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소설

그 깊은 한

송담(松潭) 2021. 5. 19. 05:33

그 깊은 한

 

 

겨울과 함께 명태철이 오면 어란공장에서는 밤일을 시작했다. 며느리는 온몸에 비린내를 묻혀가지고 밤늦게 돌아오고는 했다. 그러나 밤일 품삯은 보잘것이 없었다.

 

일본사람들치고 생선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지만 어란은 유별나게 좋아했다. 특히 목포에서 나는 명란에 환장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퍼진 소문이었다. 그런데 조선사람으로 목포 명란젓을 제일 많이 사는 사람은 광주의 현 부자라고 했다. 그것을 사교 선물로 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암군수로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영전을 해간다는 소문도 퍼져 있었다. 목포 명란젓을 총독부 관리들에게 부지런히 바친 까닭이라고 했다.

 

"참, 시상이 지랄 겉이 얄굿어진게 알 통통허니 밴 명태국 한분 씨언허니 낋에묵털 못허고 사요 이. 맛난 알언 왜놈덜이 미리 다 빼묵어 불고 장바닥에 나도는 것은 배때기 째진 것이나, 알 안밴 것덜뿐이니 원."

 

그때 갑자기 고암소리와 외침이 터져올랐다.

"빨리 몰아내, 빨리!"

"요런 잡것들 보소, 요거!"

"바까야로!"

"다 잡아딜여, 다!"

일본말과 조선말의 외침이 뒤섞이는 속에 호각소리까지 요란하게 울려댔다. 다른 때와는 달리 순사들 예닐곱 명이 여기저기로 내달으며 행상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그 느닷없는 공격에 행상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순사들의 발길질에 함지며 항아리가 엎어지고 박살이 나고 있었다. 대목댁은 먹다 남은 고구마쪽을 내던지며 함지를 집어들었다. 그 순간 순사의 발길이 함지를 걷어찼다.

대목댁은 함지와 함게 축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대목댁은 날이 어두어져서 가마니로 엮은 들것에 실려 집으로 돌아왔다. 축대 아래로 굴러떨어지면서 허리를 심하게 다쳐 꼼짝을 못했던 것이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열홀이 다 되도록 침을 맞는데도 몸은 전혀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대목댁은 그즈음에 벌써 가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행여나 싶어 의원을 퇴하지 않고 며칠 더 침을 맞았던 것이다. 제발 좀 일어나게 해달라고 신령님한테 간절하게 빌고, 남편한테 애타게 매달리면서. 그런데 의원이 먼저 발을 끊고 말았다. 이렇게 산송장이 되어 시나브로 죽어가야 된다는 것이 대목댁은 기가 막혔다. 차라리 축대에서 떨어졌을 때 죽었어야 했던 것이다. 대목댁은 마음을 공글리기 시작했다.

 

자신은 이제 아무 쓸모가 없었다. 손자를 중학교고 대학이고 공부시키려고 했던 꿈만 깨진 것이 아니었다. 아들에게 너무 큰 짐이 되어 그나마 집안을 망칠 판이었다. 자신의 병수발에 묶여 며느리가 돈벌이를 못 나다니니 손자가 공부를 작파해야 할 것은 너무 빤한 일이었다. 손자를 맹무식꾼을 만들어 전정을 망치는 것은 곧 집안을 망치는 것이었다. 자신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효심이 깊은 아들은 앞으로도 또다른 의원을 부르거나 약을 쓸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벌써 의원비로 나간 돈도 다 빚이었다. 그것도 차마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대목댁은 이런 생각들을 수십 번 되짚은 끝에 마음을 작정했다. 아무래도 성한 몸이 될 가망이 없는 자신이 떠나버리면 집안의 우환이 모두 걷힐 것이었다. 아들이 큰 짐을 덜게 되고, 며느리는 다시 돈벌이를 나서고, 며느리의 벌이에다 자신이 하루 세끼 먹어없애는 돈을 보태면 손자는 그대로 학교에 다닐 수 있을 터였다.

 

이렇게 작심을 하고 나자 대목댁은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스러운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말년이 이처럼 기구하고 각박해질 줄은 예전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왜놈들에게 느닷없이 논밭을 빼앗기기 진까지만 해도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살림이었다. 소작을 내놓지는 못했어도 머슴 하나는 부린 자작농이었으니 모진 흉년이 들지 않으면 죽을 끓이는 일은 없었다. 평작만 되면 집안식구들이 철 따라 옷을 해입을 만큼 살림에는 여유가 있었다. 하늘은 변덕을 부려도 땅은 변덕이 없이 듬직해 평생이 든든했던 것이다.

 

그런데 땅을 빼앗기게 되면서부터 팔자는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당장 배곯는 가난이 닥친 것만이 아니었다. 하늘이었던 남편을 감옥에서 잃어야 했다. 그 기막힘과 절통함을 어금니 사리물며 이겨냈던 것은 남편의 유언을 지켜내기 위해서였다.

 

남편의 유언대로 기어이 땅을 되찾을 일념으로 한스러움을 가슴속 깊이 감추고 아들을 부축했던 것이다. 내 땅에 소작질을 해야 하는 분함을 참지 못하는 아들을 애써 다독거렸던 것도 남편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아들이 3·1만세에 그리도 거세게 나섰던 것도, 그런 아들의 기를 더욱 세워주었던 것도 다 남편의 뜻을 이루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들이 3·1만세에 발 벗고 나선 것은 오히려 남편의 뜻과 멀어지고 말았다. 꼭 왜놈들을 몰아내게 될 줄 알았는데 그 반대로 왜놈들에게 쫓겨 고향을 등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혼자서라도 집을 지킬까 어쩔까 얼마나 망설였는지 몰랐다. 고향을 등지게 되면 땅을 영영 되찾지 못하게 될 것 같았던 것이다. 그리고 남편을 남겨두고 멀리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위험에 처해 쫓기고 있는 아들 앞에서 그런 생각들은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 핏줄이 당기는 힘에 끌려 부라부라 아들을 따라나섰던 것이다.

 

이놈의 말년 팔자가 어째 요리 궂은고...... 아니제, 아니여, 나 팔자가 궂은 것이 아니여, 나라럴 뺏긴 것이 병통이었제.

 

첩첩산중 깎아지른 벼랑이었다. 뛰어내리려고 마음을 작정했으면서도 너무 무서워 뛰어내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누군가가 구름을 타고 오며 손짓하고 있었다. 그 두둥실 구름을 탄 사람은 바로 남편이었다. 말끔하게 하얀 옷을 입은 남편은 연상 웃으면서 어서 뛰어내리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너무 무섭당게라."

"아니시, 나가 받아줄 것잉게 아무 걱정 말드라고."

"못 받으면 어쩔 것이오?"

"그런 걱정이사 말소."

"그냥 구름에 태와줏씨요."

"아니, 그리넌 안 되네, 거그서 뛰어내래야 이 구름얼 탈 수 있게 되능마”

"아이고, 참말로 무서와 그리넌 못허겄소."

"글먼 나 그냥 갈라네."

"아니오, 아니어라, 쬐깨 기둘리씨요."

 

허둥거리다가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몸이 붕 뜨는 것 같았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깊은 저 아래로 몸이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대목댁은 소리를 지르며 잠이 깼다. 참 묘한 꿈이었다. 남편이 그리 말끔한 흰옷 차림으로 웃으며 자신을 어서 오라고 부른 것은 처음 일이었다. 그동안 남편의 꿈을 자주 꾸었지만 언제나 원한에 찬 모습이거나, 감옥에 갇혀 있는 모습이었다. 대목댁은 자신의 마음이 남편에게 전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자신을 꾸짖지 않고 데려가려고 한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엄니, 댕게올라능마요."

박건식이 어머니에게 인사했다.

"그려, 조심허고 잘 댕게와."

대목댁은 언제나처럼 예사롭게 인사를 받았다. 그러나 아들을 쳐다보는 그 눈빛은 깊고 서러웠다.

"할무니, 나 핵교 갔다 올라네."

박건식이가 떠난 한참 뒤에 동화가 책보를 허리에 두르며 말했다.

"그려 내 새끼, 어디 보자"

 

며느리가 빨랫감을 챙겨가지고 집을 나서는 것을 대목댁은 확인했다. 집에는 이제 두 손녀딸만 남아 있었다.

"야덜아, 이 할메가 신 것이 묵고 잡은디 어디 가서 탱자 잠 따오니라” 대목댁은 두 손녀딸에게 일렀다.

"탱자가 안직 덜 익었는디?" 큰 손녀딸의 대꾸였다.

"덜 익었응게 시어 좋제, 동상 딜고 얼렁 가서 따와, 그래야 할메 몸이 낫제, 얼렁 가!" 대목댁은 두 손녀딸을 꾸짖듯 했다.

 

두 손녀딸까지 집을 나가자 집 안에는 대목댁 혼자가 되었다. 나가 인자 당신 옆으로 갈라요. 나럴 구름에 태와줏씨요. 대목댁은 눈을 꼭 감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눈앞에는 어젯밤 꿈에서 본 남편의 모습이 선히 떠올라 있었다.

 

대목댁은 두 팔에 온 힘을 모아 몸을 뒤집었다. 상체는 뒤집어졌는데 하체는 어찌 되었는지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대목댁은 양쪽 팔꿈치로 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대로 기어지지가 않았다. 대목댁은 빨리 기려고 기를 썼다. 양쪽 팔꿈치가 번갈아 놓일 때마다 축 늘어처진 하체가 무겁게 조금씩 끌리고 있었다.

 

대목댁은 안간힘 쓰며 방문턱을 넘었다. 그리고 툇마루 끝에서 그대로 토방으로 굴러떨어졌다. 대목댁의 바로 눈앞에는 댓돌이 박혀 있었다. 대목댁은 두 손으로 댓돌을 붙들었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다음 순간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대목댁의 몸은 토방에 엎어진 채 꼼짝을 하지 않았다. 댓돌을 낭자하게 적신 피가 토방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조정래 / ‘아리랑 8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