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 ‘아리랑 11권’ 중에서
< 1 >
조선족에게 쏘련은 도대체 무엇인가. 쏘련은 왜 조선족을 이렇게 핍박하는가. 전 인류적 해방을 외치고 있는 공산주의 모국 쏘련이 왜 이 모양인가. 약소민족의 독립을 지원한다는 쏘련이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그건 다 거짓이고 위장인가? 아니, 강제이주를 시키는 어떤 이유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정당하게 사람 대접을 해야 할 게 아닌가. 왜 할 일은 제대로 안 하고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는가. 제놈들에게 사람을 개 잡듯 죽일 권한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죄인이고 노예라 해도 이렇게 가혹하게 취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니, 짐승도 이렇게는 취급할 수가 없다. 흉악무도한 놈들! 인민해방, 인민혁명, 인민의 천국, 전 인류적 해방, 약소민족의 독립 지원, 새빨간 거짓말! 도둑놈들! 사기꾼 집단!
윤선숙은 걷잡을 수 없는 홍분 속에 눈물을 쏟았다. 소련의 혁명완수를 위해 백군과 일본군을 물리치려고 싸우다가 불구가 된 남편이 총구 앞에서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생각하면 그만 미칠 것만 같았다.
윤선숙은 소련에 대해서 마음을 닫았다. 그전에 가졌던 호의도 기대도 완전히 지웠다. 소련은 이제 중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 2 >
금예는 물동이를 이었다.
놀림당했던 새댁도 물동이를 이었다. 그러자 저고리가 위로 쑥 올라가며 커다란 젖이 다 드러났다. 금예는 쿡 웃음이 터졌다. 밤새 젖이 불어나 커질 대로 커진 두 개의 젖통은 걸음을 옮기게 되면 번갈아가며 멋대로 흔들릴 참이었다.
금예는 간신히 웃음을 참아내며 우물가에서 벗어났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왜 처녀 때는 젖을 가리라고 별나게 단속하고 야단이면서도 일단 시집을 가서 아이만 낳았다 하면 젖을 그리 다 내놓고 다녀도 괜찮은 것인지. 처녀 때는 젖을 그냥 옷으로 가리는 것만이 아니었다. 치맛말기로 꽁꽁 동여매서 젖 모양이 드러나지 않게 해야 했다. 처녀가 젖이 불룩하게 드러나면 큰 흉거리였다. 젖이 큰 처녀들은 어찌나 꽁꽁 동여맸던지 시집가서 애를 낳고는 으레껏 젖몸살을 앓았다.
언젠가 동네 아주머니에게 살짝 물어보았다.
"그야 처녀가 젖이 크먼 보기 숭허고, 신상에 해롭제"
“신상에 해로와라?”
"하먼, 걸을 때마동 방뎅이넌 씰룩쎌룩허제, 젖꺼정 철렁철렁히 보소. 총각놈덜이 눈 뒤집어져 그냥 놔두겼능가?"
“글먼 애 낳으면 어찌 그리 다 내놓고 댕긴다요?"
"그야 임자 있는 몸에 애엄씨꺼정 되야부렀는디 무신 상관이여 애엄씨 젖이야 그것이 아그 밥통이제 어디 처녀 젖허고 같으간디?"
그러나 의문이 속시원하게 풀린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젖이 큰 편이라 맨날 동이고 사는 것이 너무 불평스러웠던 것이다. 가슴을 꽁꽁 동여매면 갑갑하고 불편할 뿐만 아니라 여름에는 온통 땀띠가 극성을 부렸다. 그 고생 때문에도 어서 시집을 가야 했다. 시집가서 아이를 낳은 여자들은 젊거나 나이들었거나 간에 봄부터 가을까지 제멋대로 젖을 내놓고 살았다. 그러니 아침이면 어느 고살에서나 물동이 이고 가는 여자들의 출렁거리는 젖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남자들도 예사로 지나쳤고, 여자들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 금예 앞에 한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고살에서 불거져 나온 것이었다. 그 남자는 물동이를 잡느라고 치켜올려진 금예의 두 팔을 붙들더니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젖가슴을 재빨리 더듬고는 옆 고샅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저런 잡놈으 새끼가 못된 놀부놈 행투 어디서 배와갖고!"
어찌할 틈도 없이 일을 당한 금예는 남자의 뒤에다 대고 소리질렀다. 성질 같아서는 쫓아가 뒷덜미를 잡아채고 싶었지만 머리에는 물동이가 이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하나밖에 없는 물동이를 내동댕이칠 수도 없었다.
< 3 >
에이코의 덫에 걸려 밀애의 정사에 빠지다 보니 졸업반 성적이 나빠지고 말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딴 꿈에 취해 석차순위 따위에는 관심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에이코와 결혼을 하고, 빨간 정문으로 빛나는 동경제국대학 법학부에 진학한다는 황홀한 꿈 앞에서 석차에 급급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박용화는 긴 한숨을 끌며 걸음을 옮겨놓았다. 에이코, 그 방자하고 당돌한 계집에게 희롱당한 것을 생각하면 스스로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색정에 취해 할딱거리는 에이코의 발가벗은 꼴이 떠올랐던 것이다.
한번 길을 트기 시작하자 에이코는 식구들의 눈을 피해 자취방으로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에이코는 성욕이 강한 것만이 아니었다. 성행위를 야하고 요란스럽게 하기를 즐겼다. 병풍식으로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본춘화를 짝 펴놓고 거기에서 하는 대로 하기를 원했다.
"이런 걸 어디서 구했어? 여자가." 처음에 놀라서 물었더니
"일본사람은 조선사람하고 다른 것 몰라요? 여자도 이런 것 보는 건 흉이 아니에요." 에이코의 천연덕스러운 대답이었다.
하기는 일본사람들의 성풍속이 조선하고는 전혀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러려니 넘기고 말았다. 또 춘화도를 보아가며 즐기는 성희에 취해 더 탓할 생각이 없기도 했다.
에이코와 성접촉이 깊어질수록 동경유학의 꿈은 무르익어 가고, 석차를 다투는 대신 입시 대비의 공부를 해나갔다. 그런데 동기방학 직전 어느 날이었다.
“나 이번 방학 시작되면 바로 동경으로 떠나 안 오게 될 거예요.” 에이코가 발가벗은 채 말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버지가 일본의 학원에 다니면서 마지막으로 입시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명령이에요."
“아니, 그거 말고 우리 사인 어떻게 되는 거냐고.”
"어떻게 되긴요. 아쉽지만 이젠 이별을 해야지요" 에이코가 서운한 듯 약간 웃었다.
“이별?" "네에, 이젠 헤어져야 할 때가 왔잖아요." 에이코의 눈자위가 붉어지며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아니, 우리 결혼은, 결혼은 어떻게 하고?" 자신도 모르게 말이 더듬거려졌다.
"네에? 결혼이오?" 에이코가 놀라며 얼굴이 싹 굳어졌다.
"아니, 왜 놀라지?"
"그럼 놀라지 않게 됐어요. 갑자기 결혼은 무슨 결혼이에요? 서로 좋아지냈으면 됐지."
“아니, 결혼하지도 않을 남자하고 그 짓을 1년씩이나 했단 말야?”
"호호호호....... 이제 알았어요. 조선식으로 생각한 모양이군요. 그러지 말아요. 귀찮게. 여긴 조선땅이지만 엄연히 일본이니까 유치하게 조선식 꺼내지 말아요. 조선여자들은 정조라는 신주 단지 모시듯 하며 처녀가 몸 버렸다고 마구 죽잖아요, 그런 멍청한 짓이 세상에 또 어디 있어요. 그까짓 정조라는 게 뭔데 한 번 성관계로 목숨을 끊어요. 그래, 우리 일본여자들한테는 그런 것 없어요, 재미 보는 것은 재미 보는 거고 시집가는 건 시집가는 거예요. 왜 내가 박상하고 관계를 시작했는지 알아요? 내 친구 후미코 있잖아요. 걔가 박상을 보자마자 관계를 갖고 싶어했어요. 걔가 그러니까 슬그머니 질투가 나잖아요. 내가 더 가까운 사인데 빼앗길 수 없는 일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박상을 차지하고 후미코한테 단념하라고 했지요. 이제 알았어요?"
"갈보 같은 년!"
“어머, 왜 욕을 해요? 서로 재미 봤으면 됐지 남자답지 못하게."
“나가, 이 더러운 년아! 당장 나가!"
< 4 >
김장섭은 이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그러나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까 다음번으로 미루어달라고 했던 것은 그동안 무슨 궁리를 해볼 참이었던 것이다. 어떤 수를 써서든 징용에 끌려가고 싶지 않았다. 징용에 끌려가느니 차라리 만주이민단에 끌려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만주로 가는 것은 그래도 처자식들과 헤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식구들과 2년씩이나 헤어져 있는다는 것은 너무 불안스러웠다. 노임을 준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속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토지조사로 빼앗긴 농토는 지금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관청에서는 심사한다는 똑같은 거짓말을 수백 번도 더 했던 것이다. 그리고 간척지를 개간하고 나서 속은 다음부터는 왜놈들의 말이란 전혀 믿지 않게 되었다. 만주이민에 눈끝 한번 돌리지 않았던 것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면 고향땅을 뜨지 말아야 했고, 왜놈들이 선전해 대는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이민 간 사람들이 죄인들처럼 갇혀 살고, 감시받고 농사지으며 온갖 고생들을 다한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었다. 지금 말로는 노임을 18원에서 20원을 준다지만 총부리 들이대고 일 시키며 안 주면 어쩔 것인가, 식구들은 꼼짝없이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떠나는 날로 소작은 떼이고, 자신이 돈을 보내주지 않으면 아내는 혼자 자식들 넷을 데리고 살아갈 방도가 없는 것이었다.
< 5 >
신탁통치설
대한민국의 통치설입니다. 그건 두 나라 대표인 영국의 처칠 수상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종전 후 처리문제 중의 중대사인 아세아와 아프리카 식민지국가들의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의 신탁통치란 무엇입니까! 일본이 패망하면 우리는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하고 연합국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건 우리 민족이 스스로 국가를 세울 능력도 없고, 국가를 운영할 자질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강대국의 일방적인 횡포이며, 처칠과 루스벨트의 무지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재론할 여지도 없이 신탁통치란 우리나라를 또다시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음모
이며, 우리 민족에 대한 모독인 동시에 조선인들의 자존심을 능멸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석 달 전인 지난 2월에 임정의 조소앙 외교부장께서 비판의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족하지 않아 우리는 좌시할 수 없어서 오늘 이렇게 비판대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한편인 줄 알았던 연합국들이 우리 조선을 신탁통치한다니, 이 어인 일입니까. 좋습니다. 너희들이 나라를 빼앗겼으니 나라를 다시 세울 능력도 없고 또 나라를 지탱해 갈 자질도 없다. 그런 뜻인 모양입니다만 그건 천만의 말이올시다. 첫째 알아두어야 할 것은 나라를 팔아먹은 것은 친일파 조정대신놈들이었지 백성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민족의 역사는 자그마치 반만년인 5천 년에 이르고, 그 장구한 세월 동안에 많은 독립된 국가를 세우고 운영해 온 확실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로 알아두어야 할 것은 매국노들이 나라를 팔아먹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장 33년 동안 조선의 백성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왜놈들과 피흘려 싸워오고 있고, 싸우다 죽어간 분들만도 100만 숫자를 넘습니다. 넷째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 민족은 거족적인 3·1운동을 일으키는 것을 계기로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엄연히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세울 능력이 없고 나라를 지탱할 자질이 없는 민족이 그 어느 나라의 경제적 원조도 없이 24년 동안이나 자력으로 망명정부를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 6 >
"광복군 말이시. 광복군이 시방 5천 명만 됐어도 요 일이 달라질수 있을 것이란 말이시. 시기가 안 맞어서 그런 것인디, 왜놈덜이 한 3년만 일찍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만주 동북항일연군 조선병력얼 이짝으로 이동시켜서 광복군얼 맨글었으면 연합국도 우리럴 무시 못헌단 말이시. 그런디 시기가 안 맞어 만주서 수천명이 아깝게 죽어가고 인자 광복군 300여 명이니 강대국덜이 우리럴 무시 안헐 수가 있겄능가 다 사후 약방문이기년 헌디."
방대근이 한숨을 쉬며 눈을 내리감았다. 담배를 든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예, 그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5천 명은 안 되더라도 이삼천 명만 있어도 달라지겠지요. 힘에는 힘밖에 효과를 내는 게 없으니까요. 연합군이 동남아전선에서 우리 병력을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임정을 승인할 수 있고, 정부를 승인한 상태에서는 신탁통치니 뭐니가 나올 수가 없는 일이지요."
< 7 >
“그리고 저는 또 한 가지 걱정이 있어요. 연합국이 전후 처리문제를 논의하는 걸 보면서 일본이 전쟁에서 질 거라는 건 확신하게 되는데, 우리가 해방이 되고 나라를 세우면 그 많은 친일파나 민족 반역자들은 다 어쩌나 하는 걱정이 생기거든요."
"다 죽여야지요!" 거침없이 터져나온 송가원의 목소리는 단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네에 " 민수희는 깜짝 놀라 송가원을 쳐다보았다.
"왜 그리 놀라십니까?" 송가원의 얼굴은 냉정했다.
"그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
"예, 대충 150여만이라고 보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다많은 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 두 배, 300만이라도 다 죽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놈들은 왜놈들과 함께 동족을 살해한 공동살인범들이기 때문이고, 민족 전체를 박해하고 고통 속에 몰아넣은 공동가해자들이기 때문이고, 그놈들이 훼손시킨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그놈들이 짓밟은 민족정의를 바로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후 지금까지 도처에서 죽어간 동포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줄잡아 300만이 훨씬 넘습니다.”
“2년 전인 41년에 임정이 발표한 대한민국건국강령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게 친일파와 민족반역자들에 대한 가차없는 처벌을 첫 번째로 꼽은 것입니다. 그 문제의 처리는 독립투쟁만큼이나 중요합니다.”
< 8 >
방대근은 며칠이 지나 송가원한테서 연락을 받았다. 허국이 위독하다는 것이었다. 윤주협과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허국은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폐결핵 합병중으로 입원한 그는 혼자 외롭게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병원의 넓은 마당에는 눈부신 햇살이 가득했고, 담을 따라 가꾸어진 화단에는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인생무상이제" 방대근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참, 자네 허국이가시 썼던 것 알지?" 윤주협이 무슨 생각이 난 듯 물었다.
"그려, 시 써서 여자덜 꾀고 그랬제."
“인생은 무상하다. 그러나 역사는 치열하다. 식민지의 슬픈 역사 위에 나는 불붙어 타고 싶은 하나의 가랑잎. 이런 시 기억나나? 허국이가 쓴 거야."
"참, 기억력도 좋네."
"단장님한테 연락부터 해야 되지 않겠나?" 윤주협이 한 계단 뒤에 따라오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단장이란 김원봉이었다. 김원봉은 이제 광복군 부사령관이었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오래 입에 붙은 대로 그저 '단장'이었다. 김원봉이 의열단 단장이 된 이후 여러 차례 그 직함이 바뀌었지만, 직함 앞에 ‘부’자가 붙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임정에서는 그동안 배척해 왔던 공산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들을 수용하기로 태도를 바꾸었고, 그 실현은 광복군 개편으로 나타났다. 모든 이념이나 정파의 통합은 김원봉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추진해 왔던 바라 그는 광복군 부사령관의 직책을 흔쾌히 수용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군대인 한국광복군은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들이 각자의 이념을 초월하여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싸우자고 한덩어리로 뭉친 통합체였다.
조정래 / ‘아리랑 11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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