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콘서트홀
우리나라엔 왜 슈박스형 콘서트홀이 많을까
롯데 콘서트홀 이전엔 양재동 '예술의 전당'이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 역할을 맡았다. 산속에 지어 놓은 콘서트홀은 납득되지 않았지만 대안도 없었다. 신군부 세력이 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부랴부랴 만든 예술의 전당이다. 당시 여건과 분위기로는 정교한 음향을 실현하기까지는 무리였다. 이곳도 오랫동안 사용되던 슈박스(Shoe Box)형으로 지어졌다. 슈박스형 콘서트홀은 무대를 기점으로 관객석이 놓여진다. 스크린 앞에 관람석이 펼쳐지는 극장과 같은 구조다. 전체적 형태가 구두를 담는 통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뒤쪽에도 객석을 설치하고 무대의 양편을 둘러싸는 날개 모양의 테라스를 2~3층으로 설치한 발전판도 있다. 음향이 무대 전면으로 펼쳐지는 슈박스형은 오랜 세월동안 콘서트홀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몇 개의 민간 콘서트홀이 생겼지만, 대부분 슈박스형으로 설계되었다. 이는 연주자의 연주를 객석에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의 뒤통수만 보게 되는 아쉬움이 있지만,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경험으로 잘 튜닝된 콘서트홀의 음향은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988년에 공연 예술 전문지 「객석」의 기자였던 나는 예술의 전당 개관 때부터 드나들기 시작해 지금껏 음악애호가로 산다. 여기서 많은 음악을 들었고, 구석구석 무슨 시설이 있는지도 잘 안다. 솔직히 음향이 훌륭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객석 위치에 따라 음향 편차가 심하고, 소리가 묻혀 잘 들리지 않는 사각 지대도 있다. 외국의 유명 콘서트홀을 돌아보기 전까지는 콘서트홀의 음향이 모두 그러려니 하며, 음향에 불만을 털어놓는 걸 사치라고 여겼다.
세계 최고의 음향을 자랑한다는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과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를 찾아 연주를 들어 봤다. 연주의 감흥이 이토록 다르게 다가올 줄 몰랐다. 섬세하고 유려한 현악기의 선율은 감미롭고, 뿜어 대는 관악기의 포효는 갈라지지 않았다. 콘트라베이스와 팀파니의 위력적인 저음은 가슴을 휘감았다. 악기의 소리가 뭉치지 않고 또렷하게 분리되어 들린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유명세의 권위에 눌려 짐짓 좋게 들린 게 아닌가 싶어 몇 번을 다시 찾았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음악이란 어쩌면 콘서트홀의 음향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들 콘서트홀은 빈야드(Vineyard)형 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음향 효과를 위해 연주 무대를 가운데에 두고, 객석이 이를 스탠드처럼 둘러싸는 방식이다.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Winery)의 형태와 비슷해 빈야드란 이름이 붙었다. 무대가 객석 안에 있어 소리가 동심원 상으로 펴지는 효과를 낸다. 명료한 울림과 잘 잡힌 음의 균형이 특징이다.
빈야드형은 1963년에 베를린 필하모닉 홀을 새로 지으면서 채택됐다. 바우하우스의 후예라 할 독창적 건축가 한스 샤룬(Hans Scharoun, 1893~1972)의 설계다. 음악으로 모두가 만나는 공간을 꿈꾸었던 지휘자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은 새로운 실험을 적극 지지했다. 음향과학 전문가들의 협업으로 공간의 크기와 형태로 잔향을 조정하고 튜닝했다. 슈박스형을 벗어난 콘서트홀은 지붕이 솟구친 오각형으로 만들어졌다. 이질적인 모습 때문에 베를린 필하모닉 콘서트홀은 카라얀의 서커스단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생긴 것과 상관없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좋은 음향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이끌어냈다.
우리도 빈야드형 콘서트홀을 갖게 됐다
좋은 음향으로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이 어디 나뿐일까. 외국 콘서트홀의 음향 효과를 체험한 국내 음악 애호가들의 수가 늘어났다. 불문에 붙였던 국내 콘서트홀의 음향이 불만의 이유로 떠올랐다. 모두 기대를 담은 훌륭한 음향 공간이 생기길 진심으로 바라게 됐다. 2016년에야 꿈이 이루어졌다.
롯데월드타워에 들어서는 콘서트홀이 빈야드형이라는데 홍분했다. 예술의 전당이 생긴 이래 28년 만에 민간이 만든 첫 클래식 음악 전용 콘서트홀이란 영예도 주었다. 롯데 콘서트홀의 설계도 나가타 어쿠스틱이 맡았다. 위스키 통으로도 쓰이던 오크 원목을 사용해 보석과 같은 울림을 이끌어 냈다는 산토리홀 신화의 주인공 토요타 야스히사가 직접 참여했음은 물론이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복합 건물에 음악 전용 시설을 세우는 일은 만만치 않다. 빈야드형의 특징인 불규칙한 천장구조와 높이는 최적의 잔향 시간인 2초를 얻어 내기 위한 선택이다. 건물 안에 있으므로 콘서트홀의 외관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외부의 소음과 진동을 차단하고 안의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공간 전체를 공중에 띄우는 박스 인 박스(Box in Box) 기법으로 외부의 소음도 차단시켰다. 즉, 집안에 집을 짓는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음향의 정밀함을 끌어내기 위한 과학적 접근은 이외에도 많다. 객석의 경사도와 의자의 재질, 바닥의 마루판에 칠해진 도료의 두께까지 고려한 음향 튜닝이 이루어졌다. 눈에 띄는 파이프 오르간도 롯데 콘서트홀의 특징이다. 4천958개의 파이프가 들어간 오르간을 제작하고 설치하는 데만 2년 넘게 걸렸다.
완성된 롯데 콘서트홀은 규모와 화려함으로 그 위용을 드러냈다. 처음 이곳에 들어선 순간의 압도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우리도 반아드형 콘서트홀을 갖게 됐다는 흥분은 나 혼자만의 호들갑이 아니다. 아래 위층을 다니며 분위기르르 살폈고 미처 알지 못했던 비밀까지 들춰냈다. 아무렴 어떤가. 연주되는 음악이 훨씬 좋게 들리니 롯데 콘서트홀을 찾는 횟수가 늘었다. 공간이 바뀌니 감홍도 다르다. 소리는 더 섬세하게 다가왔고, 울림의 양이 풍부해진 느낌이 들었다.
롯데 콘서트홀이 문을 연지 3년이 되어 간다. 담당자들도 미진한 부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개선과 튜닝이 꾸준히 이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 개관할 때보다 차분해진 음향과 조정된 울림의 양으로 그 결과를 수긍하고 있다. 같은 음악을 어디에서 듣느냐에 따라 그 감홍과 메시지는 큰 진폭으로 다르게 다가온다. 좋은 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힘이 있다. 공간도 사랑해 줘야 성장한다. 많은 사람에게 평소 가지 않던 동네까지 가는 수고가 즐거운 나들이로 바뀌었으면 한다. 서울 시민은 세계 유명 콘서트홀에 뒤지지 않는 격조와 우수한 음향을 자랑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명소가 전국에 열 곳쯤 된다면 대한민국을 문화의 나라로 보는 시선이 늘지 않을까.
윤광준 / ‘내가 사랑한 공간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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