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추상화

송담(松潭) 2020. 3. 9. 05:39

추상화

 

 

 

 

추상화에서 형태를 찾으려는 시도는 포기해야 한다. 작가에 의해 이미 해체된 형태가 보는 이의 눈에만 따로 조립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추상은 출발 자체가 그릴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상대의 이해를 구하지 않는다. 이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차창 밖에 순간적으로 스쳐 간 인상과 풍경을 그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스쳐 간 이미지는 재현할 수 없다. 어떤 희미한 느낌만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느낌을 표현하려면 사물의 정확한 재현이 아닌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느낀 것을 추상으로 풀어내려는 작가의 고민을 이해하게 된다.

 

결국 추상화는 '의도성'이 매우 강한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 의도가 형태에 없을 뿐이다. 다른 요소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색채가 대표적인 예지만 재료, 재질, 기법 등도 의도를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미술에서 재료, 재질을 뜻하는 '마티에르martiere'라는 단어가 화가의 의도를 뜻하는 미학적 언어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추상화에서는 그 화가만의 붓질, 그 화가만이 사용하는 재료의 두께 등 자신만의 기볍을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형태 이외의 요소로 의도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화가의 의도를 생각하면 그 화가에 대해, 그 화가가 처해있던 시대에 대해 자연스럽게 찾아보게 된다.

 

 

그림 감상

 

작품을 감상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림을 보는 데 정해진 방법은 없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을 하나 정해 작정하고 그것만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것도 좋다. 멀리서 먼저 보고 가까이서 보고, 가까이서 보고 또 멀리서도 보고, 그 선후도 상관없다. 다만 작품과 교감하는 에너지를 증대시킬 만한 조언들은 이런 것이다. 우선 그림은 '내'가 감상하는 것이다. 그림을 보면서 자신이 가진 추억,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를 떠올려보는 건 매우 좋은 감상법이다. 그림 속의 인물에서 자신이 아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도 좋다.

 

자신이 화가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그렸는지를 생각하면서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재료를 어디서 구했을지, 어떻게 스케치했을지, 그 화가의 입장이 되어 그림을 보면 세세하게 이해가 된다.

 

전시회장에 가면 관람 동선이 있다. 꼭 그 동선을 꼭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람 동선이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전시회의 기획 의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물 전체의 맥락을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 작품을 이렇게 전시한 의도, 이 작품이 놓여 있는 맥락을 이해하면서 보아야 엉뚱한 해석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림 옆에 있는 설명은 꼭 꼼꼼히 읽어보라. 설명을 먼저 읽든 그림을 먼저 보든 그 순서는 상관없다. 나는 설명을 나중에 읽는 편이고 내용을 미리 알면 감흥의 범위가 줄어드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고 보아도 상관없다. 이 일이 익숙해지면, 그 선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자연히 알게 된다. 작품의 형태, 빛, 구도 등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 걸 분석하는 일은 그림을 그리거나 평가를 해야 하는 이들의 몫이다. 감상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그림이 풍기는 힘과 내용의 공감이다. 화가의 에너지를 느끼고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다.

 

 

10대나 20대 시절에는 사실 미술 작품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미술관에 갈 기회도 많지 않았고, 암울하고 비참한 시대에 한가하게 그림이나 보러 다닐 수 없다는 죄책감이 있었다. 문화적 인프라도 빈약했다. 간간이 조악하게 인쇄된 책을 통해 그림을 접했을 뿐이다. 직장에 다니게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먼저 해외에 나가 명화를 직접 접해본 선배들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듣게 되었다. 너무 똑똑한 선배들이라 당시 나로서는 대화의 수준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오기가 발동했다. 틈나는 대로 전시회에 갔다. 책을 사서 공부를 했다. 그림에 빠지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경험은 실물과 마주했을 때의 감동이었다. 내 앞의 그림이 말을 걸어오고, 은유와 상징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다가오면, 그 느낌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보고 왔는데 돌아서서 또 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낮선 그림도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예술은 본질적으로 유사한 지점이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는 않지만 사진을 찍으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사진을 찍는 일은 사진기라는 기계를 조작하는 일로 이루어지지만 그 전에 찍어야 할 것을 찾아내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 그렇게 둘러본다는 것은 단순히 소재를 찾는 것을 넘어, 비치는 이미지의 일부를 선택해 잘라내고 정리하는 과정이다. 사진 또한 그림처럼 제한된 크기의 공간에 형태를 담는 일이다. 화가가 일정 크기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문법과 비슷한 점이 있다. 짜임새 있도록 배치해 시선을 유도하고, 강조점을 넣어 눈에 잘 띄게 한다.

 

사진을 비롯하여 평면에서 시각적 전달을 하는 일들은 다 비슷한 방법을 쓴다. 바로 비례와 균형의 원칙이다. 프레임에 담길 사물의 모습을 재빨리 선, 면, 덩어리 등의 형태소로 파악해 적절히 배분하는 일이다.

 

 

윤광준 / ‘심미안 수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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