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共感)이 지닌 힘
지금은 전기와 컴퓨터를 넘어 인공지능이 대세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운전하면서 "아리야, 오늘 날씨 어때?" 하고 날씨를 묻는다든지, "아리야, 이 주변에 가장 싼 주유소는 어디야?" 하고 물으면 곧바로 대답해 주지요. 물론 인공지능은 여기서 더 진화해 표정을 분석해 기분에 맞는 음악을 선정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에는 따뜻한 가슴이 없기 때문입니다. 로봇이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엇일까요? 정답은 바로 "나를 사랑하나요?" 였납니다. 어느 분은 큰 걱정거리가 생겨서 가슴을 치며 "아버지!"라고 했는데, 그 순간 옆에 있던 인공지능이 "여기에 아버지는 안 계십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인공지능이 제아무리 똑똑하고 편리해도 인간을 대신해 사랑하고 공감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밥을 먹어야 생존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랑을 받아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삶이란 끊임없이 사랑받고 또 받은 사랑이 에너지원이 되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을 주고받을 때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받고도 사랑받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 말은 엄마 고슴도치가 아기 고슴도치를 품에 안을 때 서로의 가시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것처럼 공감이 빠진 사랑은 상대방에게 도리어 상처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관계 속에서는 어쩌면 '공감'이 사랑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이 자신의 방식으로 상대방을 위해 주는 것이라면, '공감'은 상대방의 관점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다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공감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책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의 저자인 조우성 소송 전문 변호사는 말합니다. "저마다의 사연과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이 변호사에게 바라는 것은 승소보다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에 귀 기울여 공감해 주는 것”이라고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몸에 때가 끼듯이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마음속 상처의 최고 처방은 바로 '공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상대방의 말에 공감을 잘해 주면 그건 최고의 '봉사'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자기 이야기를 할 때 잘 들어주면서 공감 반응까지 보여 준다면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봉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강현숙 / 심리상담 전문가
(공무원연금 202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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