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죽설헌

송담(松潭) 2020. 1. 22. 12:57

 

죽설헌

 

 

 

 

 

 화가와 40여 년의 시간이 만들어 낸 낙원

 

 죽설헌은 박태후 혼자 일군 개인 정원이다. 고향인 나주에서 나무가 좋고 꽃이 좋아 하나씩 심고 가꾸다 보니, 어느덧 지금의 규모로 커졌다. 집 앞마당에서 주변 땅으로, 인근의 배밭까지 사들여 넓힌 면적은 12천여 평에 이른다. 47년의 세월동안 가꿔 온 풀과 나무는 빽빽한 숲을 이뤘다. 정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은 어느새 현대의 독특한 한국 정원으로 인정받게 됐다. 시작과 끝을 한 개인이 마무리한 덕분에 죽설헌의 개성과 의미는 어느 곳의 정원과도 닮지 않았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죽설헌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죽설헌을 가꾼 박태후는 화가이자 조경가다. 밥벌이와 작업을 병행하며 독학으로 자기 세계를 구축한 한국 화가다. 독특한 화풍과 색채를 띤 그림을 그린다. 원예 학교를 졸업하고 관련 분야의 공무원으로도 재직했었다. 조경 업무를 맡아 줄곧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더 중요할 수 있겠다. 몸이로 익힌 전문성은 이 시절의 공력이다.

 

 대숲을 거닐 때 들리는 소리는 일품이다. 남도의 풍광을 극적으로 만드는 대나무 숲의 매력은 소리에 있다. 잎이 무성한 여름도 좋지만, 겨울철 대나무의 소리가 훨씬 인상적이다. 여기에 눈까지 쌓인다면 대숲의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한다. 이곳의 주인장이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눈 덮인 대나무가 있는 집이란 뜻의 죽설헌(竹雪軒)을 이름으로 삼은 배경이다.

 

 난초처럼 잎사귀가 기다란 맥문동의 군락이 꽤 넓게 펼처져 있었다. 여기저기 보라색 꽃대가 올라오는 중이었다. 키 작고 이파리가 긴 식물은 동시에 많은 꽃을 피울 때 장관을 이룬다. 만개한 보랏빛 꽃대가 늘어선 모습은 화려한 향연을 벌이는 듯했다. 맥문동이 한두 송이만 피어 있었다면 영락없는 잡초라 여겼을 것이다. 이곳에선 너무 흔해서 발길에 차이거나 약재로 쓰기 위해 밭에서 기르던 풀도 당당한 주인공이 된다.

 

 

죽설헌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무성한 나뭇가지로 빛이 가려진 담장 아래엔 옥잠화가 이어진다. 강한 볕을 싫어하는 식물이 절묘하게 제 자리를 잡았다. 여러 줄이 들어간 이파리는 밋밋한 듯 보여도 곱다. 여름의 진객으로 길게 뻗은 하얀 꽃에서 풍기는 진한 향은 숲 전체를 채울 만큼 넉넉하다. 길 따라 이어진 옥잠화는 향기로 천국의 길을 인도하는 듯하다. 옥잠화의 향은 강렬한 유혹이다. 누구라도 홀린 듯 발길을 옮기게 된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아 수북해진 잔풀들은 녹색의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하다. 밟는 순간 발밑에 폭신한 감촉이 전해져 온다. 눈의 호사가 향긋한 향으로 번지고, 발의 감촉까지 이어지는 정원에서 꽃과 나무와 나누는 대화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어진다. 숲에 있는 동안은 꿈을 꾸는 듯했다. 죽설헌에 머물던 시간동안 온 감각이 활성화된 듯 황홀했다. 우리가 바라던 낙원이란 이런 모습일 것이다.

 

 죽설헌은 원림에 가깝다. 살림집을 중심으로 숲이 펼쳐져 있는 조성법 때문이다. 개인 정원으로 보기엔 규모가 크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집은 35년 전에 화가가 직접 설계하고, 자재를 수급해 손수 지었다. 지금 봐도 낡아 보이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균형 잡힌 건축미를 풍긴다. 적당한 불매의 지붕엔 붉은 기와를 올렸다. 집을 둘러싼 숲은 흘러간 세만큼 무성해졌다. 이들 나무는 옮겨 심은 게 아니다. 전국을 돌며 명목(名木)의 씨를 받아 여기에서 직접 싹을 틔운 나무들이다. 이젠 집이 숲의 일부가 된 듯 일체화된 느낌이다. 자연과 인공이 서로 다투지 않는 편안함으로 안정된 집은 죽설헌의 중요한 원점이 된다. 통창을 가린 나무가 커튼처럼 보인다.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

 

 박태후에게 변화가 생긴다. 프랑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을 찾은 이후다. 쉰셋의 나이로 지베르니에 정착한 모네는 정원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는 일로 여생을 보냈다. 시력을 거의 잃어버린 말년에 그린 수련연작은 지베르니의 정원에서 완성되었다.

 

 나도 모네의 정원에 가본 적이 있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일본 정원의 독특함이 더해진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정원은 북적였다. 특히 그림에 나오는 다리에선 경쟁적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모네를 기억하고 그림이 탄생된 원점에 있다는 의미 매김 때문인지 정원에 들른 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조그마한 동네인 지베르니는 정원 하나로 세계인이 기억하는 장소가 됐다.

 

 박태후는 모네의 정원을 통해 같은 화가로서 정원의 힘과 효과를 실감케 된다. 그동안 자신이 일군 정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그는 죽설헌을 화가의 정원으로 정비해 볼 생각을 하게 된다. 훗날 자신을 기억하는 공간으로서의 본격 정원을 의식하게 됐다고나 할까. 넓은 연못이 주를 이루는 모네의 정원을 인상 깊게 본 그는 이미 만들어 놓은 다섯 곳의 연못에 두 곳을 더했다. 모네의 정원과 달리 인위적 혼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연못을 파고 주변 둔덕에 왕버드나무를 이어 심었다. 왕버드나무는 빨리 자랄뿐더러 수형이 아름답다. 뿌리는 깊고 넓게 퍼져 잔뿌리가 흙을 단단하게 움켜쥔다. 나무 주변엔 습지에 가장 적합한 노랑꽃창포를 심었다. 군락을 이룬 창포는 5월이면 노란 꽃으로 뒤덮인다. 자연스럽게 핀 꽃의 화려한 자태는 텔레비전을 통해 이미 많이 알려졌다.

 

 

죽설헌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죽설헌의 아름다움은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러움에서 온다. 옛 건물에 쓰던 기와를 길 양편으로 쌓아 만든 야트막한 담장이 유일한 인공물이다. 세월이 지나 기와에도 식물이 덮여 자연의 옷을 입었다. 이끼는 기와를 자연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흙으로 만든 조선기와는 자연스러웠다. 이런 아름다운 물건이 사라지는 것이 아까웠던 화가는 유일하게 욕심을 내 죽설헌에 옛 기와를 모아놓았다. 이후는 자연의 시간이 생명을 불어넣어 줬다. 나무와 풀을 잘 아는 주인장이 기와를 쌓은 담장만으로 죽설헌을 장식하게 된 이유다. 이 또한 대지의 설치 미술이라 생각한다. 선택과 배치의 묘수는 자연 스스로 한 일이기 때문이. 타고난 미감은 가만히 놔두면 더 아름다워지는 자연의 힘으로 마무리됐다.

 

 죽설헌에선 걷는 일이 전부다. 길을 따라 펼쳐지는 나무와 풀을 보고 가끔씩 들리는 새소리와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걷다 보면 왕버드나무가 있는 연못에 다다른다. 지나온 길옆의 모습은 별로 다르지 않다. 의미를 알아차려야 한다. 전체가 비슷한 느낌과 밋밋한 분위기로 완결되었기 때문이다. 드러나지 않게 마무리하는 일이 제일 어럽다. 고수의 솜씨란 이런 것이다.

 

 죽설헌은 개인 정원이라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꼭 보고 싶은 이들에겐 기꺼이 문을 열어 준다. 그러니 죽설헌에 들어가기 전에는 먼저 예의를 갖추고 진심으로 이 정원의 아름다움에 공감할 준비를 하시라.

 

 

 윤광준 / ‘내가 사랑한 공간들중에서

 

 

 * 사진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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