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詩, 글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

송담(松潭) 2021. 3. 18. 06:07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

 

 

어릴 적 나는 피아노학원의 최고참 언니를 동경의 눈길로 바라보곤 했다. 초급자용 「바이엘」이나 겨우 띵똥거리던 내게는 「체르니 40」은 거든히 치는 언니가 거의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치럼 보였다. 그 언니가 매일같이 연습하던 곡은 와이먼의 <은파(銀波)>였다. 태권도를 처음 배우면 달마다 바뀌는 허리띠 색으로 실력을 가늠하듯이, 피아노 초보들 사이에서는 "너 <은파> 칠 줄 알아?" 하면서 서로의 실력을, 혹은 각자 자기가 다니는 피아노학원의 선배들을 자랑하곤 했다. 그러니까 제목은 아주 잘 알았지만 '은파'라는 단어의 뜻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 물결, '은파'는 그런 뜻이다. 푸른 여름의 밤바다 위로 밝은 보름달이 고요히 떠오르면 연인들은 그 달빛 아래에 앉아 달이 아름답다고 서로에게 속삭이겠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달이 아름답네요'로 번역했다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를 주고받으면서.

 

달은 우리 인류의 오랜 벗이었다. 농업사회의 기본이 되었던 음력, 정월대보름, 한가윗날 밝은 달 아래 너나없이 손잡고 도는 강강술래, 그리고 수많은 옛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하얀 쪽배를 타고 은하수를 건너 달에서 떡방아를 찧는 토끼,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불개가 먹었다 너무 차가워 뱉은 달, 연오랑과 세오녀가 떠나자 사라졌던 달, 노피곰 도드샤 머리곰 비치오시는 정읍사의 달, 산허리를 가득 메운 메밀밭에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달빛.....

 

달은 우리의 오랜 벗이면서, 자주 이용당하기도 했다. 냉전시대에는 특정 국가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데 쓰였고, 과학 목적의 달탐사시대에는 우주와 태양계라는 대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견본으로 쓰였다. 이제 우리는 또다시 달을 이용하려고 한다. 달을 중간기지로 삼아 화성으로, 그리고 더 먼 우주로 나아가려 한다. 지구에서는 희귀하지만 달에는 지천에 널려 있는 광물을 캐와서 상업적 이익을 얻으려고도 한다. 언젠가 달 광물로 만든 부품이 들어간 휴대전화가 나올지도 모른다.

 

다시 우주인이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길 날이 머지않았다. 이번에는 더 많은 발자국이 더 멀리까지 찍힐 것이다. 그리고 또 새로운 발자국으로 덮일 것이다. 달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속에도 어지러이, 신화에서부터 휴대전화 부품에 이르기까지, 달에 대한 수만 가지의 생각이 싹틀 것이다. 보라.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도 벌써 달 생각 새싹이 쏘옥 고개를 내밀었다.

 

 

 

그믐달

 

사진출처 ; 중앙일보 2019.1.2

 

 

 

초승달은 해를 바짝 뒤쫓느라 초저녁에나 잠시 보였다가 이내 지평선 아래로 가버린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달은 차오르고, 뜨고 지는 시간이 조금씩 늦어진다. 오후에 반달이 보인다면 해와 한참 떨어진 동남쪽이다. 오른손 방향으로 볼록한 상현달이다. 보름이면 서쪽으로 해가 질 무렵에야 동쪽에 달이 떠오른다.

 

보름달은 해가 없는 동안 내내 밤을 지키다 해 뜰 무렵 서쪽으로 진다. 달이 뜨고 지는 시간은 매일 대략 50분씩 늦어진다. 보름에서 며칠이 지나 이제 왼쪽만 볼록한 하현달은 한밤중에야 잠깐 떴다가 낮에 진다. 오전에 서쪽에 뜬 반달이 하현달이다. 며칠이 더 지나 그름달 무렵이 되면, 새벽녘에야 달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고는 곧 해가 올라오니 낮 동안 보이지 않는다.

 

초승달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상현달과 보름달도 꽤나 사랑받는다. 그러나 밤하늘에 하현달이 보이는 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 그믐달은 밤을 꼴딱 샌 사람들, 혹은 한밤중에 일어나 태양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소수의 사람들만 보는 그런 달이다.

 

일제 강점기의 작가 나도향은 「조선 문단」이라는 문예지에 발표한 「그믐달」이라는 수필에서 이렇게 달을 노래한다.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 한등(寒燈)에 정든 임 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한(恨)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

 

내가 한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지는 모르지마는, 내가 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은 한 있는 사람만 보아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보는 것이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 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준다.

 

심채경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중에서

 

 

< 참고 >

 

사진출처 : 네이버 블로그 분홍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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