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람,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입안에서 반복해 발음하다 보면 왠지 아프리카적 낭만이 고여 드는 것 같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내렸습니다. 이동하는 동안 공항 앞에서 손님을 태우려는 낡은 택시들이 제일 먼저 시선을 끌었습니다. '저 택시들이 과연 달릴 수는 있을까.' 30년은 더 돼 보이는 택시는 그야말로 '너덜너덜'했습니다. 차를 오래 타는 것도 미덕이지만 안전이 의심될 지경이었습니다.
해발 2400m의 에티오피아의 수도는 선선했습니다. 이곳 날씨는 출장을 준비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는 덥다'는 걸 진리로 알고 산 지난 세월이 좀 허망했다고나 할까요. 공항 가까운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길 위에서 목격한 현지인들의 남루한 모습과 그 속에 우뚝 서 있는 호텔은 별개의 세상인 양 따로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취재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370km, 주도인 '아와사'에서 95㎞ 떨어진 '훌라'라는 곳입니다. 수도를 벗어나는 데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남쪽으로 항하는 외길에는 중앙선도 명확하지 않았고 신호등도 없었습니다. 오가는 차량과 끼어들 기회를 잡지 못하는 차들이 꼬인 채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거북이 행열의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으로 눈과 코가 매웠습니다. 트럭이며 승용차의 상당수가 공항에서 본 택시 수준이었으니, 이 도시가 매연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도시를 벗어나자 탁 트인 초원이 펼쳐졌습니다. 교차로도 없이 오로지 직진인 왕복 2차선 도로를 하염없이 달렸습니다. 소나 염소 등 가축 떼들이 자기네들의 영역이라는 듯 느릿느릿 도로를 가로지르곤 했습니다. 초원에 풀어 키워서인지 가축들이 걸을 때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날씬했습니다. 공장식 사육으로 살이 오른 우리의 가축들과 비교가 되더군요. 말라서 부실해 보이는 저 가축들이 실은 더 건강하겠구나, 했습니다.
초원을 좌우로 나누는 외길을 따라 시장과 작은 마을이 간간이 나타났습니다. 길을 걷는 이들, 장사를 하는 이들 사이에서 무리 지어 앉은 청년들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특별히 할 게 없어 보이는 이들은 차량을 타고 지나는 우리 이방인들에게 시선을 던졌습니다. 그게 하루 일과처럼 보였습니다. '젊은 날 무료하게 반복하는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낭비일까라고 문득 생각했다가 곧 '당신들처럼 그렇게 여유 없이 사는 것은 인생의 낭비가 아닌가' 하는 그들의 답을 상상합니다.
'아와사'와 취재 지역인 '훌라’의 중간쯤 되는 곳에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빈민가로 여겨지는 마을의 허름하기 짝이 없는 가옥과 북적이는 현지인들을 보며 제대로 된 숙박 시설이 있을까 의심했습니다. 낡은 집들이 듬성해지는 오르막길의 옅은 어둠 속에서 '아레가시로지’라는 간판이 나타났습니다. 로지의 철문이 열리고 대나무를 엮어 만든 아프리카 전통 가옥 여러 동이 우거진 꽃나무 사이로 보였습니다. 침대와 샤워 시설, 화장실 등 호텔급 시설을 갖췄습니다. 에티오피아 깊숙이 신비스럽기까지 한 이런 숙소가 있으리라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로지의 밤은 특별했습니다. 로지를 둘러싼 철조망 너머에서는 밤새 하이에나가 울어 댔습니다. 밤의 적막 속에서 들려오는 울음은 바로 창밖에서 들리는 것처럼 또렷했습니다. "우~에오” “우~워워워” “우~서우~~" 처음에는 하이에나 한 마리의 다양한 울음이라 짐작했습니다. 소리의 방향을 어느 정도 가늠하게 되자 각기 다른 녀석들의 울음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밑도끝도 없이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등장하는 하이에나가 떠올랐습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하이에나는 왜 그리 ‘찌질’하게 그려졌을까. 표범과 비교까지 당하면서 말이지요. 그래서인지 그 울음이 더 구슬프게 다가왔습니다. 담장 너머에서 표범이 울었다면 이런 한가한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테지요.
하이에나의 울음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밤마다 정전이 됐기 때문입니다. 전력이 부족한 지역이라 수시로 불이 나갔습니다. 아침 해가 뜨도록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었습니다. 주변에 다른 불빛이 있을 리 없어 초를 켜 놓지 않으면 전기가 나가는 동시에 암흑이 되었습니다. 바로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요. 시각이 닫히면서 맨 먼저 귀가 열렸습니다. 시각이 다른 감각들에 차례로 자리를 내줬습니다. '쏠쏠함' '두려움' 갈은 추상적인 감정도 손에 만져질 것 갈았고, 맥락 없는 기억들이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시각이 완전히 닫힐 때 돋는 감각들의 이 선명한 느낌은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지금껏 얼마나 많은 빛 속에서 살아왔는지,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감각을 지우고 살았는지를 되돌아봤습니다.
캄캄했던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 훌라로 향했습니다. 한국월드비전의 사업장이 있는 그 지역에서 '지구의 밥상'이라는 기획취재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 나라의 밥상을 들여다보고 세계의 먹는 문제에 대해 얘기해 보자는 기획입니다. 수풀 깊숙이 흩어져 꼭 감춰 놓은 것 같은 가정집을 사업장의 직원은 용케도 찾았습니다.
“살람~” 하고 인사하며 만난 가족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수줍어했습니다. 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구멍이 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옷으로 ‘밥상’의 궁핍을 짐작했습니다. 집과 부엌은 다진 흙 위에 지었습니다. 끼니를 위해 불을 지피면 지푸라기를 엮어 덮은 지붕 전체에서 연기가 새 나왔습니다. 내부에는 새까만 그을음이 두껍게 눌어붙었습니다. 세간살이라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최소한의 삶이었습니다.
해외에서 만나는 궁핍 앞에서 '삶의 만족도'나 '행복지수' 운운하는 것은 위선이라 생각했습니다. 절대적인 가난을 목도하면서 잠시 말을 잊었습니다. 마음은 좋지 않았지만 얼굴에는 미소를 시종 유지했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누군가가 행여 저의 표정에서 동정을 읽어 내고, 그래서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면 안 될 일이지요. 그 누군가가 아이들이라 생각하면 더 끔찍한 일입니다.
저의 복잡한 심사와 무관하게 원주민들의 표정은 참 밝았습니다. 어쩌면 모두 공평하게 가난하다는 게 그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너와 나의 처지를 비교하는 순간에 불행은 싹트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명의 혜택을 크게 받은 자일수록 이들의 전통적인 삶이 미개해 보일 수 있겠지만, 관점을 달리해 보면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이라 할 수 있겠지요. 에티오피 아에서 '가난’에 대한 정의와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의 사흘간은 휴대폰도 안 되고, 인터넷도 전혀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수시로 들여다보던 카카오톡과 페이스북도 전혀 할 수 없었지요. 이 빈틈없는 단절은 오히려 연결의 소중함을 일깨웠습니다. SNS와 인터넷에 심하게 기대어 산 모습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뉴스를 본의 아니게 끊게 되었던 3일이 돌이켜 보면 해방과 평화로움의 시간이었습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휴대폰을 들어 와이파이를 잡고 카톡과 페북을 연결했습니다. 지난 며칠의 ‘평화롭던 고립’을 신속하게 보상받으려는 듯 말이지요. '난 이미 중독'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말았습니다.
강윤중 / ‘뭉클’(출판 : 경향신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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