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조정래 / ‘아리랑 10권’ 중에서

송담(松潭) 2021. 6. 2. 20:36

조정래 / ‘아리랑 10권’ 중에서

 

< 1 >

 

 

낙엽들이 구르는 10월의 싸늘함 속에 서럽도록 맑고 밝은 달빛이 만주벌판을 끝 간데 없이 비추고 있었다. 밤이 깊어 정적도 깊고, 벌판이 너무 아득하게 넓어 달빛도 까마득히 펼쳐져 있었다. 이어지다 꿇기고 다시 이어지는 낙엽 구르는 소리가 슬픈 흐느낌처럼 더욱 사무치고, 잎들을 다 떨군 채 가지 앙상하게 줄지어 선 방풍림들의 모습이 더욱 쓸쓸하고 외로웠다.

 

송가원은 그 달빛 속에서 가슴을 온통 서러움으로 적시고 있었다. 벌판에 가득한 달빛을 쓸어낼 수가 없듯이 가슴을 가득 채운 서러움도 몰아낼 길이 없었다. 아버지를 잃은 것이 이다지도 깊고 진한 서러움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고향 선산에 모시지 못하고 만주벌판에 뿌린 탓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아버지와 정을 나눈 세월이 너무나도 짧아서 그런지도 몰랐다.

 

송가원의 옆에는 옥녀가 붙박인 듯 서 있었다. 옥녀는 흐드러지면서도 한스럽게 밝은 달빛을 바라보며 애간장 녹아내리는 서럽디 서러운 가락으로 속소리를 뽑아대고 있었다. 이 막막하고 허허로운 타국땅에 뿌려진 혼백의 극락왕생을 비는 것이었다. 그분이 송가원의 부친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가슴 찢어지는 서러움과 아픔이 못 견디게 괴로운 것은 다름이 없으리라 싶었다. 평생을 나라 찾는데 바치다가 끝내는 옥사하고 뼈마저 타국땅에 뿌려지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만 억울하고 분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뼈마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송가원의 부친은 더 기막히고 한스러운 죽음이었다. 이런 세상을 알게 되있으니 만주에는 백번 잘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2 >

 

 

"도대체 민생단투쟁이라는 게 뭔가?"

학습이 끝나고 나서 노병갑은 홍완섭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래, 자네도 지휘간부로서 알아둬야 할 일이지. 그러니까 말야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만주국이 세워지기 직전인 32년 2월에 조선에서 용정으로 건너온 친일파 김성호가 왜놈들의 사주를 받아 <경성매일신보> 부사장 박선윤, 광명회의 정사빈 등과 연합해서 민생단이란 것을 조직했네. 그 단체는 겉으로는 조선인들에게 간도 자치를 내세웠지. 그건 왜놈들이 만주에 사는 조선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주사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주장과 일치하는 거지. 그런데 속에 감춰진 목적은 북간도에서 공산주의운동을 교란시키고 파괴하자는 것이었지. 다시 말하면 민생단은 대규모 밀정 스파이단체였던 거네, 민생단원들은 백색구역(일제 통치지역)의 친공산권은 말할 것도 없고 적색구역(유격근거지)에까지 자원유격대원으로 가장해 잠입·침투해서 간도 자치며 생활보장, 조선인 우대 등을 교사하며 내부분열 공작을 획책한 거네. 그러기를 5개월쯤 하다가 민생단은 해산됐지. 그런데 문제는 그놈들의 암약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유격근거지에서는 조선사람이면 일단 민생단분자로 의심받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네.”

 

"허, 민생단원들이 조선놈들이기 때문에 그런단 말인가?"

"그렇지."

그런 민생단이 다섯 달 만에 해산됐으면 그 조사도 길어야 1년을 잡고, 작년 7월에는 끝났어야지 어째서 금년 3월까지 이 야단이란 말인가?"

노병갑은 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글쎄, 그게 참 복잡하고 심각한 문젤세. 한 사람이 의심을 받아 고문을 당하면 그 사람이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와 가까운 몇 사람 이름을 대게 되네. 그 몇 사람이 또 고문을 당해 몇 사람씩을 대게 되고, 그러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면서 희생자들은 급중하고, 중국인 당원들의 의심은 점점 더 증폭되고 말야. 거기다가 조선인 분파주의자들이 가세하고 있어서 사태는 더 악화일로에있네."

홍완섭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조선인 분파주의자들이란 뭔가?"

“음, 자넨 잘 모르겠군. 그러니까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서너 개의 파벌이 있었네. 그 사람들이 만주에서도 제각기 활동을 하다가 중국공산당의 정책에 따라 모두 중국공산당원이 됐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중국공산당원이 되고서도 지난날의 파벌의식을 버리지않고 젊은 사람들을 상대로 회유하고 협박해 가며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다가 말을 안 들으면 민생단으로 모함을 해버리는 거야”

 

"이런 놈의 일이 있나. 헌데 소문으로는 지난 1년 동안에 죽어간 조선사람들이 300명을 넘는다는데 사실인가?"

"자네 생각으로는 그중에서 몇 명이나 진짜 민생단이라고 생각하나?“

 

 

< 3 >

 

 

"왜놈들이 국경을 침범할 위험은 있는 건가?" 조강섭이 나직하게 물었다.

"기회만 있으면 그럴 위험이 다분하다고 봐야지." 윤철훈의 지체없는 대꾸였다.

"참, 왜놈들이 그리 힘이 센가?"

 

"글쎄, 힘이야 상대적인 것 아닌가. 중국은 내전상태로 분열돼 있고, 쏘련은 내전으로 힘을 소모했고, 그러니 군대조직으로 일치단결된 왜놈들의 힘이 강해질 수밖에. 거기다 만주까지 집어삼켜 온갖 자원을 약탈하고 있으니 국력 군사력은 점점 강해지고."

"만주에서 중국공산당 세력의 항쟁이 치열하다는데 효과는 얼마나 있나?"

 

“음, 표면으론 중국공산당이지만 실제로는 우리 조선사람들과 중국사람들의 연합군댄데, 일본이 자랑하는 무적의 관동군과 본격적인 대적을 시작했다는 게 아주 중대한 일이네. 그 전쟁의 결과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당장 그 효과를 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쏘련일세. 관동군들이 그들과 싸우느라고 쏘련 쪽에 총부리를 들이델 겨를이 없으니까."

“어부지리로군, 그나저나 조선사람들이 또 많이 죽어가게 생겼군”

“어쩌겠나. 그게 운명인데"

 

 

< 4 >

 

달빛 속의 진혼곡

 

 

“지도 싸울랑마요."

"그게 장난이 아니오. 죽고 사는 문제요."

"그것이야 지도 아능마요."

"옥비는 필녀 아주머니하고는 달라요.”

"아니구만요. 총 못 쏘는 것만 지가 그 아짐씨보담 딸리제 나이도 훨썩 젊고, 기운도 훨씩 더 씨구만이라."

"그보다도 살아온 게 다르잖소. 옥비야 고생을 해본 몸이 아닌데"

"아이고메 선상님, 그런 말씸 마시게라. 고상으로 치자먼 지가 둘찌 가라먼 서럽게 많이 혔구만요. 나이 일곱 살에 조실부모허고 소리 팔자 타고난 것이 죄가 되야 사당패헌티 팔려가서 오빠허고 생이별허고, 열네다섯이 될 때꺼정 사방팔방으로 끌려댕김서 매도맞고 밥도 굶고 한데 잠도 자고, 고상고상 시상에 있는 고상언 다 겪어내고, 소리 선상님 찾어 도망질혀 갖고도 소리 배운 값 낼 돈이 없어 정잿일 농삿일 지가 다 맡어서 해냈는디, 상머심일이 따로 없었구만이라. 선상님언 지가 비단옷 입고 술자리서 소리허는 것만 보시고 호의호식헌 줄로만 아시는 모냥인디, 그런 옷호사 헌 것언 사오 년이 다 안 되는구만이라. 그러고 오빠허고 지가 에랬을 적보톰 허고 허고 또 헌 맹세가 왜놈덜헌티 엄니 아부지 죽인 웬수럴 갚자 헌 것이었구만이라. 봉밭에 가서 뽕도 따고 임도 따드라고 만주에 가서 임도 뫼시고 부모님 웬수도 갚게 되었다고, 만주 온 것이 골백분 잘헌 것이라고 생각허고 있는디, 가라니 워디로 가라는 말씀이신게라. 그리 갈라고 혔음사 만주 걸음얼 허덜 안했을 것이구만이라."

옥녀는 그야말로 판소리 사설 엮듯이 줄줄이 막힘이 없었다.

 

“그런 고생을 한 줄은 몰랐소, 허나 총 들고 싸우는 일은 그런 고생하고는 또 다르오.”

"글먼 지도 선상님맨치로 총얼 안 들겄구만요."

"무슨 소리요?"

"선상님이 부상병덜 치료럴 허시대끼 지넌 쌈허고 심 빠진 독립군덜헌티 소리럴 히주겄다 그런 말이구만이라. 글먼 독립군덜이 흥나고 심 채래서 더 잘 싸우게 되고, 얼매나 좋겼능게라."

"허 차암”

"요새 젊은 사람들은 소리가 뭔지를 잘 모르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소."

“예에, 아는구만요. 지도 젊은 사람덜이 좋아허는 신식노래 다 부를지 아는구만요. 불러보라먼 당장 부를 수도 있구만이라."

“죽는 것도 무섭지 않소?"

"선상님도 허시는디요."

"할 수 없소, 뜻대로 하시오."

"고맙구만이라우, 고맙구만이라."

 

송가원은 담배를 피위물었다. 달빛이 전에 없이 통곡하고 싶도록 서럽고 사무치는 것은 아버지를 이 낯설고 막막한 대지에 뿌렸기 때문이었다. 그 허망함과 기막힘은 영원히 가셔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혼백이 저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이 넓고 넓은 벌판을 언제까지고 떠돌아다닐 것만 같기도 했다.

“옥비, 신식노래를 부르는 대신 혼을 달래는, 거 뭐라고 해야하나, 무당들이 저승길을 닦는다는 식으로 뭐, 그런 소리가 없소?"

"예에, 진혼허는 소리가 있구만요."

"맞소, 진혼곡, 그걸 한번 불러보지 않겠소, 아버님을 위해서."

"근디 밤에 소리럴 히도 괜찮헐게라?"

“이 허허벌판에서 누가 뭐라겠소. 맘놓고 불러보시오.”

 

옥녀는 콧마루가 찡 울리는 것을 느꼈다. 역시 자식의 마음이란 속일 수 없는 것이라 싶었다. 봉분을 짓지 못하고 뼛가루로 뿌린 것이 얼마나 가슴에 맺혀 있으면 노래를 청할 것인가 옥녀는 턱을 끌어당기고 아랫배에 힘을 넣으며 아까 엮어나갔던 가사를 되짚어 더듬었다.

 

왜 왔던고 왜 왔던고 만주벌판에 왜 왔던고

낮설고 물설은 만리타국 만주땅에 어인 일로 왔던고

삼천리라 금수강산 왜놈 발에 짓밟혀서 조선 해는 간곳없이 암흑천지 되었으니

뜻 굳은 남아로서 할 일이 그 무언고

빼앗긴 나라 되찾는 것 그것밖에 더 있는가

암흑천지에 불밝힐 일 그것밖에 더 있는가

옳소이다 옳소이다

그 생각이 옳소이다

그 길을 아니 가면 어찌 조선남아리까, 어찌 조선남아리까

그러허나 예로부터 옳은 길은 가시밭길

처자식도 생이별에

둘도 아닌 목숨조차 내놓아야 하는 길

그 길을 택한 남아 몇몇이나 되었던가

하나뿐인 목숨을 초로같이 여기고서

의기 푸른 조선남아들 만주땅에 진을 치니

장하도다 장하도다

하늘이 칭송한다

설한풍 몰아치는 허허벌판 만주땅에

풍찬노숙 뼈깎으며 왜놈들과 싸우기 그 몇몇 해이던고

1년이 10년 되고 10년이 20년 되어

고향땅이 그리워라 처자식이 목메어라

그래도 굽히지 않은 뜻 일편단심 구국이라

나라 찾아 깃발 날려 금의환향하렸더니

에고오 어인 일로 갇힌 몸 되었는고

에고오 어찌타 옥사가 웬말인고

어화 원통해라

아이고 절통해라

이대로는 못가겠다 이대로는 못 가겠다

원동하고 절통해서 이대로는 못 가겠다

 

애간장 녹아내리게 하는 슬프고 처연한 가락은 절정으로 치달아오르며 달빛 푸르른 벌판으로 퍼져나가고, 난데없는 소리에 이끌려 마을사람들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혼백으로도 끝끝내 싸워 이길 터이니 나를 만주땅에 뿌리거라

고결하신 그 뜻에 산천초목이 떨고

휘영청 밝은 저 달도 낙루하는데

어찌타 뒤따르는 자들이 그 뜻 모르오리까

무릎 꿇고 머리 조아려 하늘에 맹세하노니

다 못 이루신 뜻 정녕코 이루오리다

남기고 가신 한 기필코 풀겠소이다

굳게굳게 맹세하고 뒤따르오니

어화 님이시여, 님이시여

원통함을 푸시고

절통함도 푸시고

이 거친 만주벌판 떠돌지 마시고

춥고 어두운 구만리장천을 떠돌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시는 얼굴로

백화난만한 극락으로

상춘화창한 극락으로

왕생하오시라

극락왕생하오시라

비웁나니 비웁나니

극락왕생하오시라

 

소리를 마친 옥녀는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달빛에 젖은 벌판 저 멀리를 바라보고 있는 송가원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땅바닥에 엎드리며 두 번씩 절을 하고 있었다. 진혼곡에 맞추어 어느덧 진혼제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 5 >

 

20만 명을 실은 유행열차

 

 

기차가 멈추자 남자들이 시신을 내렸다. 그 뒤를 윤선숙은 큰아들 주환이의 손을 잡고 걸었다. 남자들이 눈을 헤쳐 나뭇가지로 땅을 팠다. 그러나 나뭇가지는 땅에 먹혀들지 않고 튕겨졌다. 땅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연장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시신이 언 땅 위에 놓여졌다.

"선생님하고 아드님이 먼저 눈을 한 줌씩 놓으세요" 김두만이 말했다.

윤선숙은 아들과 함께 눈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주환아, 할머니 저세상으로 가시게 엄마 따라서 해."

윤선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두 손으로 눈을 폈다. 어린 주환이도 눈물 글썽한 눈으로 어머니를 따라서 했다. 윤선숙은 눈을 시신 위에 올려놓았다. 주환이도 그 옆에 눈을 놓았다. 시신 위에 놓인 크고 작은 두 개의 눈덩이는 마치 흰 꽃송이 같았다.

"됐습니다, 일어나세요." 김두만의 말에 따라 윤선숙은 아들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남자들은 어기차게 눈을 모아다가 시신을 덮기 시작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화물차 저 화물차에서 눈장례를 치렀다. 아파서 죽은 것이 아니라 굶어죽었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얼어죽었다는 사람도 생겨났다.

 

유선숙은 그 장례들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많은 조선사람들이 또 다른 열차에서도 죽어가고 있을까를 생각하며 치를 떨었다. 이 열차에 탄 사람들이 1,600여 명이고, 연해주의 조선사람들은 모두 20여만 명이었다. 그 사람들은 150여 개의 열차에 실려 이렇듯 죽어가고 있을 거였다. 그 수가 얼마일 것인지 생각만으로도 끔찍스러웠다.

 

김두만의 아버지가 앓다가 끝내 눈을 감았다.

“자식들.. 자식들 자알 길러...., 나라 찾으면 나, 나를 고, 고향에.......”

김두만의 손을 움켜잡고 노인이 남긴 유언이었다.

김두만은 눈장례를 치르며 남자답지 않게 통곡을 했다.

 

부친의 유언을 들어드리지 못하게 되어 그러는 거라고 윤선숙은 생각했다. 그러나 뒤늦게 알고 보니 김두만의 서러움은 더 속 깊은 데가 있었다. 그 노인은 일찍이 의병투쟁에 나섰다가 쫓겨 만주를 거쳐 연해주에서 살게 된 것이라고 했다. 늘 나라 찾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했고, 이번에도 차라리 혼자 조선으로 가겠다며 밥을 굶기도 했다는 것이다.

 

윤선숙은 작은아들을 큰아들에게 업히고 자신은 기를 써서 짐을 남김없이 다 짊어졌다. 그 짐들은 아이들의 생명을 지킬 무기였다. 유선숙은 줄을 서면서 며칠이나 걸렸는지를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막연하게 한 달이 넘은 것 같을 뿐 정확하게 날들을 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윤선숙의 가슴에서는 새로운 두려움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 낯선 곳의 바람이며 냄새가 연해주하고는 달랐던 것이다. 저 멀리 눈 덮인 웅장한 산줄기가 뻗쳐져 있었다. 윤선숙은 그 산줄기가 육박해 오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천산산맥 줄기였다.

 

20만 조선사람들의 강제이주는 1937년 8월 21일 소련 인민위원회 및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강제이주 결정사항 제1428-326cc호에 기록된 공식적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조선사람들의 첩자행위 방지, 둘째는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의 농업인력 공급이었다. 그리고 강세이주를 직접 명령한 것은 스탈린이었다.

 

하바로프스크, 당지구위, 조선인들 이주 문제 - 시기적으로 성숙했음.

이주 시기에 조금도 차질이 없도록 철저한 조치를 조속한 시일 내에 강구하기 바람.

 

당중앙위원회 서기스탈린

19379111740

 

이것은 스탈린이 보낸 암호전보였다.

그 명령에 따라 연해주 일대의 조선사람 20여만 명은 9월 중순에서부터 11월 말까지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끌려갔다.

 

 

< 6 >

 

 

일본군과 만주군들이 1933년 중반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집단부락이란 한마디로 민간인들의 집단수용소고 감옥이었다. 집단부락은 마을의 크기와 현장의 형편에 따라 그 규모가 50세대·100세대·150세대로 구분되었다. 그런데 대체로 100세대 단위가 많았다.

 

집단부락은 그 구조가 일정했다. 다만 세대 수에 따라 그 크기가 다를 뿐이었다. 집단부락은 정사각형의 높은 토담이나 통나무담으로 에워싸여 있었다. 그 담은 안쪽에 있는 집들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높았다. 토담은 나무가 흔하지 않은 북쪽에서 많이 했고, 통나무담은 나무가 흔한 남쪽에 많았다.

 

그 담의 사방에는 망루와 함께 포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방을 경계함과 동시에 언제든지 포사격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방의 담 중앙에는 문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그러나 세 개는 폐쇄시키고 사용하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 정문에는 초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페쇄되어 있는 세 개의 문은 유사시에 사용할 비상용이었다.

 

담을 따라서 또 하나의 정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호(壕)다. 그 구덩이의 폭은 어른이 두 팔을 벌려 당지 않을 만큼 넓었고, 그 깊이는 어른의 키 두 길이 넘었다. 그러니 거기에 한번 빠졌다하면 그 어떤 장사도 나올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구덩이를 따라 또 다른 설치물이 있었다. 그건 구덩이만으로는 부족해서 또 덧붙인 가시철조망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항일유격대의 공격에 대비한 것이었다.

 

집은 흔히 탄광촌이나 공사장에서 볼 수 있는 일직선의 바라크식이었다. 거기에 칸막이를 해서 10세대나 12세대가 들게 되어 있었다. 그곳에 사는 100세

대 사람들의 일거일동은 사방의 망루에서 내려다보면 손금보다 더 환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망루는 적의 기습을 탐지하는 동시에 부락민들을 감시하는 이중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부락민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상주하는 군인이나 경찰의 인솔 아래 단체로 일을 나갔고, 저녁때는 또 단체로 돌아왔다. 들에서 일을 하면서도 하루종일 감시를 받았으므로 그 어떠한 개인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부락민들은 식량을 3일분씩 배급을 받았다. 그런데 그것마저 밖으로 빼돌리는지 어쩌는지 감시를 당했다. 그 곡식이 빠져나가 유격대에게 전해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이런 집단부락은 항일유격대가 활동하기 시작한 지역에서부터 만들어져 유격대들이 이동하는 곳마다 번져갔다. 그렇게 해마다 불어난 집단부락은 1935년 말까지 4천 개가 넘었고, 동북항일연군이 만주 전역에 걸치다시피 결성되자 집단부락도 급중해서 1936년 말에는 1만 개를 넘어섰다. 그리고 금년에 들어서도 계속 불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일본군은 그렇게 많은 집단부락들을 만들어 차단작전과 고사작전의 효과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곡식을 완전 통제해서 군량미 확보는 물론 재정 안정을 꾀해나갔던 것이다. 집단부락민들은 총부리 아래서 골빠지게 일해 수확이 얼마든 간에 3일분씩 배급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났다. 아무도 그 부당성을 따지거나 항의할 수가 없었다. 잡혀가면 그만 종적을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집단행동을 일으킨 수도 없었다. 담 사방에 설치된 포대가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집단부락들은 모두가 그 속에 갇히게 된 부락민들이 만든 것이었다. 그들은 총 들이댄 강압 속에 노임 한푼 없는 강제노동으로 자신들의 감옥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 7 >

 

 

대원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조선입니다.

이 말은 너무 자극적일 수 있었다. 이광민은, 그 말을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었다. 그 말을 송수익 선생한테서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가슴 벅차고 황송했는지 몰랐다. 그 감동은 언제나 새로운 힘을 용솟음치게 했고, 목메게 했으며,

자세를 흩뜨리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부하들에게도 늘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눈 덮인 산에는 솔바람소리가 가득했다. 이광민은 분대별로 신속하게 자취를 감추고 있는 부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4대 유격전법을 주문 외우듯 하고 있었다.

성동격서(聲東擊西), 피실격허 (避實擊虛), 이정화령(以整化零), 이

령화정(以零化整)...... 소리는 동쪽에서 내고 정작 치기는 서쪽을 치며, 적세가 강한 곳은 피하고 약한 곳을 노려서 치며, 치고 나면 흩어져 종적을 감추고, 필요할 때 다시 모여 세력을 이룬다.

 

이 유격전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적은 수로 많은 적과 싸우기 위해서 그전부터 독립군들이 유격전에서 써오던 전법이었다. 수적으로도 열세고 화력도 열세인 입장에서 그 전법은 최선의 것이었고, 효과도 컸다. 그런데 그 전법을 한마디로 줄이면 신출귀몰이었다. 대원들은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입지도 못하는 형편에 신출귀몰하는 기동성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니 얼마나 힘이 들고 고생스러울지는 더 말할 것이 없었다.

 

조정래 / ‘아리랑 10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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