 아무리 굼벵이걸음으로 한다 해도 사흘이면 뒤집어쓸 일이었다. 그러면 보름 이상을 빨리 집에 갈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힘든 일을 하면서도 곧 춤이라도 출 것처럼 기분이 달떠있었다.

 

“코쟁이들 비행기가 이리 자주 뜨면 배가 못 떠나는 것 아닌가?”

"그기 그리되나?"

"두말허먼 잔소리 아니여?”

"잘난 척들 하지 말어. 비행기 폭격 피해 배가 밤에만 불 다 끄고 다닌다는 말 든지도 못했어?"

"근디 말이여, 그런다 치드라도 그리되먼 닷새 걸릴 것 열흘 걸리는 것 아니겠어?"

"여러 말 말어, 어쨌거나 우리는 이제 집에 가는 거야.”

“하모, 가는 기제, 마누래 궁뎅이가 눈앞에 선하구마.”

노무자들은 어두운 방공호 안에서 규칙위반을 해가며 여기저기서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런데 방공호 밖에는 군인들 열댓 명씩이 양쪽으로 도열해 있었다.

"준비이, 투척!" 장교의 명령이 떨어지자 방공호 입구를 막고 있던 위장문이 치워지며 군인들이 일제히 방공호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기관총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방공호 속에서 수류탄이 연속으로 터지고, 기관총탄은 쉴새없이 방공호를 항해 날아가고 있었다. 수류탄들의 폭음에 묻혀버린 것인지 어쩐지 방공호 속에서는 별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관총은 계속 발사되고, 수류탄을 던졌던 군인들은 돌덩이를 부지런히 옮겨오고 있었다. 방공호 입구에서 무엇인가가 꾸역꾸역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시뻘건 피였다. 기관총은 30분 이상 난사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피는 도랑물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관총 난사가 끝나자 군인들은 신속하게 돌덩이들을 방공호 입구에다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다른 군인들 한 패가 돌이 한 겹씩 쌓일 때마다 반죽된 시멘트를 퍼다 부었다.

 

그곳에 징용으로 끌려온 1천여 명은 결국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지시마 열도 여러 섬에서는 그런 식으로 이미 4천여 명이 죽어갔던 것이다.

 

조정래 / ‘아리랑 12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