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문화예술

뮤지엄 산

송담(松潭) 2020. 1. 18. 05:47

 

 

뮤지엄 산

 

 

 

 

 일본 나오시마의 지추 미술관을 다녀왔던 기억은 오래 전이지만 여전히 새롭다. 이곳은 환경 문제로 버려졌던 섬에 미술관을 세워 세계인이 찾는 명소로 떠올랐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려는 기업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풍광의 건축을 만드는 안도 다다오의 솜씨 덕분이다. 현대 건축의 걸작이라 불리는 지추 미술관이 들어선 이후 나오시마는 변했다. 존재감 없던 섬 마을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된 미술관의 힘이다.

 

 지추 미술관을 세운 회사는 학습지와 출판 사업을 하는 베네세 그룹이다. 침체된 섬을 되살리기 위해 베네세는 지역 재생을 결심한다. 미술관을 지어 문화재단 소유의 미술품과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을 보여 줄 요량이었다. 나오시마가 예술의 섬으로 바뀌면 지역 경제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선 세계 수준의 건축이 들어서야 했다.

 

 건축가의 선정이 중요한 사안으로 떠올랐다. 자연 친화적 건축으로 이름을 날리는 안도 다다오가 적격이었다. 베네세 그룹은 일본의 대표 건축가이자 세계적 지명도가 있는 안도에게 설계를 맡긴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문화의 힘으로 세상을 바꿔 보고자 하는 기업과 기억에 남는 건축물을 만들어 내는 건축가의 결합은 성공적이었다. 지추 미술관은 말 그대로 건물의 대부분을 땅 속에 감추어 지상에서 보이지 않게 지어져다 주변 해안에서 보면 건물의 돌출부는 언덕의 일부처럼 보인다.

 

   한국의 산 지형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물

 

 지추 미술관의 강렬한 인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강원도 원주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제주에도 그의 건축이 몇 군데 있긴 하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크고 본격적인 건축물이다. 게다가 나오시마의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강원도의 산에 지어졌다. 주변의 환경과 멋지게 어울리는 건축미는 물론이고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되니 접근성도 뛰어나다.

 

 '뮤지엄 산(SAN)'이다. 자연과 공간(Space And Nature) 머리글자를 따 SAN으로 작명했다고 한다. 건물을 돌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지추 미술관에서 느꼈던 부러움은 지워도 될듯했다. 섬을 떠나 우리나라 본토에 세워진 최초의 안도 다다오 건축이란 의미까지 더할 수 있게 됐다.

 

 뮤지엄 산도 지추 미술관과 같이 기업 주도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의 베네세는 책을 만들고 한국의 한솔제지는 종이를 만든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책과 종이 그리고 안도 다다오....설립자가 평생 모은 미술품을 세상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의 출발도 비슷하다. 묘한 연관성이다. 한국과 일본에 떨어져 있는 두 건물이 이란성 쌍둥이 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쪽은 지역 재생, 다른 쪽은 리조트 개발의 일환으로 미술관을 지었다. 뮤지엄 산은 거장의 반열에 오른 안도의 건축적 특징을 모두 담은 완결판과 같다.

 

 

 하늘과 땅, 사람이 조화로운 공간

 

제임스터렐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물에 떠 있는 듯한 미술관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금 전에 보았던 산의 풍경을 잊게 하는 반전이 있다. 물을 끌어들이는 건축 기법이 여기서도 적용됐다. 안도 다다오를 유명하게 만든, 삿포로에 있는 물의 교회에서 봤던 인상이 연장되는 느낌이다. 수면에 비친 교회의 모습은 종교적 경건함을 공유시키는 훌륭한 장치였다.

 

 물에 비친 뮤지엄 산은 비밀을 감춘 성채처럼 잔잔한 존재감으로 시선을 이끈다. 물을 가둔 수면은 거울과 같은 효과를 낸다. 건물 주위에 물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하늘을 보기 위함이라 했다. 수면에 하늘이 비치면 건물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다. 자연의 일부가 된 건축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인다. 수시로 변하는 빛의 세기와 방향, 바람에 의해 수면의 물결이 변화무쌍해진다. 자연과 건축을 연결시킨 물의 표면은 단 한 번도 반복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내가 찾았을 때 수면은 거울처럼 잔잔했다. 하늘의 구름이 비친 수면은 중력을 차단시킨 듯 미술관이 사뿐하게 솟아오를 듯하다. 외벽의 색감과 뒤편의 나무들이 상하 대칭으로 펼쳐진 그림을 만들어 냈다. 어지간히 둔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아름다움을 지나치지 못한다. 건축이 예술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뮤지엄 산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빛만으로 변주되는 현실과 상상의 공간을 경험하다

 

 뮤지엄 산의 본관에는 청조 미술관과 종이 박물관이 있고, 별도 건물에는 최근에 완공된 명상관과 제임스터렐관이 구성되어 있다. 본관과 제임스터렐관 사이에는 신라고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돌의 정원 이른바 '스톤 가든'이 있다. 돌무더기는 봉긋하게 솟아오른 부드러운 곡선이 인상적이다. 중첩되어 보이는 둥근 형태는 경주에서 본 신라의 흔적이다. 한국을 의식한 건축의 헌정이란 생각이 든다.

 

 스톤 가든을 걷다 보면 우리의 것을 객관화시켜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다.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감촉과 느낌, 보는 것이 달라진다. 새삼 돌의 질감에서 석탑이 연상되고 색깔에서 추억이 떠오르는 공감각이 발동된다. 공간은 사람을 적극적으로 반응하게 유도한다. 미술관에선 감촉과 느낌이 환기되고, 보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뮤지엄 산의 백미는 제임스터렐관이다. 제임스터렐은 빛만 다루는 작업으로 명성을 얻었다. 사물의 표면에 번지는 빛과 색채의 느낌이 미묘하게 다가오는 작품들이 많다. 지추 미술관에도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놓여 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을 같은 건축가가 만든 공간에서 각각 보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 두 미술관의 특징과 효과도 비교할 수 있다. 지추 미술관의 것은 입체, 뮤지엄 산의 것은 평면이란 점이 다르다. 이곳에선 흰 벽에 펼쳐지는 터렐의 다섯 작품을 볼 수 있다. 외부의 빛을 끌어들이거나 차단시킨 커다란 공간은 현대 미술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이런 공간이 아니면 빛의 효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갇힌 공간에서 빛만으로 변주되는 현실과 상상을 체험하게 된다. 안에 있으면 꿈꾸는 듯하고, 문 밖으로 나가면 하늘이 보일 듯하다.

 

 

제임스터렐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안도 다다오는 작가에게 공간을 헌정했고, 작가는 빛을 뿌렸다. 파란 하늘과 하얀 벽, 그 사이에 놓인 사람의 관계는 곧 자신과 영원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공간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뮤지엄 산은 전시 작품만이 아니라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보고 즐기는 것이기도 하다, 나오시마의 지추 미술관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고, 이곳만의 매력에 빠져 보는 것도 좋다. 건축과 주변 풍광의 조화와, 미술관이란 용도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같은 건축가가 지은 것이니 두공간의 저울질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지추 미술관의 경험이 어떤 형태로든 이곳에 반영되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비슷하고 동일한 수법이 많이 반복되기까지 한다. 평가는 주관적 호불호로 나타날 수 있겠다. 이런 점은 안도 다다오도 의식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지추 미술관보다 낫다는 평가를 한다. 한국적 미감의 실천과 너른 공간이 내는 비례의 균형을 높이 산 까닭이다. 어쨌든 다행이다. 어디에 내 놓아도 꿀릴 게 없는 멋진 미술관이 우리에게도 생겼으니 말이다. 건축의 체험 또한 다양성에서 그 깊이를 더하게 된다. 무엇이 좋고 아름다운 것인지 궁금하다면, 짬을 내서 원주의 뮤지엄 산을 찾아보시라.

 

 윤광준 / ‘내가 사랑한 공간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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