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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없다!

송담(松潭) 2019. 11. 16. 21:04

 

영국이라는 나라 이름은 없다!

 

 

 

 

 

 사실 국제적으로 '영국'이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나라는 없다. 영국의 정식 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원래는 다른 나라였던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가 합병되어 바로 지금의 영국이 되었다.

 

먼저, 13세기 말에 잉글랜드 왕국이 서부 웨일스를 합병했다. 이는 1066년에 노르만인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래 무려 약 220년 후의 일이다. 그 후 그레이트브리튼섬과 아일랜드섬에서는 잉글랜드 왕국, 스코틀랜드 왕국, 아일랜드 왕국 등 3개의 나라가 함께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다 1707년에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이 합병했다. 잉글랜드 왕국의 왕녀 앤은 스코틀랜드의 여왕까지 겸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탄생한 것이다.

 

 나아가 1801,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왕 조지 3세가 아일랜드 국왕을 겸하게 되어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탄생했다. 영국 본국의 영토가 가장 컸던 시대였다. 그러나 1922,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으로 아일랜드섬 동북부를 제외한 지역이 독립했다. 이에 따라 국가 명칭이 현재의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으로 바뀐 것이다.

 

 영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연합왕국United Kingdom' 또는 간단하게 죽여 'UK'라고 부른다. 현재 영국은 그 옛날 독립국이었던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4개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영국은 이 4개국으로 이루어진 연합국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는 국기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일찍이 잉글랜드 왕국의 국기는 흰색 바탕에 붉은 십자가, 스코틀랜드 왕국은 청색 바탕에 흰색으로 기울어진 십자가, 아일랜드 왕국은 흰색 바탕에 옆으로 기울어진 붉은색 십자가로 된 국기였다. 유니언 잭Union Jack이라고 불리는 영국의 현 국기 디자인은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잉글랜드 왕국, 스크트랜드 왕국, 아일랜드 왕국의 국기를 합한 것이다.

 

 현재의 모습이 갖추어진 지 수백 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지역별로 특색이 뚜렷하여 각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이 '영국'의 국민이라는 자각이 별로 없다.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을 위한 예선에도 영국의 이름으로 하나의 국가대표팀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4개 지역의 축구팀이 별도로 출전한다. 영국이 축구 종주국이라는 이유로 FIFA에서 주는 특혜이다. 영국도 지역감정이 심한 나라여서, 잉글랜드와 다른 나라의 경기에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잉글랜드가 아닌 다른 나라를 응원할 정도라고 한다.

 

 

알래스카

 

 원래 알래스카는 러시아의 영토였는데, 1867년 재정이 궁핍해진 러시아제국이 720만 달러, 15달러도 안 되는 헐값으로 미국에 팔아넘기고 말았다. 만약 알래스카를 팔지 않았다면 북극해와 아메리카 대륙의 일부가 구소련의 지배하에 있었을 것이므로 냉전 시대의 판도는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금과 석유 등의 자원이 미국의 성장에 큰 보탬이 되어 구소련의 배를 더욱 아프게 했다.

 

 베링 해협 중간에는 나란히 솟아 있는 형제 섬이 있다. 서쪽에 있는 큰 섬이 다이오메드섬 (러시아어로 라트마노프섬)이고, 동쪽에 있는 작은 섬이 다이오메드섬이다. 이 형제 섬을 갈라놓듯 두 섬 사이로 날짜변경선이 지나고, 서쪽은 러시아령, 동쪽은 미국령으로 갈라져 있다.

 

 

 

독도의 2배밖에 안 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시국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유럽에는 국토가 있는 나라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있다. 가톨릭의 교황을 국가 원수로 삼고 있는 '바티칸 시국'으로, 교황이 다른 나라의 제약을 받지 않고 종교상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건국된 나라이다. 국제 관계에서는 교황의 종교적 사명과 국제적 영향력을 중시하여 정식 명칭인 바티칸 시국이 아니라 '성좌 Holy See'라고 부른다. 현재의 교황은 2013년에 선출된 프란치스코이다.

 

 바티칸 시국은 로마 시내에 자리한 바티칸 언덕에 있으며, 면적은 0.44이다. 이는 독도의 2배보다 약간 큰 정도이고, 여의도의 약 19분의 1밖에 안 되는 크기라고 하니 얼마나 작은 나라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바티칸 시국의 현관 역할을 하는 성 베드로 광장 초입에는 흰 선이 그어져 있는데, 이 선이 바로 바티칸과 이탈리아의 국경선이다. 그러나 이 선을 넘을 때 여권은 필요 없다. 성 베드로 대성전, 바티칸 박물관도 여권 없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물론 그 밖의 장소는 명확한 이유가 있거나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야만 출입할 수 있고, 방문자는 스위스 근위병이 검문을 한다.

 

 바티칸의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약 900명 안팎이다. 그러나 전 세계 가톨릭 신자는 약 8억 명 정도로 성지인 바티칸을 순례하는 사람들의 수는 많다. 특히 일요일이면 교황의 축복을 받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신자들로 성 베드로 광장은 가득 찬다. 신자가 아닌 관광객들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등 수많은 예술품과 문화재를 관람하기 위해 찾아간다.

 

 이 땅이 교황청이 된 것은 서기 64, 로마제국 황제 네로의 박해로 순교한 사도 베드로가 바티칸 언덕에 묻힌 것에서 유래한다. 349년에 베드로 사도의 묘지 위에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세워졌고, 756년에 프랑크 왕국의 피핀이 영지를 헌상하여 교황의 영토가 되었다. 1870년에 이탈리아에 민족주의가 일어나면서 이탈리아 정부가 교황의 영토를 몰수했으나(이를 '로마 문제'라고 한다) 1929년 라테란 협정을 통해 독립을 회복했다.

 

 

미국의 수도는 원래 뉴욕이었다?

 

뉴욕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미국의 수도는 어디일까? 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뉴욕'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수도는 워싱턴 D.C 이다. 사람들을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은 뉴욕이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미국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뉴욕이 미국을 대표하는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역사와 입지조건 덕분이다. 뉴욕항은 천혜의 항구인데다, 뉴욕 중심을 흐르는 허드슨강은 대형 선박도 내륙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수운이 발달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춘 도시인 것이다.

 

 때문에 유럽인들이 활발하게 식민지 개척을 하던 17세기에 이곳을 식민지로 삼은 네덜란드인들은 '뉴암스테르담'이라 부르며 식민지 경영의 중심지로 삼았다. 이때부터 이 지역은 미국의 현관이 된 것이다.

 

 뉴암스테르담은 현재의 뉴욕과 그 규모가 전혀 달랐다. , 맨해튼섬 최남단, 현재의 월스트리트Wall Sreet 보다 남쪽에 있던, 그다지 넓지 않은 땅이었다. '월스트리트'라는 이름은 네덜란드인들이 영국군과 원주민들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해 뉴암스테르담 북쪽에 쌓은 성벽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 벌어진 몇 차례 전쟁의 결과. 뉴암스테르담은 1664년 영국에 점령되었다. 그리고 영국 국왕 찰스 2세의 동생이자 영국 해군제독인 요크York 경의 이름을 따서 '뉴욕'이라고 개명했다. 그 까닭에 영국 요크주에서 이 땅으로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식민지 시대의 뉴욕은 작은 항구 마을이었으나 점차 큰 마을로 발전했고, 독립전쟁에 승리한 다음인 1784년에는 수도로 선정되었다. 맨 처음 미국의 수도는 뉴욕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1790년에 수도의 자리를 필라델피아에 양보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현관 역할을 계속하며 발전을 거듭했다.

 

 1886년에는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프랑스로부터 선물 받은 자유의 여신상을 세웠다. 이후 자유의 여신상은 세계 각국에서 오는 이민자들을 환영하는 상징이 되었다. 이 여신상이 뉴욕을 더욱 미국다운 얼굴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20세기에 와서 맨해튼에 마천루라고 불리는 초고층 빌딩이 가득 들어서며 뉴욕의 상징이 되었다. 맨해튼섬의 위치는 강 가운데 모래톱 같은 곳인데 그 지반은 모래가 아니라 단단한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마천루를 세울 수 있었다.

 

 뉴욕은 정치적 기능만 다른 도시에 양도했을 뿐, 미국 최초의 수도였던 시절 이래로 미국의 얼굴이었으며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미국에는 '워싱턴'300개나 있다?

 

 '워싱턴'이라고 하면 누구나 미국의 수도를 떠올린다. 이 수도 워싱턴은 미국의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는다. 또한 '컬럼비아 특별구 Districtof Columbia'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어, 두 개의 명칭을 합하여 '워싱턴 D.C.'라고 부를 때가 더 많다. 초대 대통령 위싱턴과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두 사람의 이름이 합하여 미국의 수도가 된 것이다.

 

 한편, 초대 대통령 조지 위싱턴은 미국을 독립으로 이끈 '건국의 아버지'로 여전히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후 2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링컨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이 미국 전역에는 '워싱턴'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서북단에 있는 '워싱턴주'가 있다. 주 이름으로 미국인의 이름을 사용한 것은 이 워싱턴주뿐이다. 처음에는 주의 경계를 따라 흐르는 컬럼비아강의 이름을 따서 '컬럼비아 준주'라고 불렀는데, 수도인 컬럼비아 특별구와 혼동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1889년에 미국의 42번째 주로 승격할 때 '워싱턴주'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컬럼비아든 워싱턴이든 수도와 이름이 같은데도 '컬럼비아주'보다 '워싱턴주'를 선택했다는 것은 워싱턴의 인기가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덧붙이자면, 워싱턴 D.C.의 면적은 179 인 반면, 워싱턴주의 면적은 172,447 로 어림잡아도 1,000배나 더 넓다. 그 외에도 '워싱턴시', '워싱턴 타운', '위싱턴 카운티' 등 위싱턴이 쓰인 곳은 매우 많다. 어떤 지명 연구가에 따르면 미국 국내에만 300곳 이상이라고 한다.

 

 미국에는 유명했던 대통령과 관계가 있는 지명이 많다고는 하지만 워싱턴만큼 많이 사용된 대통령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국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대통령이었다.

 

 

 

북극과 남극, 어느 쪽이 더 추울까?

 

 남극과 북극은 둘 다 '극한의 땅'이라고 불릴 정도로 춥다. 일반적으로 적도 바로 아래 지역들의 기온이 모두 비슷하듯, 적도에서부터 남북으로 비슷한 거리(위도 90")만큼 떨어진 두 곳의 추위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극이 훨씬 춥다.

 

 겨울의 최저 기온을 비교해보면, 북극은 영하 67정도까지 내려가는 데 반해 남극은 영하 89까지도 내려간다고 한다. 기온의 차이가 이렇게 벌어지는 것은 극지에 대륙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른 것이다.

 

 바닷물의 특징은 쉽게 따뜻해지지 않고 쉽게 차가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대륙이 없고 바다만 있는 북극은 온도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기온에 영향을 주는 또 하나의 요소는 빙하 주위를 흐르는 해류이다. 남극권보다 해역이 넓은 북극 지방은 이 해류도 흐르고 있어서 기온이 떨어지기 힘들다.

 

 한편 남극은 기온이 잘 올라가고 또 잘 내려가는 육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기온이 한번 내려가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육지를 하얗게 감싸고 있는 눈과 얼음이 태양열의 90%를 반사해버리는 탓에 기온이 계속 떨어진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산이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있는 킬리만자로산에도 눈이 쌓여 있듯이, 지상에서는 위도뿐만 아니라 표고도 기온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륙 빙상인 남극의 평균표고는 2,300m. 혹독한 추위를 겪는 것도 당연하다.

 

 이러한 기온의 차이는 남극해, 북극해를 표류하는 얼음의 두께에도 영향을 준다. 남극의 빙산은 거대하지만 북극해를 떠다니는 빙하의 두께는 고작해야 3m 정도에 불과하다.

 

 

 

 

세계 제일의 회오리바람 다발 지역과 발생 이유

 

 한국에서의 회오리바람은 발생 빈도가 낮아 익숙하지 않은 자연재해이지만 미국의 사정은 다르다. 미국에서는 연평균 700~800건의 회오리바람이 발생한다. 특히 회오리바람 다발 지역으로 유명한 곳은 로키산맥과 애팔래치아산맥 사이에 낀 오클라호마주, 캔자스주, 텍사스주인데, 특히 텍사스주와 그 주변을 회오리바람이 24시간 동안 148회나 습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미국에 부는 회오리바람은 출몰 빈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다. 사람과 자동차, 때로는 나무와 건물까지 들어 올리고, 회오리 바람으로 인한 사망자가 연평균 2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소설 <오즈의 마법사>에서 잠을 자던 도로시가 오두막째로 날아가 버린 장면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과거 최대의 피해는 1925318, 미주리주, 일리노이주, 인디애나주를 습격한 회오리바람으로, 사망자가 무려 689명이나 되었다.

 

 미국에서는 회오리바람을 '토네이도 tornado 육상에서 발생하는 회오리바람, '위터스파우트waterpout, 물속에서 발생하는 회오리바람', 공중 회오리바람'으로 나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내는 것이 토네이도이다.

 

 회오리바람은 거대한 적란운이 태풍의 눈과 같은 방향(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여 중심부의 기압이 급격히 떨어졌을 때 발생한다. 공기는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급격하게 기압이 낮아지면 주위의 공기가 엄청난 기세로 중심으로 흘러 들어가고, 그 결과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급상승한다.

 

 

샌프란시스코는 한여름에도 외투가 필요하다?

 

 캘리포니아의 여름 하면 이글거리는 태양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서해안의 아름다운 도시 샌프란시스코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북위 37인 샌프란시스코는 서울과 위도가 거의 같아서 연평균 기온도 비슷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서울과는 기온의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 우선 샌프란시스코의 7~8월 평균 기온은 섭씨 16~18로 상당히 시원하다. 그늘에 들어가면 대낮에도 쌀쌀하고, 해질 무렵이 되면 갑자기 추워져 외투가 필요한 날도 많다. 반대로 겨울의 평균 기온은 높다. 햇살이 강한 탓에 맑은 날에는 기온이 올라가, 자동차 안에 있을 경우 두꺼운 외투를 벗어야 할 정도이다. 여름과 겨울의 온도 차가 적고 1년 내내 쾌적한 기후인 것이다.

 

 여름이 시원한 주된 이유는 태평양 연안의 수온이 낮다는 점이다. 미국의 서해안에는 캘리포니아 한류가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차가운 물을 운반하고, 이 해류의 영향으로 연안의 해저에서는 차가운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샌프란시스코는 위도에 비하여 바닷물의 온도가 낮다. 여기에 습기 찬 공기가 지나가면 공기가 함유하고 있는 수증기가 바다 표면의 냉기로 차가워져서 안개가 된다. 때문에 여름이면 아침과 저녁에 안개가 끼는 날이 많다. 캘리포니아의 여름은 건기라서 샌프란시스코에도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지만 대신 안개 덕에 시원함이 유지된다. 이런 이유로 안개에 휩싸인 샌프란시스코의 골든게이트 다리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광경은 관광객들을 매료한다.

 

 하지만 이 안개는 멀리 떨어진 내륙으로 들어가면 사라진다. 때문에 샌프란시스코를 나와 동쪽으로 갈수록 여름의 기후가 덥고 건조하다.  

 

 ‘세계지도 상식도감(롬 인터내셔널 지음, 정미영 옮김)’ 중에서

 

 

뉴욕시와 맨해튼

 

19세기 전반에 금융업이 발달하고 뉴욕시에서는 신교도(프로테스탄트) 중심의 안정된 중류계급 사회가 형성된다. 이와 같은 사회를 배경으로 허드슨강을 거쳐 공업지역인 오대호와 뉴욕항을 잇는 이리운하가 건설되었다. 마차보다 편리한 운하의 활용으로 생산품의 수송비용은 대폭 줄어들고 무역액이 증가했다.

 

또 맨해튼섬에 바둑판같은 도로망을 건설하는 도시계획도 실행되었다. 1811년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뉴요커'라고 칭송받는 드위트 클린턴 뉴욕시장이 장차 시의 인구가 100만 명을 넘을 것이라 예상하고 2000개 이상의 거리구획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따라 맨해튼섬에는 약 30미터 간격으로 남북으로 이어지는 12개의 애비뉴, 그보다 짧은 간격으로 동서로 가로지르는 155개의 스트리트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1835년에 뉴욕시는 필라델파피아를 제치고 미국 최대 규모의 도시가 되었다.

 

현재 뉴욕시는 맨해튼, 브루클린, 퀸스, 브롱크스, 스태튼아일랜드 등 다섯 개의 자치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자치구들은 1891년에 뉴욕시가 주변지역을 병합해서 도시영역을 넓혔을 때에 탄생했다.

 

통상 미국의 지방행정 단위는 주에 해당하는 스테이트와 그 아래 카운티, 또 그 아래의 시티, 타운, 빌리지로 구성된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뉴욕시는 카운티 개념의 다섯 구(버로우)로 구성되었다. 이는 뉴욕이 영역을 넓히며 주변지역의 기존 자치단체를 폐지하고 대신에 버로우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다섯 개의 구 중에서 맨해튼은 맨해튼섬의 남측 끝에 있는 지구다. 뉴욕시의 중심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뉴욕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곳에는 뉴욕시 청사 외에 국제연합(유엔)본부빌딩, 센트럴렬파크,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미국자연사박물관, '세계의 교차점'이라 불리는 타임스퀘어, 극장가인 브로드웨이와 쇼핑스트리트인 5번가. 세계의 금융과 중권의 중심지 월스트리트, 록펠러센터 등 다수의 명소가 위치한다.

 

맨해튼에 이처럼 많은 빌딩이 지어진 이유는 지반이 단단해서 고층건축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또 당시 철골구조에 의해 층을 더 높이 올릴 수 있는 새로운 공법이 발달한 것도 한 이유다.

 

맨해튼에서 고층빌딩 건설이 시작한 때는 1900년 전후다. 1920년대 후반에는 그야말로 고층빌딩 건축 붐이 일었다. 1930년에 높이 283미터의 '40월스트리트'와 높이 320미터의 '크라이슬러빌딩'이 세워졌고, 이듬해에는 높이 443미터에 102층 건물인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완공되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1972년에 세계무역센터가 세워질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뉴욕의 지상에서 빌딩이 난립하는 한편, 1904년에는 땅속에서 지하철이 개봉됐다. 인구증가와 더불어 나날이 붐비는 마차들로 도로의 교통정체가 심했는데, 지상을 개발하기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최초의 지하철은 로어맨해튼과 할렘을 잇는 14.6킬로미터 노선이었다. 1920년대에는 그 몇 배의 연장선이 만들어졌고, 현재에는 맨해튼을 중심으로 뉴욕시 전역으로 뻗은 총 노선 길이 375킬로미터, 연간 이용객 17억 명의 매머드급 지하철이 24시간 운행되고 있다.

 

조 지무쇼 편저, 최미숙 옮김 /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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