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 메종
우리가 하는 일이 곧 세계 최고인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오드 메종(ODE Masion)' 내부의 아름다움과 갖추어 놓은 오디오 기기의 수준을 보면 최고란 수사가 공허하지 않다. 요즘 화제가 되는 핫 플레이스가 많은 세계 도시의 예를 들 때, 슬슬 서울이 등장하는 추세와도 통한다. 적어도 오디오를 판매하고 즐기는 영역에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수준을 실현했다. 실체가 없는 자부심이란 꾸며 낸 억지이기 십상이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의 문화 도시에서나 있을 법한 최고의 상태를 서울에서 경험하게 되는 감회는 각별하다. 단언컨대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가장 멋지고 본격적인 오디오 숍은 서울 신사동에 있다. 오드가 있어 서울이란 도시의 매력을 하나 더 더했다고 해도 좋다.
소리의 황홀을 경험할 수 있는 곳
'오드 메종'은 우리가 그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해지고 가슴 뛰는 공간 체험을 선사한다. 처음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용도를 분명히 했으므로 어설픈 부분이 없다. 건축미와 실내 장식의 수준이 그 무엇을 생각하든 기대 이상이다. 방의 면적이 넓고 천장이 높아서 평소 느껴 보지 못했던 넉넉한 시각적 포만감을 준다. 서울의 여느 빌딩에 들어서면 왠지 불편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불과 몇 미터, 몇 십 센티미터가 커졌을 뿐인데 규모의 여유를 몸이 먼저 받아들이는 듯하다.
비례와 균형의 아름다움이 건물에 있다면, 좋은 재질이 풍기는 세련된 느낌은 실내 디자인이 주었다. 여기에 더해진 고급 가구와 집기는 격조 높게 방문객을 배려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태도와 몸가짐은 럭셔리의 실체가 무엇인지 실감케 된다.
건물의 각 층은 세계의 좋은 오디오 기기를 직접 보고 듣고 확인해 보는 독립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단하고 엄청난 것들 앞에선 설명이 필요 없다. 보는 순간 그 자체의 존재감이 먼저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는 미술관에서 만난 인상 깊은 그림의 효과와도 비슷하고, 유명 콘서트홀에서 실연의 감동을 느낄 때의 상태와 다를 게 없다. 생생한 음악을 들려주기 위한 오디오 기기들은 하나같이 본격적인 수준의 물건들이다.
모든 것을 인스턴트화시키는 경박단소(輕薄短小)가 미덕인 시대에 중후장대의 스케일로 접근하는 브랜드 제품이다. '이 정도면 됐다'가 아닌 '이 정도가 아니면 안 된다'를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이들 오디오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전체가 공간이었다. 원하는 음악을 무엇으로 어떻게 들을 것인가를 거꾸로 사용자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오디오를 포함한 공간 전체의 구성이 경험의 대상이었다. 예전의 오디오 숍과 다른 부분이다. 오디오 기기를 파는 게 아니라 그를 포함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상품인 셈이다. 음악과 오디오가 있는 풍요로운 삶의 모습을 제안하고, 그를 직접 체험시키는 데 모아져 있다. 이제 우리는 생각만으로 세상을 살지 않는다. 감각으로 생각하는 시대를 산다.
오디오 기기는 소리를 내는 조각품 같다. 좋은 소리를 위해 결정됐다는 합금 주물로 만든 형태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제작자의 상상력은 예술적 감수성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겠다. 주물 표면이 매끈해지도록 수없이 닦아 냈을 공들인 솜씨는 독특한 금속광택으로 빛났다. 쓰지 않을 때 보이지 않게 가려 둘 필요가 없다. 스피커는 쓸 때보다 그냥 서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아름다움이 왜 필요한지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스피커는 그 답을 일러 준다.
우리창 너머로 보이는 정원의 자작나무가 흔들렸다. 음량을 크게 틀어 놓은 스피커의 볼륨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소리는 농밀해져 바이올린의 선율조차 흐느끼듯 들리게 했다. 너무 사실적이어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소리의 황홀이란 이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다. 눈과 귀, 혀와 손끝이 동시에 반응하는 공감각이었다. 어디서도 체험하지 못한 강렬함이었다. 상태를 반복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당장 눈앞의 스피커와 앰프를 사고, 공간의 분위기를 이처럼 꾸미고 싶어졌다.
각층마다 펼쳐지는 하이엔드 오디오들의 향연
한 층을 더 올라가면 다른 분위기의 방에 오디오 시스템이 연결되어 있다. 푹신한 가죽 의자에 앉으니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하다. 바텐더가 만들어 준 칵테일 한 잔을 들고 함께 온 이와 건배를 했다. 타이밍에 맞추어 엘렌 그리모(Helene Grimaud)의 피아노 연주곡이 홀러나왔다. 단연 최고의 피아노라 불리는 스타인웨이 앤드 선즈(Steinway & Sons)의 매끄러운 검정 광택을 그대로 빼어 박은 덴마크의 스피커 딩도르프(Lyngdorf)는 엘렌 그리모를 불러낸 듯 생생한 음악을 들려줬다.
세상에서 가장 성능이 좋다는 스피커와 앰프의 조합을 갖추어 놓은 방도 있다. 궁극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한 각자의 조합도 자문할 수 있다. 오디오 기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제일 많은 관심을 보이는 곳이다. 오드 메종은 오디오마니아들의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준다. 좋은 음향을 위해 흡음과 차음 분산률을 최적화시킨 공간으로 설계해서다. 잔향과 울림도 적절하다. 자칭 최고의 스피커를 만들었다는 제작자가 직접 찾아와 여기를 돌아봤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완벽한 공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엔 자국의 스피커를 수입해 준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에스토니아 대통령이 방문하기도 했다. 오드 메종의 진면목을 확인하기 위해 내부공간을 일일이 체험하려면 하루도 모자란다.
인생이 허망해질 때 음악을 선물하다
누구든지 한 번쯤 삶의 의미와 자신의 현재를 비추어 보게 마련이다. 인생의 허망함이 다가올 나이쯤 음악과 오디오를 알게 된 이가 있다. 클래식 음악에 심취해 섬세한 선율과 음색을 내주는 오디오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오디오란 소리의 완성으로 이상을 실천하는 과정의 예술이란 점도 알게 됐다. 음악의 위안으로 삶이 바뀔 수 있음도 깨달았다. 도취의 황홀을 이끌어 내기 위한 과정도 행복했다.
노 사업가의 결단은 단호했다. 본업종과 전혀 관계없는 오디오 사업부를 차려 독립시켰다. 수익성을 우려한 반대 의견이 더 많았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세상엔 자신과 같은 사람들도 있으리란 생각이 우선됐다. 오드 메종으로 새로운 삶을 제안한다. 누구나 아름다움이란 사치와 허영을 인생의 한 지점쯤에 누려 보길 바랐다. 훌쩍 늙어버린 자신에게 허망함 대신 선물 하나 쯤은 챙겨 주라는 거였다.
윤광준 / ‘내가 사랑한 공간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